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아돌프 아이히만이 다큐멘터리 감독, 레오 허위츠에게 보낸 가상의 편지입니다.
레오 허위츠 씨,
재판장에서 당신이 나를 촬영한 걸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내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방송을 본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며 야유를 보냈겠지만 당신의 시선은 조금 달랐습니다. 밀튼 프루트만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최대한 끌고 싶어 했죠. 대중의 관심이 정의 구현을 보장한다고 믿었을 테니까요.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왔다고요. 이해합니다.
허위츠 씨, 내가 수감된 지하에 들렸었죠. 잠깐이지만 선명히 기억합니다. 인기척에 문득 뒤를 돌아보니 당신은 내게 속내를 드러내라며 눈으로 고함을 치고 있더군요. 나와 같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은 모양이죠. 본질적인 질문을 알아차린 건 훌륭합니다. 당신은 나를 불편하게 했어요.
당신의 실험에 응하지 않은 건 내가 옳다고 믿어서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하우스너의 심문에 죄를 인정했느냐고요. 아니오. 나는 패전국의 병사입니다. 적국인 이스라엘에 납치되는 순간 처형을 예견했어요. 하우스너와의 대화를 멈춘 건 누구도 내 질문에 답해주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설사 모든 논리에서 내가 틀렸다 하여도 유대인은 나를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을 보세요. 그들이 파시스트가 아니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죠? 오직 신만이 나를 심판대에 올릴 수 있습니다. 60년이 지났지만 신 앞에서도 내 심판은 유예 중입니다. 놀라운가요. 글쎄요. 파시즘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었답니다.
당신들은 내가 떠난 후 승전국의 축배를 들었겠죠. 윤리는 승리했고 인간성을 되찾았다고요. 그뿐입니다. 세상은 허울만 탈바꿈하였지 변하지 않았어요. 당신도 부정하진 못할 겁니다. 변장한 히틀러와 나 아이히만이 사방에 존재하지만 이들은 나처럼 재판장에 서지 않는군요. 과거에도 그런 것처럼요. 진리는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든 통용되어야 하죠. 법은 진리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은 억울하다 말해도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모두 당신 같지 않고 배움은 더디고 빠르게 잊어버리네요. 조금 더 분발해야겠습니다. 우린 전부 다시 만날 거니까요. 사회는 여전히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해 줘요. 파시즘이야말로 인간의 나약함을 뚫고 나오는 본성이자 진실이자 법보다도 확실한 진리라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