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다 떨어지고 스스로 책을 만들었다

긍정적인 수치심 사용하기

by 김율


답장이 없는 출판사의 연락을 기다리다


내가 원고를 완성한 건 5월 31일이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기도 하다. 변태처럼 일부러 맞추려 한 건 아니고, 상반기에 끝내자는 약속을 질질 끌다가 이날까지 온 것이다. 나는 원고를 출판사에 보낸 그날을 잊지 못한다. 당시 강원도에 있는 묵호에 있었다. 상상대로라면 호텔 침구에 느긋하게 누워 바다를 봐야 했지만, 그러기는커녕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과 씨름하고 있었다. 모두 나를 너무 믿은 죄였다. 2주 전, 말쯤이면 책을 이미 완성해서 후련하게 여행길에 오를 거라 예상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고 몇몇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나니, 이미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묵호 여행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확인한 메일함은 여전히 '읽음' 상태였다. 게다가 대부분 답장도 없었다. 6월 중순까지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하며, 나중에는 떨어져도 되니 답장이라도 받고 싶다는 심정이 들었다. 그리고 뭐랄까, 독자로서 사랑했던 출판사들이니 의리(?)를 지켜달라는 마음도 있었다. 다행히 어떤 출판사는 거절 메일을 주었고, 어떤 출판사는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때 스스로 책을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별 수 없었다. 아무도 내주지 않으니 내가 해야지. 그런데 내가 결심까지 하고, 텀블벅 펀딩까지 속전속결로 진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무엇도 아닌 수치심이었다.



우주는 나에게 항상 좋은 것을 준다는 믿음


"나는 무능한 존재다."


출판사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무척 수치스러웠다. 어떻게 수치스럽지 않겠는가? 나의 절절한 이야기를 꺼내서 보여주었는데 거부당했다는 느낌. 그것은 내면 아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감정이다. 이런 생각과 감정이 수없이 올라왔다. "내가 인플루언서였다면 답장을 주지 않았을까? 내가 글을 더 잘 썼다면, 능력이 있었다면, 경쟁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책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답장을 기다리며 애꿎은 출판사 홈페이지를 들락날락거렸다. 그곳에는 화려한 책 큐레이션에 걸맞은 저자들이 올라와 있었다. 유튜브에서 강연을 하며 이름을 날리는 분, 박사 학위까지 따고 명성이 자자한 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팬을 거느린 분까지. 아하, 현실은 내 안의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유명하지 않은 나에게 수치심을 느끼는구나. 다행히 그 감정은 채 3시간도 지나지 않아 용기로 바뀌었다. 우주는 나에게 항상 좋은 것만을 준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응 무능해도 ㄱㅊ~ 오히려 좋아."


심리학에서는 긍정적인 수치심이라는 개념이 있다. 수치심이라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긍정적인 수치심은 상황을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대비할 수 있게 도와준다. 불과 5년 전의 나였다면 작은 상처를 크게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후벼 파는 짓을 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우선 내가 하나-도 괜찮지 않다는 걸, 이 상황이 몹시 창피하다는 걸 인정했다. 괜찮은 척하고 이성으로 설득하는 건 내면 아이에게 폭력이다. 나는 충분히 안 괜찮은 나를 안아주며 그 마음에 온전히 공감해 주었다. 그랬더니 무능해도 괜찮은 나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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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발송을 앞두고 있다


6월 말부터 7월까지 발 빠르게 행동했다. 인디자인을 속성으로 배웠고,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책 표지를 완성했고, 책 제목과 부제를 정했고, 가제본을 인쇄했고, 텀블벅에 프로젝트를 올렸고, 상세 페이지와 굿즈를 만들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출판사로 사업자를 냈고, 구청을 오가며 출판 허가증을 받았고, ISBN을 발급받았다. 그리고 20일간의 펀딩을 통해 187%를 달성했고, 드디어 내일이면 책 발송을 앞두고 있다. 이 과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하나씩 쓸 예정이다.


5월 31일부터 8월 17일까지, 2개월 반이라는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갔다. 이제 책은 바깥 세계로 외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역시나 우주는 옳았다는 생각을 한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일이 펼쳐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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