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폴스 Mar 26. 2020

목련이 피는 봄이 왔는데!

텅 빈 학교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교사를 시작한 첫해였습니다. 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은 교사였습니다. 3월 말 국어 수업 시간, '봄'에 대한 시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꽃이 피는 것을 팝콘 터지는 것으로 표현한 시였습니다. 날씨는 너무 화창했고, 학교 앞 공터에는 벚꽃과 목련이 화사하게 피어있었습니다. 꽃이 앞에 있는데 책으로 소리 내어 읽다니요!

 학생들에게 '봄'을 표현한 시는 몸으로 느껴야 한다며 무작정 밖으로 나갔습니다. 다 같이 목련 아래 앉아 시를 읽었습니다. 학생들은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들떠서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하죠. 봄바람이 불어오고, 벚꽃과 목련은 예쁘고 주변에 친구들이 있는데 어떻게 시를 읽겠습니까!! 

 팝콘 터지는 표현 기법을 배우는 것보다 봄날에 가슴을 쿵쿵 뛰게 하는 이런 감정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아이들은 알까요? 

 시를 다 읽고는 봄을 느끼자며 학교 주변을 한 바퀴 걸었습니다. 이름 모를 꽃들도 보고, 이름 모를 풀들도 보면서 말이죠.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교장선생님을 만났고, 학교 밖을 나갈 때는 미리 알려야 한다고 꾸중을 듣기도 했습니다. 혼이 났지만,  벚꽃 나무 아래에 누워 시를 다 같이 읽던 그 순간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다음 해부터는 목련이 피는 시기가 오면 학생들과 교실 밖으로 나갑니다. 학교 교정에 핀 산수유도 보고, 개나리도 보면서 말이죠. 어떨 때는 우리 반 아이들이 저에게 풀과 꽃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선생님, 이 꽃 이름 알아요?"

 "몰라"  

 "선생님인데 그것도 몰라요?" 하기도 합니다. (선생님이면 다 아냐? 부글부글)

 어제 보니 학교 정원에 목련이 활짝 폈더군요. 코로나로 밖에 나가지 않다 보니 봄이 와있는지도 몰랐습니다. 튤립을 보면 아내가 생각나는 것처럼, 목련을 보니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아직 얼굴도 모르지만요.) '목련이 피고 봄바람이 솔솔 부는 날이면 학생들과 학교 한 바퀴를 돌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영락없이 교사인가 봅니다.  목련이 지기 전에,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사태를 대하는 교사의 자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