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페스트>에서 얻은 교훈들
예기치 않은 곳에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됨에 따라 우리 나라 상황도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특히나 신천지라는 종교집단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생겨나고 그들에게서 확진자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이들을 비난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입니다. 더구나 한국 기독교에서 이단이라 규정하는 단체인 신천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몰상식한 일부 기독교 목사들에게 좋은 설교거리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중국에서 처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생해 확산되고 있을 때에도 한국의 일부 기독교 목사들은 성경을 인용하면서 중국과 중국인을 혐오하는 설교를 배설했었습니다. 이제는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대치되는 집단에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증가하고 있으니 앞으로 또 어떤 혐오와 저주가 담긴 설교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떠다니게 될 지 걱정입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이용해 엉뚱한 주장을 해대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최근 오마이뉴스 기사(“총리가 ‘세균’이라 코로나가 들어왔다”는 목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목사이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김민수 기자는 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사사로이 이용하는 사람들이라 말하며 “도대체 어떤 징벌을 받아야 당신들의 혀를 끊어 버리겠는가?”라고 묻습니다.
이들 ‘거짓 선지자’들에게 김민수 시민기자의 기사와 함께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함께 읽을 것을 제안합니다. <페스트>는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발생한 페스트로 인해 도시가 폐쇄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소설입니다. 이번 코로나19 확산에 반응하는 목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소설 속 다양한 인물 등 중 파늘루 신부에 초점을 맞춰 읽어보았습니다.
원인모를 전염병의 확산을 바라보며 파늘루 신부가 대중들에게 했던 설교는 요즘 한국 기독교 일부 목사들의 관점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물론 파늘루 신부는 전염병을 계기로 신자들의 믿음을 성찰해보자는 제안이니 한국 기독교 일부 목사들의 혐오와 저주와는 결이 다릅니다.) 파늘루 신부도 설교에서 불행을 겪고 있는 신자들에게 “여러분은 그 불행을 겪어 마땅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재앙이 처음으로 역사상에 나타났을 때, 그것은 신에게 대적한 자들을 쳐부수기 위해서였습니다. 애굽 왕은 하느님의 영원한 뜻을 거역하였는지라 페스트가 그를 굴복시켰습니다. 태초부터 신의 재앙은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을 그 발아래 꿇어 앉혔습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하시고 무릎을 꿇으시오.”(128쪽)
파늘루 신부는 전염병의 확산을 통해 뜨뜨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에게 하느님께 보다 열정적으로 나아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이 신자들을 더 깊이 사랑하기에, 더 오래 보고 싶기에 전염병으로 심판하는 것이니 하느님을 드문드문 찾아오지 말고 더 열심히 하느님을 찾으라고 설교했습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을 더 오래 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방식이며, 그리고 사실을 말하자면, 그것만이 사랑하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이리하여, 여러분이 찾아뵙는 것을 기다리다가 지치신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재앙이 죄 많은 모든 도시를 찾아들었듯이, 여러분에게도 찾아들게 하신 것입니다.”(132쪽)
한편 전염병으로 인해 점점 더 열악해지는 도시에서 전염병과 맞서 싸우는 의사 리유와 시민 타루는 파늘루 신부와는 다른 관점으로 대응합니다. 의사 리유는 “그 병으로 해서 겪는 비참과 고통을 볼 때, 체념하고서 페스트를 용인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나 눈먼 사람이나 비겁한 사람의 태도”라 말합니다. 파늘루 신부의 설교를 들은 다른 시민 타루 역시 신부의 관점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는 사람이 죽는 것을 많이 보진 못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리 운운하는 것이죠. 그러나 아무리 보잘것 없는 시골신부라도 자기 교구 사람들과 접촉이 잦고 임종하는 사람의 숨소리를 들어 본 사람이면 나처럼 생각합니다. 그는 그 병고의 유익한 점을 증명하려 하기 전에 우선 치료부터 할 겁니다.”(169쪽)
일부(일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한국 기독교 목사들이 소설에서지만 전염병에 맞서 싸우며 환자들을 돌보는 이들의 말과 태도를 배우면 좋겠습니다. 파늘루 신부는 전염병이라는 비극 앞에서 자비심 없이 설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는 전염병에 맞서는 현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아이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아무 자비심 없었던 자신의 첫 번째 설교를 후회하지만 자신의 원칙을 끝내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모든 일에는 언제나 취할 점이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가장 잔인한 시련조차도 기독교인에게는 역시 이득이 되는 법이다. 그러니 기독교가 여기서 정말로 추구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이득이며, 그 이득이 어떤 점에 있는 것이며 어떻게 하면 그 이득을 발견할 것인가를 아는 데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291쪽)
개인적인 일이든 사회적인 사건이든 개인이 자신을 성찰하는데 계기로 삼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공적인 자리에서 게다가 사사로운 정치적 주장을 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들의 유익을 취하기 위해서 사용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이들은 설교를 하기 전에 전염병이 확산되는 현장에서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힘썼던 의사 리유의 말을 꼽씹어 보면 좋겠습니다.
“그 어린애를 기다리는 영생의 환희가 능히 그 고통을 보상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그로서는 쉬운 일이겠으나, 실상은 그 점에 대해서 자기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영생의 기쁨이 순간적인 인간의 고통을 보상해 준다고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소리를 하는 자가 몸소 육체와 영혼의 고통을 맛본 주님을 섬기는 기독교인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으리라.”(292쪽)
일부 ‘거짓 선지자’들이 교훈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페스트>를 읽고 소개하기는 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우리들도 <페스트>는 읽어볼 만합니다. 국내에서도 이번 감염증 확산과 대응은 장기전이 될 것 같습니다. 무한하게 길어질 것 같은 페스트에 무디어져 가고 지쳐가던 오랑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스스로를 환기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재앙에 맞서서 투쟁을 계속하는 사람들에게 차츰차츰 밀려들고 있는 탈진 상태의 가장 위험한 결과는, 외부의 사건이나 타인의 정서 같은 데에 대한 무관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는 무성의에 있는 것이었다.(중략) 그처럼 그 사람들은 점점 더 빈번하게 자기 자신들이 규정해 놓은 위생 규칙을 소홀히 하고, 자기 자신들 몸에 실시하기로 했던 수많은 소독 규칙을 잊어버렸으며, 때로는 전염에 대한 예방 조치조차도 취하지 않고 폐장 페스트에 걸린 환자들 곁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253쪽)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예상하지 못한 정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우리 사회에도 두려움과 불안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겪고 있는 이 사태를 정치에, 종교에, 돈벌이에 이용하는 이들도 많아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시민들은 알베르 카뮈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전하려 했던 ‘인류애’를 기억하고 대처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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