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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Apr 28. 2024

부부싸움 다음날 + 졸업 문화_240427

미국생활 254일 차



부부싸움 다음날은 항상 피곤하다. 감정의 폭풍은 지나갔고 할 말도 다했지만, 그렇다고 평소처럼 하기는 안 내키고. 그래도 애 때문에 대화는 해야겠고. 오늘이 그랬다.


피차일반일 테니 아침에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집이 엉망이라 (그럼 남편이 저기압이고 그럼 아이한테도 여파가 가니) 정리 좀 해놓고, 남편이 이것저것 하는 동안 아이도 좀 보고, 아이 피부가 요새 다시 안 좋아져서 안 되겠다 싶어 주사도 맞히고, 주사 맞힌 후에는 달래고 초콜릿과자도 좀 사주고, 같이 공원에서 좀 먹이다 보니 점심때가 되었다. 집에 와서 서둘러 점심을 해서 먹이고 점심 상을 치우고서야 1시 반이 되어 도서관에 나갔다.


마냥 신난 아이 ㅎㅎ 오늘은 분홍이 컨셉으로 잡앗는데 나가기 전에 매니큐어에 속옷까지 깔맞춤을 했다 ㅎㅎ


늦은 오후에는 어차피 아이 플레이데이트도 잡혀 있어 저녁 준비할 시간에 맞춰 들어왔다. 남편이 아침에 못한 달리기를 하러 간다기에 보내고, 저녁을 해서 아이를 먹이고, 돌아온 남편 저녁을 먹였다. 아이가 있으면 싸우든 말든 일상은 평범하게 돌아간다. 어쩌면 이게 맨날 지지고 볶아도 우리 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아이가 안정 애착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힘일지도 모르겠다.


결혼하기 전에는 싸울 때 감정적이 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남편이 툭하면 버럭 하고, 그게 나는 큰 충격이었다. 서로 다른 부분을 똑같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뿐인데 왜 감정적으로 버럭 하는 걸까. 이게 뭐가 도움이 된다고. 이렇게 몰아붙여서 어쩌자는 걸까.


이 와중에 딸내미는 어찌나 스윗한지. 물에 꽂은 꽃이 쑥쑥 자라길 기대하길래, 흙이 없고 뿌리가 없어 못 자란다고 했더니, 플데 다녀오면서 흙을 챙겨와 넣었다 ㅎㅎ


그래도 우리한테는 마지막 보루가 있었다. 싸우고 미워도 (아이를 위해서라도) 일상을 유지하기. 나는 여전히 만사 미뤄놓고 봄방학 버티기에 동참했고, 남편은 컨디션이 안 좋아 못 일어나는 내가 깰 때까지 아이랑 둘이 놀았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또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돌아갈 거다. 내일은 근교로 일박이일 여행도 가고 다음 주 수요일이면 봄방학도 끝나고.


저녁에는 학사모 데코 모임에 잠시 다녀왔다. 몰랐는데, 특히 대학생들은 졸업식 때 학사모 장식을 많이 한다고 한다. 한 동기가 자기 집에 모여서 하자며 몇몇을 불러 모았다. 나는 손재주도 없고 굳이 하는 것도 웃겨서 그냥 구경이나 하러 갔는데, 대학원 졸업이라 주최자 말고 함께 모인 3명은 꾸밀 생각이 딱히 없어 보였다. 주최자는 화려하게 꾸몄는데, 무슨 포스터와 모형 차와 LED 등을 붙여서 백투 더퓨처 같은 느낌이 나게 만들었다. 덕분에 미국 대학교를 졸업한 건 아니지만 대학교 졸업 문화도 조금 알 수 있었다.


LED 등이 달린 줄 위에 색을 칠하고 솜을 붙여 불꽃을 연출했다. 아이들의 창의성이란 ㅎㅎ


모임에는 자잘한 간식과 마실 것들이 마련되어 있어, 그걸 먹고 마시며 졸업식이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예를 들어 졸업생 대표로 연설하기로 한 중동계 동기가 요즘 사태로 정학을 당했는데 누가 연설할 것인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대신하겠다고 나설 사람은 없을 것 같고, 나서더라도 무대에 올라 침묵하다 내려오는 등 보이콧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들을 나눴다.


느낌으로는 대부분의 재학생들은 적어도 학교에는 반발심을 가진 것 같다. 얘기가 나오면 다들 적극적으로 학교 욕을 한다. 특히 어린 동기들은 학교에서 배운 정의를 학교조차 실천하지 않는데 크게 충격 먹고 실망한 것 같다. 그 심정이 이해가 가고 안타깝다.


시위를 할 수 있는 여유에 대한 얘기도 했다.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학생들이나 집안이 어렵고 학비 빚을 많이 져 정학의 리스크가 큰 사람들은 좀처럼 시위에 못 나서는데, 간혹 그 학생들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많지는 않을 것 같지만.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것 같고, 나도 여러 이유를 들어 시위에 못 나가는 입장에서, 그런 얘기를 듣는 게 흥미로웠다.


시위대가 잔디밭을 점거한 상황에서 졸업식 장소를 변경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NYU가 매년 하듯 양키 스타디움에서 한다는 얘기도 있던데 궁금하다. 이 기회에 양키 스타디움 가보는 건가 ㅎㅎ


학생회에서 The formal이라는 졸업식 파티 공지를 보냈다. 학생 본인 티켓도 따로 구매해야 하는 데다 동반인을 보통 데려가는 것 같아서, 아이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우리는 스킵할까 싶었었는데, 졸업식 필수 행사로 웬만하면 다들 참여하는 것 같았다. 학생 본인도 돈을 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은 좀 있었지만. ㅎㅎ


이런 홍보 포스터도 만들었더라


우리가 흔히 아는 중고등학생들의 프롬 같이 잘 차려입고 와서 사진도 찍고 춤도 추고 하는 자리란다. 다들 아이를 데려와도 될 것 같다고 해서, 아이에게 구경시켜줄 겸 우리도 경험해 볼 겸 가볼까 싶다. 졸업식 때가 되니 또 이때만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게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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