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하고 나하고
2024년 3월 15일(금) 오후 7시, 공동육아어린이집 정기총회가 있다. 총회를 위해 나는 매일 숫자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숫자란 녀석이 이렇게 정직했던가 싶을 만큼 한 톨의 거짓도 허락하지 않는다.
돌아보면 숫자가 있기전 나는 말보다 글을 좋아했다. 말보다 글이 좋았던 이유는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건 글로 어떻게든지 표현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글이 말보다 좋았다.
보이지 않는 걸 보이도록 만드는 일. 그게 즐거움이었다. 세계를 창작하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기술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기술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잘해야 기술이었다. 못하니까 애매한 선에서 제자리걸음이었다.
글로 말하는 삶을 살다가 말을 잃어버렸고, 말을 잃어버리자 글도 사라졌다. 글이 사라진 자리는 대체할 것들이 차고 넘쳐났다. 아니 넘치다못해 포화상태였다. 말하지 않아도, 쓰지 않아도 나는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서 슬펐다.
쓰지 않으면 죽는 줄 알았던, 무모했던 시절. 현실에 발붙이고 사니까 숫자가 왔다. 회계라고도 하는 그 숫자. 말과 글보다 몇 만배쯤 정직하다. 언제나 숫자 앞에서는 매번 내가 틀리는 입장이다.
왜 이제서야 숫자가 좋은 건가. 젊었을 때 숫자를 좋아했다면 부자가 됐을까. 숫자가 내게 건네는 정직한 언어들이 낯간지럽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