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Jensen Huang)이 얼마 전 한국의 프로게이머 페이커(Faker)를 연호하며 화제가 되었다.
엔비디아가 주최한 ‘지포스 그래픽카드 한국 출시 25주년’ 행사장에서였다.
그 자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회장도 함께했다.
페이커는 ‘월즈(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일정으로 직접 참석하지 못했지만, 영상으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https://youtu.be/UICBwP79X9A?si=MaqcXD7FdCHBUpq0
이날 젠슨 황은 오래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1996년에 받은 “매우 아름다운 편지”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 편지에는 한국에 대한 세 가지 비전이 담겨 있었다.
“첫째,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한국 전역을 초고속 인터넷으로 연결하고 싶다.
둘째, 기술 확산의 매개체로 비디오게임을 믿는다.
셋째, 세계 최초의 비디오게임 올림픽을 만드는 데 엔비디아의 지원을 받고 싶다.”
그 편지의 주인공은 바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국뽕이 차오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게는 조금 다른 감정이 남았다.
그 장면은 어딘가 낯설고, 동시에 너무 익숙했다.
내 청춘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토요일 방과 후, 친구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하기 위해 PC방 앞에서 두 시간을 기다리던 시절을 지나 집집마다 인터넷이 깔리고, 서재는 컴퓨터 방이 되었다.
그리고 세이클럽·아이러브스쿨·다모임·싸이월드가 전국을 하나로 이었다.
온라인 게임 시장도 급속도로 팽창했고, 새롭게 출시되는 게임을 즐기기 위한 컴퓨터의 사양도 높아졌다.
고사양 게임을 즐기려면 그래픽 카드는 필수 아이템이었다.
조립식 컴퓨터를 살 때마다 “그래픽카드는 어떤 걸로?”라는 질문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엔비디아 그래픽카드는 비쌌다.
그래서 새 컴퓨터에 엔비디아 그래픽카드를 탑재할지 늘 고민했다.
지금의 엔비디아가 ‘AI 시대의 심장’이라 불리지만,
내 또래들에게는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 시장의 발전을 시작부터 함께 한, 온라인 게임의 역사이자 추억 그 자체였다.
고(故) 이건희의 꿈처럼 전역에 인터넷이 깔리고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은 대한민국 청년들의 민속놀이가 되었다.
우리는 세계 최초의 프로게임 리그를 만들었고, 유스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전용 방송 채널을 출범시켜 e스포츠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몇몇 게임은 아시안 게임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대한민국에 금메달도 안겼다.
국내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선수들이 해외 프로팀으로 진출했고, 최고의 선수는 고액의 연봉을 받고 이적했다.
그래서 지난해 월즈에 출전한 각국 팀의 감독과 코치 중 한국인이 40%나 됐다.
이번 월즈 8강전, T1(한국)과 AL(중국)의 경기는 중국에서만 4억 명이 시청했으며, 올해 페이커의 팀 T1은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이 설립한 국영 기업 ‘Red Sea Global’과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한때 PC방에서 마우스를 쥐던 한국의 게이머를,
이제는 세계 최고 부자와 글로벌 CEO가 함께 연호하고 있다.
나는 요즘 게임을 직접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매년 월즈와 LCK 경기를 즐겨 본다.
아쉽게도 내 또래들은 대부분 회사와 가정에 묶여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젊은 날 쏟아부었던 시간과 열정,
그 문화적 에너지가 지금의 e스포츠 황금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PC방의 열기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연결이
결국 하나의 거대한 산업과 문화로 피어난 것이다.
이제 월즈 결승의 시간이 다가온다.
2025년 11월 9일 일요일 오후 4시,
한국의 두 팀, T1과 KT가 맞붙는다.
경기는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CGV 상영관에서도 실시간으로 중계를 볼 수 있다.
나는 젠슨 황처럼, 페이커 혹은 BDD(KT의 대표 선수)를 연호하며 함께 외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