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 끊임 없이 공부하는 수 밖에
얼마 전 <시사IN>에서 주최한 인공지능(AI) 컨퍼런스에서 ‘AI혁명: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미래는 빠르다’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엑스프라이즈재단 설립자 겸 회장 피터 디아만디스가 <시사IN>과의 인터뷰 말미에 덧붙인 말이다. 2016년 구글의 ‘알파고’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인공지능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었고, 데이터 분석과 학습을 넘어 추론과 창작이 가능한 인간의 뇌에 더 근접한 ‘초거대 인공지능’으로 불린다.
대표적인 초거대 인공지능인 오픈AI의 GPT-3는 인터넷에 있는 글과 책 수천 권을 학습하고 나서 사람이 쓴 것처럼 복잡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 수도 있고, 문자 기반의 명령어를 가지고 이미지를 그릴 수도 있다.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여겨지던 창의적인 작업을 이제는 컴퓨터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공지능 발전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기대보다는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인공지능이 글쓰기를 하다니, GETTY)
<시사IN> 인공지능 컨퍼런스에서 네이버 클로바 CIC 정석근 대표가 소개한 초거대 인공지능 ‘하이퍼클로바’ 는 생각보다 우리 실생활에 매우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인공지능 스마트 스피커나 휴대폰에 내장된 AI비서의 말투를 따라하는게 개그의 소재가 될 정도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닮아가기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이퍼클로바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맥락을 이해하면서 대화를 할 수 있었고, 안부 전화까지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열어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맞는 것 같다. 기술 변화의 속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빨라졌고, 변화가 가져오는 결과는 파괴적이다. 이 변화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조력자 역할을 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인지,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간들은 일자리를 잃고 불행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 확실한 것은 내가 맞이해야 하는 미래는 지금보다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나와 내가 속한 일터는 이와 같은 변화에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그나마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연구개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초거대 인공지능은 사람처럼 글쓰기도 하고 맥락을 이해하며 대화를 하는 수준으로 발전했고,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수준의 방대한 데이터를 아주 짧은 시간에 학습하고 분석할 수 있을 정도다. 앞으로 5년, 10년 동한 발전할 인공지능의 수준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미 인공지능 연구원은 내 경쟁자다. 다부스(DABUS)라는 인공지능이 낸 특허가 여러 국가들에서 논란을 일으키며 거절 당해 왔는데, 최근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호주에서는 인공지능이 발명자로 인정을 받았고 인공지능이 낸 특허가 받아들여졌다. 다부스는 두 개의 인공지능이 강화학습을 통해 다양한 주제를 서로 연결하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발명한다고 한다. 내가 해오고 있는 발명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러다이트 운동, 위키백과)
내 일터에서는 여기저기서 인공지능이 이슈가 되자 내가 실제로 수행해야 할 과제가 주어지기도 했다. 연초에 각자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공학도 출신이기는 하지만 코딩도 할 줄 모르는, 손으로 뭔가를 만들고 실험을 해오던 게 전부인 연구개발 엔지니어에게 ‘업무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라’는 과제라니.
막막하기 그지없었지만 일단 해보는 수 밖에. 인터넷 검색창에 인공지능 + (OOOOO)(내가 하는 업무) 키워드를 입력하고 보니 생각보다 자료가 많았다. 내가 속한 기술분야에서도 벌써 몇 년 전부터 그 동안 쌓여 온 방대한 데이터와 머신러닝/딥러닝 등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연구들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눈에 띄는 몇가지 논문들을 추려내고 내 업무에 가장 가까워보이는 것들을 선택해서 내용을 정리/요약해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짧은 보고서를 썼다. 결국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업무를 실제로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최신의 트렌드를 확인하고 앞으로 이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 지 정도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뜸금 없이 ‘인공지능을 자기 업무에 적용해보라’와 같은 경험은 지금까지 일해왔던 기간보다 앞으로 남은 직장생활 기간에 훨씬 더 잦아질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그래서 불편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많아질 것이고, 과거에 내가 성취한 것보다는 변화된 상황에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얼마나 성취하게 될 것인지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와 같은 미래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 공부해 나가는 수 밖에 뾰족한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 분야에서 쌓아온 지식보다 새로운 것을 끊임 없이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는 공부 근육을 키우는 것이 앞으로 살아낼 직장생활에서 훨씬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번 인공지능 과제를 경험하면서 그 동안 나름대로 공부 근육을 잘 키워왔다는 생각도 든다.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에서 일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던 스티브 잡스의 조언을 따라 인문학 소양을 갖추기 위해 꾸준히 읽었고, 생각을 풀어내려 글쓰는 연습을 해왔던 습관이 많은 도움이 된다. 지금 내가 마주한 새로운 상황에서 중요한 혹은 핵심적인 사안이 무엇인지 빠르게 이해하고,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새로운 상황의 맥락에 맞게 연결할 줄 아는 힘이 자연스럽게 길러진 것 같다. 수십 년 전에도 앨빈 토플러가 말했듯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배우고, 적응하고, 잊어버리고, 다시 배우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속도 또한 중요해지고 있다. 무엇을 배워야 할 지 아는 것과 그것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혹은 재빠르게 배울 수 있는 지가 앞으로 일터에서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가능하면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효과적으로 배우는 방법에 대한 키워드를 찾아보면 ‘호기심’, ‘실험하기’, ‘다양한 영역들에서 연결점 찾아보기’, ‘반추하기’와 같은 말들이 자주 나온다.
주식투자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서 우량한 종목을 장기간에 걸쳐 분할매수하라’, 건강을 위해 ‘적당하게 먹고 꾸준하게 운동하라’와 같은 조언과도 같아 보인다. 이와 같은 조언의 특징은 이 조언들을 따르면 높은 확률로 목표로 하는 지점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만 실천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앞으로의 직장생활에서도 호기심을 유지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배우는 과정을 다시 돌아보는 운동을 꾸준히 실천할 수 밖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서평, 혹은 감상을 써오던 연습을 한 2년 여 간 중단했는데, 이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다만 책만으로는 최신의 트렌드나 이슈를 따라가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기에 특정 주제나 사회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주간지나 월간지도 계속 구독할 것이다. 주간지나 월간지를 읽는 것은 호기심을 유지하는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여기서 관심을 가지게 된 분야나 주제에 더 깊이 있는 책을 찾아보는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들이 쌓여가면서 다양한 영역들을 연결해 보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게 된다.
(공부하자, pixabay)
또 한가지 5년여 동안 지속해 오고 있는 새로운 언어 배우기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하나 더 생긴다는 건 다른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창을 하나 더 내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출간하는 월간지를 구독하게 되면서 시작한 프랑스어 배우기는 여러모로 유익하다. 5년을 연습했으면 지금 쯤은 유창하게 프랑스어를 구사해야 할텐데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못하다. 다만 프랑스어로 된 글은 단어를 찾아가며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익숙해졌다.
프랑스어를 연습하면서 연구 논문을 찾아볼 때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할 때 접속할 수 있는 언어가 하나 더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프랑스 문화나 역사, 혹은 인물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호기심도 많아졌다. 언어를 배우면 접촉할 수 있는 세계의 범위가 확실히 더 넓어진다. 이는 또한 다양한 영역 혹은 경험을 서로 연결시켜 보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길러주기도 한다. 여행하듯 혹은 음악을 듣거나 요리를 하듯 지속하는 취미로 삼고 있는데 지속적으로 배움을 이어나가는 데 훌륭한 연습이 된다.
배움은 호기심으로 시작해 반추로 완성되어 간다고도 할 수 있겠다. 새롭게 배운 것들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깊이 생각하며 되새김으로써 배움의 효과는 배가된다고 한다. 사실 성공적인 경험에서보다는 실패의 경험에서 더 많이 배우게 되는데 반추하기는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는데 보다 효과적이다. 하지만 모든 실패가 당연하게 배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연구개발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쉬지 않고 실험을 해왔다. 여태까지 성공한 것보다는 실패의 경험이 훨씬 더 많다. 흔히들 실험 - 실패 - 배움의 사이클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사이클의 실패 다음에는 반추가 자리해야 한다. 반추 없는 실패는 계속되는 실패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실패의 경험이 배움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실패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이해하고 내가 경험한 실패가 어느 지점에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가장 왼쪽에 있는 실패는 실제로 나쁜 실패라고 할 수 있고 가능하면 경험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한편, 실패의 원인이 가장 오른쪽 편에 있을수록 교훈과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반추하기는 실패의 원인을 확인하고 확인된 원인의 양상에 따라서 해결책 혹은 개선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반추는 바둑에서 두고 난 판국을 비평하기 위해 다시 두는 복기와도 유사하다. 실패를 반추할 때에는 바둑 기사들이 복기하며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듯이 자신과는 다른 관점을 가진 누군가와 함께 의견을 나누면 더욱 효과적이다.
인공지능이 나의 일터를 어떤 식으로 변화시켜 갈 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이나 양상은 때를 놓치지 않고 알아채야 할 것 같다. 계속해서 읽고 쓰며 과거의 지식과 최신의 지식의 연결점을 찾아보고, 호기심을 유지하며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태도를 잃지 않고, 배움이 이루어지는 실패를 경험해 가면서 하루하루 나의 일터의 변화를 지켜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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