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lmack Feb 01. 2022

<오늘의 요리>는 완벽했다-2

정창욱이 완전히 망쳐버린 완벽한 콘텐츠 <오늘의 요리> 만든 PD팽이에게

퇴고 한다고 앞 글(<오늘의 요리>는 완벽했다-1 | https://brunch.co.kr/@galmack/8)을 읽다보니 오해의 여지가 있다. 우선 분명히 하고 싶다. 이 글은 정창욱에 대한 글이 아니다. 정창욱이 이랬니 저랬니 두얼굴의 뭐뭐다...쓰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한가하지도 않다. 그냥 PD팽이가 만든 영상 자체에 대한 질투와 부러움의 썰이다. 그리고 그것에 앞서, 



짭플래닛(https://brunch.co.kr/@galmack/6) 멤버들 단톡방에 쓴 말이다. '잠시'라는 부사를 붙이길 잘했다. 글 하나가 모르는 이의 고통을 어찌 감당할 수 있으랴. 대신 잠시의 기분전환이라도 되길 빈다. 대신 그가 만든 영상이 그 자체로 대단한 의미와 가치였음을 꼭 전해주고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PD팽이님, 당신은 나에게 성공했답니다. ㅅ.ㅅ


이제 모두 사라지고 사과문만 덩그러니 남은 <오늘의 요리>. 이럴 줄 알았다면 한 두 컷 캡쳐해 둘 것을...


자 이제 그럼 시작해 보자. 요새 지적탐구를 한답시고 점점 미궁속으로 빠지고 있는 그 사람 비트겐슈타인은 '말하여 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 질 수 있고, 그게 아니면 침묵해라'라고 했건만 내 언어가 닿는 곳은 어디까지일까. PD팽이의 영상을 언어로 명료히 할 수 있을까. 일단 궈궈.


읽으면 읽을수록 먼말인지 모르겠고...그냥 타투로 새기고 허세 떨고 싶은 비트겐슈타인 횽님. ('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의 초대' | 박병철 지음 | p.84)




1. 콘텐츠의 기승전결이 완전한 구조다.


대부분의 영화나 영상에는 그래도 시작과 끝은 다 있다. 대신 '왜'라는 이유와 맥락이 터무니 없는 경우나 아예 쏙 빼버리는 것들이 있다. 사실 유튜브는 나름의 서사 구조를 띨 필요도 없다. 썸네일에 나온 말 그것만 다뤄도 그만이다. 행여 요리 유튜브라면 재료로...뭐 뭐 준비하고, 이건 나만의 팁이니 어디가서 얘기하지 마라, 너한테만 알려준다 하면 끝 아닌가.


하지만 PD팽이는 요리를 내걸긴 하지만 요리를 만드는 이유를 항상 배치하고 연결시킨다. 일단 '배고프지 않냐', '야 빨리 대충하고 술먹자'로 귀결되곤 하지만 그 자체가 묘한 힘이 있다. 어, 어 하면서 영상을 끌고 간다. 글라스에, 소주잔에 술을 콸콸 담는 인서트들로 리듬을 준다. 어서어서 빨리빨리 나도 한 잔, 짠.


누가 밥을 못챙겨 먹으니 도시락을 싸줘야 한다, 저번에 같이 놀러갔을 때 진짜 맛있게 먹었던 거 해볼게, 명절이니 떡국 먹어야 겠지. 만드는 이유와 먹을 사람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마지막 씬,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이 마주앉는 좁은 식탁. 전구빛 조명과 쟁반 그리고 실버웨어. 요리 내내 지치지 않던 수다와 건배들은 허겁지겁 입 속으로 맛있게 빨려들어 간다. 이 맛있는 블랙홀은 이러다 당황스럽게 끝. 아니, 요리 유튜브가 왜 먹먹한 거야? 이유를 알고 싶으면 이 글 끝 6번으로 점프컷 포탈 타시길.


나의 사무실 주방. 사실 그 양반을 불러다가 같이 한 잔 해보는 게 꿈이었는데...ㅁㄴ;이ㅏ롬니아롸;ㅣㅁㄴㅇ로 으아아악!!!!



2. 스타일에 관하여. 롱테이크와 초근접 점프컷까지 흥미로운 호흡과 리듬.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유튜브에서 익숙하지 않은 컷들이 희한하게 조합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참신하고 매력적이다. (비트겐슈타인이 이 문장을 보면 명료한 언어가 어쩌고...하면서 사고 조차도 안된 말이라 해도 할 수 없다 여하튼) 지금은 채널 폐쇄로 영상을 볼 수가 없으니 기억에만 의지해서 쓴다. 이를테면 '풀샷 롱테이크-사람-근접컷-초근접컷-다시 롱테이크-중간중간 리듬감 술잔-루틴 반복' 이런 식이다. 문제는 풀샷에 바로 이어지는 초근접샷 점프컷이다. 일반적인 영상 호흡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좀 깨는 형태인데 이게 일종의 몽따주로 봐도 된다. 풀샷 롱테이크는 가로로 긴 직사각형으로 구멍이 난 주방 윈도우 너머 주방장을 생각하면 된다. 머릿 속에 그려보자. 주황빛 창 안 평온하고 따뜻한 이미지다. 순간 이어지는 점프컷은 기름에 튀겨지는 시커먼 스테이크. 파바박 파바박. 야, 한 잔 하자. 이런 변혁적 편집을 통해 주방 밖 조용한 듯 차분해 보이는 이미지와 주방 안의 요리와 사람이라는 뜨거운 활동력 그것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킨다. 말로 쓰니 꽤나 거창한 듯 싶지만 사실 영화에서는 자주 쓰이는 기법이기도 하다. 이십년 전이라면 대니보일 같은 대명사를 들먹였을 거다. 혼자 생각해 봤는데 PD팽이는 미카엘 하네케나 폴 토마스 앤더슨을 좋아하지 않을까. 은근한 고요 속 막연한 불편함. 그리고 그 속에 늘 존재하는 발칙함과 광기. 물론 <오늘의 요리>는 그런 내용을 담았다는 말은 아니다. 스타일 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운 호흡과 리듬을 가졌다는 의미다. 그 만의 영상에서 그만의 스타일리쉬가 있다



3. 이야기가 없어야 할 인서트컷에 이야기가 있다. 역발상의 핸드헬드와 아웃포커싱.


보이스 오버로 아주 많은 인서트컷들이 배치된다. 대부분 핸드헬드 근접컷이다. 재료를 다듬는 손, 도마와 칼질, 프라이팬에 뿌리는 소금, 재빠른 웍질과 불. 모두들 대충 생각해도 화면이 과하게 흔들리거나 포커스가 아웃되는 장면은 도려내고 이쁜 것들만 모아서 붙이지 않나. 헌데 PD팽이는 거침없다. 아니 오히려 일부러 그런 컷들을 두드러지게 살린다. 이 부분에 난 주목한다.


핸드헬드 근접컷, 그 인서트들은 주방장 바로 그 사람을 담고 있다. (이 말은 아래 5번과도 링크가 되고) 사실 현재 사건에 비췄을 때 언급하기 꺼려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건을 걷어내고 영상 자체만 생각해 보자. 접시에 플레이팅 되어 먹는 이의 앞에 놓여지기 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필요한가. 카메라는 그 하염없는 인서트들로 이야기의 끝을 좇으며 요리하는 사람을 그린다. 그 과정을 촘촘히 목도한다. 일단 이 부분에서 많은 요리 유튜브와는 완전히 차별화 된다. 또한 카메라 흔들림과 아웃포커싱-인포커싱은 어떠한가. 쉽게 생각하면 된다. 뭘 잘 보고 싶을때 눈을 비비거나 눈을 똑바로 뜨지 않나. 촬영용 주방이 아니기에 거칠고 좁은 공간에서 뭘 얼마나 담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카메라는 모든 행동과 사물에 애정을 두고 있다. 또는 카메라가 휙 지나간 장면이라도 편집 과정에서 끄집어 다시 붙이고 꼬맸다. 더 알고 싶고 더 잘보고 싶은 이야기를 핸드헬드와 아웃포커싱의 인서트에 담았다. 멋지다.



4. 레시피는 텍스트일 뿐. 모두 사람이라는 컨텍스트로 수렴된다.


'원래는 두숟갈 정도인데...에이 모르겠다 너랑 나랑 먹을건데 다 넣지 뭐.' 딱 이 말로 해석하면 된다. 이따 이걸 먹을 사람이 소보다 닭을 좋아하니 레시피와 다르게 닭고기로 만들어 준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꼭 이렇게 영상에서 했다...가 아니라 이런 접근이 대부분 이었다는 말이다)


최자와 함께 만든 맨케이브에서의 요리로 기억한다. 채널의 꽤 많은 요리를 그곳에서 촬영했었다. 고추잡채...로 기억하는데 어머님이 시집올 때 가져온 웍이라고 하자 그 웍과 그 위를 덮은 반들반들 기름기를 카메라가 잠시 응시했다. 꽤 인상적이었다. 여느 중국집에서 볼 수 없는 아담한 사이즈의 작은 웍이었는데 웍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 매력적이라 그날 바로 쿠팡에서 정통 중국식 웍을 주문했다. 물론 아담한 사이즈의 것은 없더라. 유막 태우는거 한 두시간 하고 이후 두어번 쓰고 지금은 사무실 주방에 쳐박아 뒀다.


레시피는 결국 텍스트일 뿐이다. 애초에 뻔한 요리 유튜브가 아니었기에 무엇 무엇을 언제 얼만큼 넣어라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 텍스트들을 조합하여 만드는 사람에 집중했다. 그 컨텍스트는 바로 5번으로 이어진다.



5. 사랑스러운 남자로의 트랜스포메이션. PD팽이는 마법사? 노노 이것이 바로 브랜딩.


- (영상 시작에는 무조건) 어, 왔어?

- (요리가 절반 정도 지나면) 맛이 있겠냐 없겠냐?

- (거의 요리가 다 되었을 때) 야 이거 비상사태다.

- (같이 앉아 한 입 딱 떴을 때) 야 촬영이고 뭐고 됐고. 카메라 줘봐. 먹어 봐.


이 4단 콤보는 명백한 클리셰다. 공식과 같은 뻔한 루틴이다. 허나 뻔한데 지겹지 않고 진부하지도 않다. 할 때마다 재밌고 할 때마다 웃기다. 나는 사무실 주방에서 요리를 자주 하는 편인데 앞치마만 두르면 저 콤보를 시전했었다. 와따따뚜르겐 처럼 지겹도록 반복했다. 그만큼 마성이 있다.


'어, 왔어'는 서로 정해놓은 촬영의 규칙으로 보이고 나머지는 캐릭터가 자주 하는 말로 여겨진다. 문제는 저 포인트를 PD팽이가 끄집어 내고 영상에 도드라지게 배치했다는 것이다. 맥락과 리듬에 맞게 루틴을 배치하면서 주방장이란 인물을 요리남 따위 훌쩍 뛰어 넘는 러블리 동네형으로 탈바꿈 시켰다. 그것은 바로 앞서 지겹도록 서술한 촬영, 편집, 보이스오버 같은 스타일적 바탕 위에 고도로 계산된 캐릭터 연출까지 얹었음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궁극의 브랜딩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아니다. 나 진짜 존경한다, PD팽이.


기억에 남는 말은 이것도 있다.


- (쇼핑백 하나 건네 주며) 너 생일이잖아. 신어봐...편하지? 


하, 나원참...이거 원.


나도 참 흉내 많이 냈었다. 사무실 주방에서 이런 거 저런거...라가불린16까지...ㅜㅜ



6. 독립영화인가. 이유모를 울림이 있는 토막 엔딩컷.


1번부터 5번까지를 뛰어 넘고 바로 6번 이야기만 본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말을 어떻게 붙일까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게 '토막 엔딩컷'이다. 잘 먹고 수다 떨고 분위기 오를만 한데 툭 하고 끝나는 식이다. 아무런 예고도 에피소드도 없이. 그냥 툭.


우선 많은 요리 유튜브들이 장황한 레시피쇼 이후 그럼 이제 시식해 보겠습니다에 장시간 할애하는 것들과 완벽히 차별화된다. 이게 참 희한한 것이 유튜브라 어떤 엔딩 크레딧이 있는 것도 아닌데 검정 화면을 3, 4초 가만히 보게 된다.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8분여까지 즐겁게 같이 해 온 여행을 얄미운 가이드가 짓궂게 끝내는 것도 같다. 마치 영화 <파워 오브 도그>에서 피터의 엔딩씬. 뭔가 더 벌일 것 같은 얼굴을 딥포커스로 당기다 갑자기 영화는 끝, 엔딩 크레딧.

또는 아 잘 놀았다 이 정도면 됐고 다음에 또 다른 걸로 놀아야지 싶은 후련함도 든다. 중요한 것은 앞서 얘기한 잘 브랜딩 된 사람이 보여준 특유의 러블리함이 여운처럼 남는 다는 것이다. 이것은 독립영화인가 무엇인가. 만약 PD팽이 당신이 마련한 또다른 장치라면 당신 진짜 정말루 투썸즈업.






예능 프로그램에서 요새 핫한 오은영 박사가 한 말이다. 장시간 연애를 한 커플이 헤어진 이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이 걸리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그 사람이 원래 인간으로 가진 면을 좋아했던 감정과 연인으로의 감정의 분리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PD팽이에게 별다른 위로가 되지 않을 건 잘 알고 있지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한 명의 연출가로서 작가로서 <오늘의 요리>는 너무나도 완벽했다고. 잊을 존재는 하루빨리 잊어 버리고 다만 당신이 만든 작품들은 그것 자체로 충분히 빛났다고. 그래서 나같은 사람들에게도 소소한 행복을 줬었다고. 


그것만은 꼭 기억해 주세요. 당신 참 잘했습니다.

고마워요, PD팽이.



끝.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요리>는 완벽했다-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