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옷의 그는 왜 양진호 회장에게 무기력 했을까
어제는 하루 종일 포털 사이트 실검 1위를 차지하더니 오늘은 전국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수다 주제 1위가 아닐까 싶다. 그 이름 양진호. '봤어? 봤어?'로 시작된 수다는 폭력의 구술에서 시작되어 다들 비슷한 처지가 아니냐는 자기 비관으로 연결된다. 이번 사건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동련상련의 아픔과 상실감을 줬다. 그리고 수다를 떨던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잠시 말문이 막힐 것이다.
퇴사한 지 2년이 넘었잖아, 옆에 같이 일하던 동료들도 있는데 왜, 맞는 건 그렇다 쳐도 무릎은 왜 꿇는 건지... 양회장의 싸이코적 괴랄함에 대해선 모두 '미X놈'으로 규정하며 한결같이 반응하지만, 영상 속 검은 옷의 남성을 두고선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들이 많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누구든지 저 현장에서 보란 듯이 항변하고 대응할 수 있었을까. 누구든지 또렷한 자기의식을 갖고 주체적 관점으로 대처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은 다르다. 영상 속 검은 옷의 그 남자는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양회장에게 '내 전화 받아라'라는 문자를 받고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사무실로 찾아 갔을까. 나는 그가 양회장 앞에서 맞닥드린 압도적인 공포 뿐 아니라, 아무런 대항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이 느껴져 매우 슬펐다. 그는 그냥 맞을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무릎 꿇는 것엔 무슨 설명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이런 나의 주장을 이해하는데 있어 소위 '공포 경영'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을 보도한 셜록(https://www.neosherlock.com/archives/2407)의 기사를 읽어보면 유사한 유형의 오너들은 어쩜 저리도 닮아 있는지 아찔해 진다. 이에 나는 경험적 추론과 얄팍한 식견에 비추어 공포 경영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디테일은 차이가 있겠지만 대략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사견이다, 사견!)
회사 경영에 관한 모든 의사결정이 1인 오너인 '그'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런 회사는 ‘그’가 하루라도 자리를 비운다면 업무 자체가 진도가 못나간다. '회장님(대표님) 안계시는데 어떡하죠‘라는 말은 이 회사에서 매우 일상적이다.
'그'의 의사결정은 범위가 기이하다. 중간은 없고 극과 극만 있을 뿐이다. 의사 결정은 중요도(depth)를 따져 '사사로움-경미함-일상적-검토필요-매우중요'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오너는 ‘사사로움’과 ‘매우중요’의 양 극단에 올인한다. 특히 ‘사사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임직원들은 불철주야 달려든다. 하기에 ‘매우중요’한 일은 담당임원, 아니 담당자 전결일 때도 있다. 물론 책임은 무조건 담당들이 진다.
'그'는 분노조절 장애가 의심된다. 때때로 그는 '사랑한다'와 같은 표현을 자주 쓰며 눈물도 곧잘 흘린다. 당황스럽다.
인사 기준이 없다. 특히 연봉과 승진에 관해 '그'가 모든 것을 쥐고 있으며 그 전횡은 탁월하다 못해 경악할 정도다.
희한하게도 돈은 섭섭하지 않게 준다. 때 되면 주는 보너스도 일품이다.
'그'는 특정 직원, 임원에 대한 애정이 과도할 정도다. 그리고 부서이기주의를 행하는 자 엄벌할 것이라 공언하지만, 정작 본인부터 직원 편가르기에 앞장선다.
니가 떠들고 알려주는 '성과'는 중요하지 않다. 내 마음에 드는 게 성과다. 성과는 내가 판단한다.
앉은 자리에서 30분 정도 얘기할 준비는 항상 되어 있다. 시작 시점의 톤은 낮고 담백하다. 하지만 잠시의 급변기만 거치면 ‘그’는 핏줄을 앞세운 샤우팅을 10분 정도 가볍게 질러줄 수 있다.
‘그’는 본보기 식 직원 해고 사례를 주기적으로 세팅한다. 반복이 되다보니 직원들이 먼저 그 때를 간파하기도 한다.
10분 내 집합 카드를 종종 사용하며, 이 경우 협박성 멘트를 빼먹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살아있는 언어들로 분위기를 끌어 올린다. 좌시하지 않겠다,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잘 생각해라, 바로 내일 그렇게 될 수 있다...
오늘 같이 점심을 먹은 동료가 매우 좋은 표현을 해줬는데, 이런 공포 경영이 판을 치는 기업을 두고 '강한 자기장이 형성된 회사'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오너라는 강한 자석을 중심으로 직원들의 모든 사고와 행동들은 무의식적인 ‘전하’들이 되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강력한 자기장이 되는 것이다. 그 슬픈 전하들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공포 경영이 일상화된 곳에서는 당연한 얘기지만 '생존'이 자기 인식의 최우선 순위이다.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 회사를 다니는 이유이며, 살아남았을 때의 안도감과 안식감은 일종의 자기 성취감이다. 정리하자면 살아남아야 자기 성취를 느끼는 것이다.
평온한 분위기를 해치는 자는 곧 회장님의 심기를 건드리는 자이며, 오늘 하루 이 회사의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면 곧 나를 해치는 자라는 내적 인식이 팽배하다. ‘다 알겠으니 제발 그냥 넘어가주오.’라는 생각은 이곳에선 너무 당연하다.
'그'의 인사 비책(연봉 업다운 놀이, 특진/좌천 놀이)에 직원들은 1)절대 쉽게 그만둘 수 없는 내적갈등 환경, 그리고 2)더럽지만 더 사랑받고 싶은 노예적 심리 상태, 그 둘에 본능적으로 안착한다.
상기항에서 '더럽지만'이라고 명시했으나, 그것도 처음에만 그렇다. 2회, 3회 반복이 거듭되다 보면 너도 나도 그 사랑을 갈구한다.
이 웃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모든 전화들은 학습을 통해 종속적 사고를 스스로 체득한다. 여러 조직관리 기법에도 이미 나와 있듯이 사고가 행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 행동이 사고를 만드는 것이다. 공포 경영이 판을 치는 회사에서 직원들에게는 사고가 끼어 들 틈이 없고 몸이 우선 반응한다. 그 반응 기제는 너무도 강력하여 재직 여부와 관계없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에게는 인정을 받고 동료들에게는 조직을 헤치는 자로 인식되지 않기 위해 과거의 몸부림이 시점을 망각하고 자기반응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슬프고 괴롭다.
어쨌거나 금번의 이 괴이한 악행을 두고 여러 회사들은 자기반성을 했으면 좋겠다. 더불어 나는 어떤 주체적 인식을 갖고 있는지 모두 꼼꼼히 따져 봤으면 한다. 특히 ‘우리 회사는 저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다행이다’와 같은 미시적 인식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용기를 내어 제보를 해 준 검은 옷의 그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그는 정말 멋진 일을 했다. 아무쪼록 빠른 시일 내 쾌유하여 이름 모를 섬에서 벗어나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눴으면 한다. 꼭 그리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