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예찬. 기록하는 내가 기특한 밤
sns를 한다. 블로그를 하고 일기를 쓴다. 보여주고 싶어 쓰는 글도 있고 위로받고 싶어 혼자 쓰고 혼자 보는 글도 있다. 멋진 곳에서의 시간을 자랑하고파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하고 즐거웠던 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부러 시간을 들여 남기기도 한다.
흘러가는 무수한 '현재' 속 나는 종종, 아주 쉽게 스스로를 조연이라 착각한다. 큰 프로젝트에서 내가 맡은 파트는 고작 요정도, 블로그에서 보이는 마음을 때리는 글들, 인스타그램에 보이는 잘 나가는 멋진 사람들과는 다른 나의 모습에 나는 종종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이 감정은 시기와 질투와는 조금 다르다. 감정에 겨누는 창 끝이 밖을 향하는 게 아니라 안을 향한다. 남이 잘못되길 바라며 배가 아픈 게 아니라 이것밖에 못하는 나를 자책하고 꾸짖는다(설령 그것의 나의 최선임에 분명하다 할지라도). 심해지면 우울감도 찾아온다. 의욕을 잃게 한다. 자존감을 낮추고 스스로를 갉아먹는다는 점에선 시기, 질투보다 무섭고 위험하다.
위험한 마음이 들 때면, 나는 철저히 나의 시선으로만 흘러가는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꺼내 든다. 일기장을 펼쳐 나의 이야기를 읽는다. 인스타그램의 스크롤을 아래로 내리고 블로그의 지나간 글들을 찾아 나는 나를 만난다. 3년 전 나의 모습과 4년 전 나의 생각, 8년 전 나의 작업물 따위를 본다. 지난 시간들 속에서 나는 꽤 괜찮은 '나'를 발견한다. 열정적이고 즐겁고 찬란한 사람 하나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다. 때때로 상심하고 때때로 힘들고 종종 게으름을 피우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 열심이고 반짝이는 멋진 사람 하나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오로지 나의 시선과 나의 생각으로만 기록해둔 나의 시간이다. 몇 가지는 스리슬쩍 빼먹었을 것이다. 즐겁고 힘든 순간 모두를 기록한 것도 아닐 거다. 그렇지만 그런 과거의 나로부터 위로받고 격려받는다. 그때보다 한 뼘쯤 더 큰 내가 기특하고 대견하다. 과거 꿈꾸던 모습들은 지금의 나와 조금쯤 닮아있다. 아이는 자라 조금 더 큰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된다. 내가 꽤 잘 살아가고 있음을. 보고 듣고 겪고 느끼며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멋지고 단단한 사람이 되었음을. 남들과 비교할 필요 없이 나는 나의 속도로 가면 된다 확신하게 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루치만큼 쌓인다. 썼더니 남았다. 돌아본 과거가 나의 언어로 이만큼이나 쌓여있다. 불안이든 자랑이든 허영이든 조금 더 나를 잘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글과 사진과 영상, 형태를 가리지 않고 자주 남겨야겠다 다짐한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보는 시선만큼 꼭 그렇게 예쁘고 찬란하고 대단하다 느낄 것임을 알기에.
기록은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자 무한한 신뢰의 한 형태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