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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즈 Nov 06. 2020

우리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

러브엑츄얼리의 삭제된 장면 중에 내가 참 좋아하는 씬이 있다.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에 HELP라고 쓰여있고, 아프리카 여인 두 명이 끝없는 초원에서 나뭇가지 등짐을 지고 걸어가고 있다.

본 영화에는 포스터만 나오게 되었지만, 사실 그 포스터 속으로 들어가면서 두 여인이 나누는 대화가 나온다.

과연 두 여인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오늘 하루 너무 힘들었어', '오늘은 아이들에게 무얼 먹어야 하나', '비가 안 와서 물을 구하기 정말 힘들다' 뭐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까?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었다. 서로 깔깔 웃으면서 남편 이야기, 딸이 사귀는 남자 이야기를 재밌게 나눈다. 나무 등짐을 지고 메마른 초원을 걸어가는 아낙네의 삶에도 가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있다.  


C국가에서 나는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집안일을 전부 새로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집에는 집안 청소를 해주는 "삐"양과 아이를 봐주는 "뗄"양, 운전을 해주는 "뿌"군이 있었다. 

삐양과 뗄양, 뿌군 모두 현지인이고 영어는 거의 하지 못했다. 

이렇게 세 명이나 고용해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인건비가 한국에 비하면 매우 싸기 때문이다. 

세 명 모두를 고용해도 한 달에 우리나라 원화로 70만 원 정도밖에 들지 않았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나를 따라와서 함께 사는 가족들의 고생을 생각하면 이 정도 사치는 부려도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가족 간의 공감대가 있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우리는 모두 보스가 되고 마담이 된다. 보스는 돈을 벌어서 마담에게 주고 마담은 사람들을 부리면서 가정일에서 어느 정도 해방이 된다. 


아이가 어렸던 우리들은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에 한국에서 보다는 육체적인 에너지를 덜 소비하면서 어린 자식들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이런저런 대소사들이 생긴다. 

돈이 없어지기도 하고, 아끼던 그릇이 쉽게 깨지기도 하고, 주방 세제나 세탁기용 세제가 평소보다 금방 떨어지기도 한다. 

계기판에 경고등이 켜지고 자동차 수리를 하러 가보면 뭔가 주행하는데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배기가스를 걸러주는 장치가 통째로 사라져 있기도 했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삐양과 뗄양은 행색이 상당히 남루했다. 

가난한 티가 조금 나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뗄양은 키는 상당히 큰데 정말 삐쭉하니 말라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딸이 하나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는 결혼했냐고 하면 대부분 안 했다고 한다. 그다음 질문은 아이가 몇이냐고 하면 둘 있다고 대답한다. 이곳에서 결혼과 출산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삐양과 뗄양은 점점 살이 붙고 얼굴에 윤기가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특히 삐양은 살이 상당히 찌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떠나오기 전에 임신까지 했다. 


또, 삐양과 뗄양은 언제부터인가 가발을 하나씩 사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 가발은 생활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여성이 원하는 것 같다. 강력한 수세미 곱슬머리보다 찰랑거리는 생머리 가발을 하면 사람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 


예전보다 좋은 옷감의 예쁜 옷을 하나씩 입고 나타나기도 하고, 뭔가 세련된 듯한 가방도 한 개씩 들고 오기 시작했다. 운전기사 뿌군은 번쩍번쩍한 시계를 차고 오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일을 하면서 정기적인 월급이 생겼고, 그 돈이 그들의 삶을 조금씩 나아지게 만들어 주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매달 일을 하면서 일정한 월급이 생기면 그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고 가족을 위해서 스스로를 위해서 잘 쓰면서 삶을 개선시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원조가 아니라 월급이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들도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있고, 우리와 비슷한 삶을 추구한다. 셋다 페이스북을 하고 아직도 우리 집 마담의 아이들 포스팅에 좋아요를 눌러준다. 


삐양은 무사히 아기를 출산했다. 

뗄양은 우리가 떠나오기 전 마담이 배려해서 교회에서 새로 개원하는 병원에 취직시켜주기 위해 노력했다. 관련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지원도 해주었다. 병원에서 취직해서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코로나로 병원이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다. 

뿌군은 우리 사무소 다른 식구들의 운전기사를 번갈아가면서 하다가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먹고 기도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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