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 관람 후기
칼로 자른 무처럼 깨끗허니, 새벽 찬 바람이 가을과 겨울의 경계를 그어댄 아침이었다. 여지껏 20도 안팎을 오가던 절기가 곧잘 4도로 꼬라 박혔다. 갔구나, 거참 늦도록 머물러 준 가을이었고나. 언제나 이별이란 떠나간 즈음에나 알아볼 수 있음이다. 뜨겁게 내린 커피를 마시며 아침 첫 담배를 피올렸다. 쨍한 바람이 콧속을 후벼 팠다. “어흐-야, 보람아, 흠썩은 춥다.” 첫 겨울바람이 불 때면, 언젠가 한 번 수능 공부를 하니라고 읽었던 소설의 한 구절을 기어코 읊어대는 오랜 버릇이 있다. 답답한 교실에서 읽어둔 구절이 그렇게나 인상 깊었나. 하마 10년은 더 지났는데, 그리워 찾아보니 이호철의 ‘나상’이란다.
동생과 같이 점심을 나누어 먹고 느지막이 대학로로 간다. 4호선 혜화역에 내려, 마로니에가 보이는 2번 출구로 나왔다. 투명한 유리돔이 덮인 에스컬레이터 위쪽으로, 오래된 플라타너스가 황달 같은 겨울 햇발을 받으며 허적하니 출렁이고 있었다. 가을의 마지막 날, 귤과 아랫목이 절로 생각나는 때의 절묘함 같이, 나는 오랜만의 김광석을 들었다. 오늘의 연극, ‘바람으로의 여행’이다.
무려 12년 동안이나 꾸준히 사랑받은 연극은, 오래된 소극장같이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다. 본 적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 ‘아네모이아’라 해야 하나 혹은 영영 잃어버린, 돌아가고픈 어린 날의 외갓집 같다고 해야 하나, 나는 아직 그것을 말글로써 다 풀어헤치지 못한다. 극장 ‘스튜디오 블루’의 간판은 파르라니 바랜 채 새 칠을 해두었고, 유행은커녕 아주 오래되어 뭉근한 냄새를 채 숨기지 못했다. 그건 잘 묵힌 목제 가구의, 말하자면 맵시 좋은 냄새라기보다는 외할머니의 체취같이 콤콤한 것이다, 보고 싶은. 아직 그렇게밖에 묘사를 못 하겠다.
‘바람으로의 여행’은 김광석 씨의 노래로 이루어진 음악극이다. 초대를 받자마자 친구놈 생각을 했다. 콩떡 찰떡처럼 붙어 다니는 절친한 그놈은 나보다도 지독한 7080 마니아인데 노래방을 갈 때마다 옛날 노래밖에 부르질 못해서, 오죽하면 마음 가는 또래 여인 앞에서 ‘숙녀에게’를 다 불렀다지 뭐야. 김광석 노래는 덕분에 다 꿰었다.
친구와 함께 극장 지하로 내려간다. 티켓 박스 앞에서부터 유독 어르신들이 많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극장은 어르신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객석은 여느 소극장에 비하자면 자리가 퍽 많은 편이었는데, 널찍한 사내 둘이 나란히 앉기에는 조금 좁았다. 서로 어깨를 찡기어 겨우 앉아내자마자, 옆에 앉으신 아주머님께서 거침없는 손으로 내 어깨를 부잡으신다. 저 안쪽에 자기 친구가 무대가 잘 안 보인다는데 자리를 좀 바꿔달라고 하셨다. 친구분께서는 ‘얘는 웬 주책이래 정말, 괜찮아요 젊은이- 호, 호.’라고 하셨다. 어머니들은 까르륵 웃으셨다.
무대는 소위 ‘7080 라이브 카페’ 딱 그 모양으로 준비를 해두었다. 페도라를 쓴 멋-쟁이 아저씨가 나와서 올드 팝 노래를 불러 주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전후좌우로는, 등산복 차림의 어르신들이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다들 목청이 좋았고, 몹시 즐거워 보였다. ‘어, 어어, 미진이, 미진이!! 일로 돌아봐봐, 사진 한 방 찍자고.’ 동창회일까 싶었다. 고요한 정적이 흐르던 다른 객석을 기억하면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내 익숙한 풍경이었다.
연극은 김광석의 노래로 엮어본 동아리 밴드의 청춘 이야기이다. 밝아진 무대 위엔 온통 청-청 패션을 한 젊은이들이 올랐다. 밴드 동아리 오디션을 하는 모양인데, 신입 부원이 94학번이랜다. 아마 여기 객석에 앉아 계신 분들이 딱 저 학번 즈음이렷다. ‘안녕하십니까! 신입생, 94학번, 최, 고, 은입니다!’ 옆에 앉아 계신 아주머니들께선 ‘호-홍’하고 머금은 소리로 탄하셨다.
첫 곡은 ‘그날들’로 열었다. 보컬이야 응당 준수하다마는, 대뜸 라이브 연주가 튀어나와서 놀랐다. 스피커로부터 진공관 앰프 특유의 대기음에 더불어 악기의 앰프 케이블이 문질러질 때 생겨나는 날카로운 노이즈가 흘러나왔지만, 조금 더 집요한 눈으로 연주자들의 손을 바라보았다. 핸드 싱크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베이스가 늦은 박자로 튕기는 구절에서 이들이 준비한 게 연기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그들은 연주하고, 노래하고, 연기한다. 얼굴이 다들 젊어 보이는데 꽤 노련한 기예였다. 배우들이 악기를 배운 건지, 밴드가 연기를 배운 건지 알아맞힐 수 없었다. 합을 잘 맞춘 밴드 사운드, 극장에 라이브 세션 특유의 힘찬 소리가 가득 찼다. 그리고 모름지기 라이브의 꽃은 베이스, 세션별 볼륨 밸런스를 잘 맞춰두어서 다른 소리들에 묻히지 않은 베이스의 음색을 물씬 맛볼 수 있었다. 무대가 좁아 소리가 잘 울렸는데, 타악기를 드럼셋 대신에 퍼커션으로 대체해 귀가 편안했다. 준비가 잘 된 공연이라 생각됐다.
메인 보컬의 음색은 청명하고 기교 없이 담백했으며 편안한 고음을 구사했다. 각종 밴드에서 영입 1순위로 환영받을 만한 젊은 목소리였다. 배우 ‘이예인’의 음색을 통해 전해지는 김광석의 음악엔 그만의 농후함 대신 풋풋한 대학생의 맛이 난다. 아름다운 시절의 비유, 그들은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며, 동아리에 들어 서로 사랑하고, 이별하고, 나이 들어갔다. 세월의 바람을 맞는 동안 누군가는 급변하는 시절 속에 휩쓸려 영영 떠났고, 누군가는 유학길을 떠났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충격 속에서 오래 머무르고, 방황한다.
학교 점퍼를 입던 그들은 과장이 된 무렵에 재회한다. 밴드 창단 20주년을 빙자하여 다시 모였으니, 2013년 언저리이지 싶다. 13학번, 나의 새내기 때이다. 누군가에겐 아련했을 그 시간이 나에겐 새로 찬 기쁨이었던 셈이다. 그때는 그 눈빛을 다 알지 못했지. 학교 대동제 때 중앙 동아리 밴드 차례에는 지긋하신 선배들이 공연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새파란 청춘들을 내려보는 그 눈빛에, 한가득 선량한 아름다움이 묻은 채 와르르 쏟아지곤 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십시오. 진심으로 당부드립니다. 정말, 정말 아름다운 시절입니다.” 하지만 가득 넘치는 그 진심이 그때의 우리에겐 하냥 먼 일이었기에…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 엇비슷한 것도 내 마음 안에 없었던 그때엔. 지금 와서야 10년 전의 기억을 꺼낸다.
10년이 지나 나는 그 두 가지 시간의 분절, 정 가운데 즈음을 지나고 있다. 아주 떠나지도, 그렇다고 머무르지도 못한 시간의 가운데에서 잔뜩 익은 상실감을, 그러나 여전히 때 이른 감상, 일종의 아네모이아를 느낀다. 그런 시절이 다시 올까,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어쩜 우리는 모두 잃어가는 중인가,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그러는 동안 무대에는 ‘변해가네’, ‘서른 즈음에’가 차례로 흐른다.
참 우스운 일이었지, 20대에 그 노래를 들으며 때 이른 감상, ‘아네모이아’에 젖곤 했던 우리들이란. 아직 대학생일 때, 아직 청춘이 한창이었을 때 서른 즈음을 미리 상상하며 슬퍼할 줄 알았던 우리들이란. 하지만 그건 우리가 과히 감상적이었던 까닭이 아니라, 순전히 김광석이 부린 마술이었을 것이다. 주변의 어느 하나 빠짐없이 그런 상상에 젖을 수 있었음이란, 어느 누구의 유별난 감수성 때문이 아니라 그가 여느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끔 한 탓이었을 것이다.
서른 줄이 지나, 오래된 극장에서 이 노래를 이렇게 듣게 되네. 나이 든 분장을 한, 마흔 줄의 연기를 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일찍이, 너무 일찍이 느낀 부끄러운 감상들이 일종의 청승처럼 기억되어, 내 이 노래를 두고서는 딱히 감상적인 글을 쓰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품고 있었는데도, 기어이 이 이야기는 살매 한 번쯤은 짚고 가게 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옆에 앉아 계신 여사님들의 눈빛이 하염 촉촉하였으므로 나는 자칫 청승으로 빠져들기 전에 유유히 빠져나온다. 아직 젖어들기엔 내게 남은 시간이 여전 많다는 것을, 그 얼굴들이 퍼뜩 알려주었음이다. 상실하기에 나는 아직 청춘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기에. 아직 하지 못다 한 것들이 너무 많아 말하자면, 장차 결혼을 하고, 운이 좋다면 아이를 갖고, 밤낮없이 육아를 하고, 돈을 모으고, 운이 좋다면 집을 사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그 모든 사람의 일들을 다 해낸 다음에나 떳떳이 노래하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것, 상실,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앵콜곡은 ‘일어나’였다. 배우는 목에 하모니카를 걸고, 기타를 충분히 매만진 다음에 관객들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고 청했다. 전후좌우 지긋하신 분들께서 전부 일어섰다. 젊은 친구가, 썩 훈훈하고 잘-생긴 청년이 좌중을 향해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하고 노래했다. 나는 이 드문 광경이 보기에 참 다정했다.
서른 즈음에 느끼는 스스로의 한계나 답답함, 생활이나 삶이라는 것은 애시당초 허무한 것임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 속의 자잘한 재미나 가벼움이 소중하다고 느끼면서 재미나고 즐겁게 열심히 살아가자는 뜻으로 만든 곡입니다.
(중략)
하지만 가라앉으면 가라앉을수록 그 끝은 더더욱 깊게만 느껴지고, 다시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죠. '그래, 포기하자. 이 선에서 만족해야 한다' 생각하고 떠오르기로 했죠. 요즈음 전 일정 부분 만족하며, 일정 부분 아쉬워하며 그래도 재미있게 지내고 있죠. 그런저런 생각들을 노래로 만든 것이 "일어나"죠.
- 故 김광석 씨가 올린 게시글 中
‘일어나’는 후렴구 특유의 진취적이고 의지적인 인상에 비해, 꽤 진지한 창작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음악이다. 인생의 허무를 흠썩 느끼고 받아들이면서도, 그저 주문을 거는 듯 일어나라고 스스로 되뇌는 가삿말. 서서히 그것을 이해해가고 있다. 아주 괜찮지도, 그렇다고 완연히 나쁘지만도 않은 삶, 동시에 쳇바퀴 같은 삶, 멈추고 싶지만 멈출 수 없는, 궤도 위의 원운동 같이 나아만 가는 시간인 삶, 그 위에 놓인 우리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것뿐이라는 것을, 일어나라는 말 뿐임을 말이다.
어쩜 그 객석에 있었던 다른 모든 어른들은 나보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들은 살아냈기 때문에. 그래서 공감하고, 그래서 저렇게 환히 웃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일어나 손뼉을 치면서, 일어나라고 일어나라고 따라 노래 부른 게 아닐까? 전부 나 홀로 생각이지만, 가슴에 조용히 차오르는 기쁨을 머금고 무대를 돌아 나온다. 그리고 가만 되뇌었다. ‘일어나,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끝없이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오늘의 공연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