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signer Felicia Aug 01. 2020

# 어느 날 그림이 떼쓰는 아이처럼 내게로 찾아왔다

취미로 그림을 시작했다가 디자이너가 되었어요


당혹스러웠다. 도저히 사줄 수 없는 가격의 장난감이 가지고 싶다며 가게 바닥에 누워서 큰소리로 울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기분이 이럴까 싶었다. 미술에 문외한인 채로 30년 넘게 살아왔는데 왜 뜬금없이 이제 와서 이렇게까지 강렬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단 말인가?  평균 퇴근시간이 열 시이고 일곱 시간 이상 자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체질인데 대체 언제 그림을 그리라고? 설사 시간이 난다 하더라도 업무나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도 모자랄 판에 한가하게 그림을 그릴 여유가 나에게 있나?

난생처음으로 그려본 말 그림. 거꾸로 그리는 그림은 의외의 효과를 발휘한다.

그냥 이러다 지나가겠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불이 붙은 것 같은 강렬한 열망이 식지 않았다. 운 좋게 몇 달 후에 정시 퇴근할 수 있는 부서로 발령받게 되면서 홍대 앞 취미미술학원에 등록했다. 첫 수업에서 선생님은 말 그림을 거꾸로 걸어놓고 보이는 대로 그려보라고 하셨다. 말을 그리려고 하지 말고, 그냥 보이는 대로 그리라고. 


아주 신기한 경험이었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같이 어색했지만, 그렇게 떼를 쓰던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집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그림을 그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몰입감의 회복적 능력 때문이다. 아무도 접근할 수 없을 만큼 깊은 바닷속을 잠수하고 나서 온전히 새로운 존재로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기분. 


엄마는 예술가란 고통과 영감을 먹고사는 사람이라는, 경악스러울 만큼  낭만적인 생각을 가진 작가였다. 엄마같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림이 나에게 찾아왔던 그 무렵은, 엄마를 연상시키는 모든 것들의 반대방향으로 정신없이 달려오다가 벼랑 끝에 다다른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 즈음이었다. 울고 싶었다. 무서웠다. 다른 삶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이 시점에서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게 된들 뭐하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어차피 포기해야 할 텐데 더 괴롭기만 하지. 길고 긴 노고 끝에 겨우 찾아온 안정된 삶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바라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때 거의 강제적으로 그림이 그 용기가 되어주었다.  잠시 멈추어 서서, 내가 달려온 길을 돌아보고, 나를 ‘그냥 보이는 대로’ 바라볼 용기. 


그 용기는 어설프고 우스꽝스러울지라도 조금씩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볼 용기, 전공자도 아니고 경험도 없으면서 과감하게 디자인 제안서를 제출하고 없던 자리를 새로 만들어서 디자이너가 될 용기,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먼 타국에서 적성과 소명에 맞는 일을 새로 시도하는 용기로 이어졌다. 그러나, 엄마의 정체성의 핵심이었던 글쓰기, 그 공포의 심연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몇 년간의 여정을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덜덜 떨릴 만큼 무섭더라도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조금씩 다른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정보가 개방되어 있는 세상에서 내가 발걸음을 떼어야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는 건 신비한 일이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새로운 풍경을 기대하며 브런치를 시작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