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 2018, 전고운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왜인지 직접 마주칠 기회는 없었다. 책도 영화도 그랬다. 최근 VOD 서비스를 이용하는 나름의 소박한 취미가 생기고 나서야 지난해에 개봉한 <소공녀>를 보게 되었다.
주인공인 미소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원룸에 산다. 그럴싸한 가구도 없고, 그것들을 마련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녀는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일당을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 생계라고 할 만한 것의 대부분은 담배, 위스키, 머리가 하얗게 세는 것을 막아주는 약을 구입하는 비용이다. 그럼에도 정수리 쪽은 이미 하얀 색으로 뒤덮여 있다. 날로 오르는 물가와 집세에 미소는 결국 집 없는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그녀는 대학 시절 락밴드 동아리의 멤버들의 집을 찾아가 하룻밤씩 신세를 지기 시작한다.
<소공녀>는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다소 파격적이라 비현실적인 것만 같은 미소의 삶은 사실 그녀의 합리적인 선택에 기인한 것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녀가 안정적인 직장과 집을 향해 달려 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흔하다는 적금도 없이 일당과 금고, 수기 가계부로 완성되는 미소의 경제생활. 그러다 월세가 올랐을 때 그녀가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집이었다. 대한민국에서 20대(30대였을까?) 여성이 집 없이 살아간다고? 하지만 나는 이 선택이 그녀에게 가장 합리적인 것이라고 느껴졌다. 왜냐하면 담배와 위스키는 미소의 삶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니까.
이후 영화의 대부분은 미소와 락밴드 멤버들의 만남을 그려낸다. ‘왜’ 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지 않는지, 가족과는 어떤 히스토리가 있는지 등의 (한국 사회에서)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질문들이 모두 생략되어있던 캐릭터에게 갑자기 대학 시절이 등장한 것이다. 아무런 사전 설명이 없는 주인공의 삶 속에 갑자기 등장한 락밴드, 거기다 그들과의 만남이 영화의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점은 오히려 미소라는 캐릭터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대개의 경우 락밴드가 주는 이미지는 젊음, 자유, 일시성이다. 그에 맞춰 다른 멤버들은 지극히 평범한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경조사가 아니면 다함께 모이기도 힘들고, 오랜만이지만 오랜만이지 않은 척 반갑게 말을 이어갈 수 있는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했다. 이에 반해 미소는? 직장과 시댁,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여러 가면을 돌려쓰고 그럼에도 울고 웃는 멤버들과 달리 미소는 홀로 민낯으로 당당하다. ‘너도 참 여전하다’ ‘하나도 안 변했다’는 식의 긍정과 부정이 섞인 말을 여러 차례 듣는 미소는 그들이 보기에는 아직 20대 초반의 치기어린 시절에 머물러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스스로 삶을 영위해가는 지극히 평범한 어른이다. 그에 대한 방증은 계란 한 판으로 나타난다. 전후시대에 유행했던 선물세트로 빈궁한 시기의 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그것, 계란. 요즘은 선물 후보로도 거론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하룻밤 신세에 대한 대가로 그녀가 선택한 계란 한 판은 미소에게 알찬 사치이자 최대의 염치였다. 그리고 미소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가사노동으로 멤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미소가 집 없이 살기로 했다는 사실 앞에서 기절초풍할 만한 리액션을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락밴드 멤버들은 미소를 가장 잘 이해하고 존중하는 유일한 어른들일 지도 모른다. 그들은 저마다의 선택에 따라 살아가고 서로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다.
미소가 가사도우미로 일한다는 설정은 모순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슬프다. 집 없는 사람이 가사도우미라니. 쓸고 닦고 꾸미는 일을 가장 잘 한다니. 하지만 여전히 미소는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흔히 등장할 법한 ‘나는 언제 이런 집에 살아보나’ 라며 푸념하는 장면이라든지 주인이 없는 틈을 타 집주인마냥 콧노래를 부르며 소파로 뛰어드는 그런 장면이 단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영화 속에서 가사노동이란 본인의 삶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면서 미소가 확실하게 직업으로써만 대할 수 있는 원격의 소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흘러 미소는 군중 속의 행인1처럼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언뜻 보인 모습 속에서 몽땅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집에 이은 두 번째 포기였을까? 아마 먹고 사는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나보다. 원작 소설은 소공녀가 부유한 신분으로 회귀하며 행복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 <소공녀>의 엔딩은 그것이 해피인지 새드인지를 논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미소의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아파도 청춘이라거나, 희망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난을 전시하거나 최근 국내 독립영화에서 많이 보이는 ‘불행 포르노’로 빠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녀가 주체적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선택하며 살아가고 생각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내게는 충분한 곳에서의 행복. 하루를 살아낸다는 일의 값어치. 모두가 더 넓은 집과 더 좋은 직장을 목표로 삼을 때 담배와 위스키를 목표로 열심히 살아가는 주인공. 때문에 ‘특유의 에너지로 현실에 굴하지 않고 역경을 이겨낸’ 소공녀를 이 영화에 대입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소공녀로서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어서다.
그리하여 나의 미소를 떠올려본다. 넓지 않은 집, 일당이 낫겠다 싶은 월급,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것들. 나는 녹록지않은 삶에서 이 미소한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덕분에 작년 겨울의 미소를 에어컨 바람을 쐬며 만날 수 있었지 않은가. 나를 살아가게 하는 그 무엇이 가난을 괄호 안으로 집어넣지는 못한다. 다만 삶이 계속되고, 주체가 되어 그 삶을 지속해나가고 싶다면 나는 기꺼이 소공녀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