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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달 Feb 10. 2020

인문학으로 인테리어를 하다

개념 없는 인테리어 I 디자인사의 흐름 (5)

사람들은 누구나 공간에 속해서 살고 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하지만, 우린 우리가 있는 동안에 그 공간에서 최대한의 편안함과 기능성을 가지며 최적의 조건으로서 아름다운 공간으로 개선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곳에 머물기를 원한다. 문명과 문화, 과학기술이 발명되고 발전되면서 공간에 대한 철학도 바뀌고 사람들의 필요도 변화했었다. 중세의 1,000년을 우리는 흔히 미술이나 여러 가지 문화적으로 암흑기라고 많이 표현을 한다. 종교적인 특성이 그렇게 만든 것도 있겠지만, 당시 환경이 그리 녹녹지 않아서 그러기도 했을 것이다. 기독교가 공인되고 이후부터 교회가 번성하면서 화려한 색체와 장식을 특징으로 하는 미술의 형식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비잔틴 미술(330~1453)

비잔티 미술은 4세기경부터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에 이르는 비잔틴 제국의 예술을 말한다. 32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로마의 수도를 그리스의 비잔티움으로 옮기게 된다. 그때부터 비잔티움은 콘스탄티노플이라 불리게 되고, 이곳은 오늘의 이스탄불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로부터 약 100년 후에 동로마, 서로마로 분할되고 동로마는 외세를 막아내며 국력과 안정을 되찾고 안정을 이룬다. 이때부터 비잔틴 미술이 꽃피게 된다. 궁정의 지지를 배후에 업은 기독교 미술은 장대함과 호화로움을 특색으로 하는데, 이는 지리적으로 비잔틴제국은 기독교의 원천이 된 유대교의 신앙 지역이나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등의 그리스 문명의 유산을 보존하는 헬레니즘 문명의 중심지, 또는 동로마제국을 자주 위협하는 강적 사산 왕조의 페르시아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위체에 있었다. 비잔틴 미술의 특징이라면 중앙식 돔 교회와 화려한 모자이크이다. 동방 오리엔트의 사실주의와 서양 헬레니즘 미술을 혼합하였다. 거칠게 그려진 얼굴, 크고 무의미한 눈, 딱딱한 구성, 체계적 배열, 상징의 사용과 같이 특수한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330년 이후 무렵에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상 최초의 댐이 신라 흘해왕() 때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로, 토사를 다져서 높이 4.3m, 길이 3,240m로 만든 흙댐이 있었다, 또 고구려는 고국원왕, 백제는 비류왕의 시기였다.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백제의 근초고왕에게 전사하기도 하는 때이다.

  비잔틴 미술은 산 비탈레 성당과 성 소피아 성당으로 대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플에 많은 사원을 건립하며 웅대한 도시계획을 세우고 또 베들레헴의 성탄 사원 건립 등의 활동에 참가하였으나, 비잔틴 건축을 가장 잘 대표하는 것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에 건립된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과 그즈음 재건된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성당이다(콘스탄티누스 황제 창건, 3세기 소실). 산 비탈레 성당은 팔각당 형식을 취하는 집중식으로 다수인이 모여 제례의식을 하는데 적합하도록 원에 외접하는 8각 또는 방형의 플랜 위에도 돔을 씌운 형식으로 된 것이다. 그때까지 지중해 양식에서는 볼 수 없던 형식으로 3세기 이후 사산 황조의 페르시아 궁정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성 소피아 사원은 큰 돔으로 덮여 있는 정방형의 본당을 중심으로 작은 돔을 세 방향으로 배설하여 그 중앙을 감소시키고, 이 크고 작은 돔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면서 바실리카 형식을 구성하고 있다. 돔의 중량을 분산하는 계산의 근거로 과학과 미의 결합을 잘 이루었다. 오늘날의 건축에서 셀 구조와도 비슷하며, 모든 공간을 유효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비잔틴 건축은 항상 기둥의 직선과 돔, 아치의 곡선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산 비탈레 성당
테오도라 황후와 수행원들(모자이크)
성소피아 성당
성 소피아 성당




  대부분의 양식이나 표현은 그 시대에 발전하는 과학과 문화와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그 시대의 정치와 기득권의 성향이 좌우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취향이 더욱 중요시되는 요즘과 같은 가심비의 세상에서는 절제된 디자인과 각자의 취향으로 더 접근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공통적으로 진행되는 유행은 있지만,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 또한 강렬하여 각자의 모티브를 얻어 대중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구도 또는 필요성이 많아진 것이 그 이유이다. 현재 우린 돔과 기둥의 조화를 또는 돔과 다른 디자인과의 연결을 어떻게 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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