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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지은 Nov 06. 2015

삶이 커피처럼 쓰다

어른인가봐, -





  나는 사골 한 솥 오래도록 우려먹는 사람처럼, 아침에 탄 커피에 자꾸만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고 있다. 텀블러에 가득 블랙커피를 만들어 놓고, 반 정도 마시면 식어있는 커피의 쓴 맛이 강해져 다시 뜨거운 물을 콸콸 붓는다. 그래서인지 업무 시간 내내 커피의 양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점점 옅어지는 맛도 민감하게 느끼지는 못하는 편이다. 처음이 너무 진했기 때문일까. 그 쓴 맛이 입에 감도는지 입맛에 그리 흐려지지 않은 채 몇 입 홀쩍인다.


  어쩌면 처음이 이처럼 강렬 했더라면, 이후의 기억은 밋밋해져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첫사랑 그 이후의 사랑, 그 맛을 추억하지 못하고 그 때 그 사랑 마음에 맴돌아 그처럼 씁쓸하게 끝 맛을 남겼을까.


  어쨌든 내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건 신기하리만큼 특별한 일이다. 나는 여기 이 곳 회사를 다니면서부터 입에 커피를 대기 시작했다. 그 전엔 고작 어쩔 수 없는 상황에만 조금 마시는 척 하고 마는 정도였는데, 언제까지나 모를 줄로만 알았던 아메리카노의 맛을 알아버렸고 그렇게 몹쓸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흔히 말한다. 커피는 인생과 닮았다고. 쓴 커피의 맛을 알아간다는 건 쓰디 쓴 인생의 맛을 알아가는 것과 같다고.



  스트레스를 여간 받기는 하는 모양이다. 커피를 타고 마시는 행위는 그에 따른 하나의 표현일 뿐인 거 같다. 사실은 여전히 달달한 바닐라 라떼가 더 내 취향에 가깝지만 매일 마실 수도 없고 타먹기가 쉬운 블랙커피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이렇게 일상에 덩그러니 남아있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차가워진 속을 달래고 잠시 숨을 내 쉬고 싶을 뿐. 그냥 한 템포 쉬어가고 싶다며.


  아무래도 나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아직도 십년 전 어리던 고등학생 시절이 선하디 선한데, 어느새 나이 30이라는 척도에 가까워지고 있다. 나이라는 숫자가 어른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겁고 씁쓸한 삶을 알아가는 중이니 말이다. 나의 20대 후반은 이렇게 무게로운 삶에 질척이며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되묻는 날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믹스커피 속에 녹아 있는 지도 모르지.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던 청춘의 이상어린 현실도.



글. 꽃지은

사진. 이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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