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술이 사랑받는다
가스레인지에 물 올려 놓고 컴퓨터에 몰두하다 주전자를 태워 먹은 일이 있다. 다행히 주전자를 못 쓰게 된 정도로 끝났지만, 같은 일이 대형 화재로 번진 소식을 이따금 뉴스로 보게 된다. 이 위험천만한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휘파람 주전자이다. 물이 끓으면 휘~~~~~ 하는 휘파람 소리가 나서, 잊지 않고 제때 불을 끌 수 있다. 원리는 입으로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입술 모양을 작게 해서 공기를 내 보내면, 공기가 빠져 나갈 수 있는 구멍이 작아 휘~~~~~ 소리 나는 것이 휘파람이다. 주전자도 마찬가지다. 물이 끓으면 공기가 팽창해 공기가 주전자 외부로 빠져 나가야 하는데, 주전자에 구멍을 작게 내면 공기가 좁은 공간으로 빠져 나가느라 속도가 빨라져 휘~~~~~ 하는 소리가 난다.
휘파람 주전자는 캄 테크(Calm Tech)의 고전적인 예이다. 조용하다는 뜻의 캄(Calm)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캄 테크는 1995년에 마크 와이저(Mark Weiser)와 존 실리 브라운(John Seely Brown)의 논문인 ‘디자인 캄 테크놀로지(Designing Calm Technology)’에서 처음 사용됐다. 평소에는 있는 지도 모르다가 꼭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 조용하게 일을 처리하는 똑똑한 집사를 닮은 기술이 캄 테크이다. 늘 꺼져 있다가 사람이 현관문에 들어서면 스스로 알아서 불이 켜지는 현관등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인간을 배려한다. 사람이 평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고, 꼭 필요한 순간에만 제대로 역할하기 때문에 기술에 대한 피로도가 매우 적다.
칙칙폭폭 큰 소리 내며 내달리던 증기 기관차 등 산업화 초기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 잡는 화려한 기술이 인기였다. 기술은 요란하게 소리 내며 자신이 여기 존재함을 알렸다. 하지만 기술이 일상의 모든 순간에 스며들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술에 대한 두려움과 피로도가 매우 커서 있는 듯 없는 듯 소리 없는 움직이는 조용한 기술이 인기이다. ‘얼마나 첨단 기술인가?’보다 ‘얼마나 조용히 내 삶을 더 편리하게 해 줄 것인가?’가 나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고객의 불편을 조용히 해결하라
인공지능 에어컨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용자 경험을 분석한 LG전자는 고객이 에어컨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LG전자는 고객에게 에어컨 기능을 익혀 활용하라고 가르치는 대신에, 에어컨이 사람을 이해해 스스로 온도를 조절하도록 설계했다. 에어컨은 고객이 주로 설정하는 온도를 기억해 희망 온도를 정한다. 에어컨이 고객이 머무는 공간의 특징, 고객의 사용 패턴, 실내 온도 변화 속도 등을 고려해 알아서 온도를 조절하기 떄문에 사람이 리모컨 붙잡고 온도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스트레스 받지 않고 내 체온에 가장 잘 맞는 쾌적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소비자는 소리 없이 불편을 해결해 주는 기술을 좋아한다. 우리 브랜드가 고객에게 어떻게 하면 더 잘 다가갈 수 있을 지 고민 된다면, 고객의 불편을 정확하게 간파하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해결하라.
출처:
MIT, Designing Calm Technology, Mark Weiser
LG전자 공식 포스트, 인공지능 에어컨 ‘LG 휘센 씽큐’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끌리는 것들의 비밀』 책 출간 안내
'CEO들의 비즈니스 코치'이자 기업 교육을 설계하는 '혁신 전문가'
윤정원 joan0823@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