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디킨슨, 어테이블, 뚝방길홍차가게
밥심으로 우리는 매월 1권의 시집을 읽어. 처음 가본 동네, 뚝섬유원지. <뚝방길홍차가게>가 아니었다면 그 동네에 생각보다 방문할 일이 없었을 거야. 친구가 열심히 찾은 밥집, 어테이블. 건강한 백반집이었어.
전라도입맛이라 소금 간을 추가해서 오늘 메뉴 중 하나였던 닭개장을 싹싹 긁어먹었어. 배터지게 야무지게. 친구는 된장찌개를 맛봤지. 이날 무를 싫어하는 친구의 취향을 발견했어. 편식 없이 잘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비릿한 무의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알았네.
우리는 밥을 먹고 카페로 향했어. 밥먹고 카페 코스 오랜만이야. 카페 이름은 <뚝방길홍차가게>였어. 왜 뚝방길인지 걸으면서 알았어. 가게나 브랜드 이름은 심오하거나 어렵거나 있어 보일 필요가 없겠어. 정체성만 뚜렷하면 되니까.
오후 12시 전후였는데 매장이 꽉 찼어. 애프터눈티세트가 유명하대. 메뉴는 정독해야 할 만큼 두툼했어. 그런데 밀크티를 고르고 있더라. 친구는 얼그레이우롱, 나는 뚝방길밀크티. 오늘의 밀크티는 다 팔렸대. 아이스는 저 우유병에 나오는데 빈티지한 저 종이덮개랑 마줄 저 감성이란…
내가 주문한 뚝방길밀크티는 청포도향이랑 꽃향기가 맡아졌어. 색은 연한캐러멜이었고, 농도는 무난했어. 아쌈처럼 진하고 묵직한 맛을 좋아한다면 아쉬운 맛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
친구는 디저트로 애정하는 스콘, 나는 말차티라미수를 주문했어. 스콘에 클로디드크림, 내겐 무색의 맛이었지만 스콘이랑 찰떡궁합일 것 같긴 해.
친구가 선택한 시중에
- 케이크의 통치는 단 하루
- 벌레 한 마리 그의 궁극의 목표
위의 구절이 내게도 아하 무릎을 치게 만들었어. 에밀리 디킨슨이 살았던 19세기 역사적 배경이 궁금해지더라.
살아생전에 디킨슨의 방 인테리어를 보고 나중에 집을 구하면 그런 느낌으로 꾸미고 싶다고 이야기했어.
책 속 프린트벽지 느낌이 뚝방길홍차가게에 있더라고. 오늘의 시와 홍차 그리고 공간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졌어.
평일 낮에 이렇게 잘되는 티카페라니. 문화충격이었어. 인터뷰에 나와있지만 영국 할머니집 느낌 그게 무슨 말인지 여길 가면 느낄 수 있어.
카페 커피보다 가격은 비싼데 분위기 그걸 마시고 느끼고 있더라고. 일단 우리집 식탁 테이블보부터 사야겠어.
다음달에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을 읽으려고 해. ‘충분하다’ 이후로 다시 읽는 쉼보르스카의 시는 어떨까 기대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