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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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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May 01. 2024

꿈같은 리조트 여행_240428-29

미국생활 255-6일 차



딸내미 봄방학 중 한 번은 여행을 가려고 했다. 처음에는 칸쿤을 갈까 하다가 지금은 바다가 안 예쁘대서 말았고, (기후 변화 때문에 최근에는 이 계절만 되면 해변이 해조류로 뒤덮인다고 한다.) 다음에는 디즈니 월드를 가려다가 이미 그곳은 낮 최고 기온이 30도가 훌쩍 넘어서 임산부 쓰러질까 봐 말았고, 마지막으로는 퀘벡을 생각하다가 요즘 날씨가 부쩍 쌀쌀해져서 그곳은 더 추워질까 봐 말았다.


그러다 딸내미 친구네가 근교 호텔에 곧 주말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격은 비싸도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길래 찾아보니 … 과연 비쌌다. 일박에 백만 원이 넘었다. 대신 호텔은 150년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엄청 멋졌고, 호수 앞에 자리해서 보트 체험이나 모래 해변 등 다양한 시설이 있었는데 투숙객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비용에는 코스로 제공되는 저녁과 아침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민을 하다가 질렀다. 어차피 비행기 타고 여행 가면 아무리 가까운 곳으로 간다고 해도 3명이 90만 원은 들었을 거다.


저게 다 한 호텔이다. 백년 넘는 기간동안 꾸준히 증축을 해와서 양식이 조금씩 다른데 그게 또 멋지다.


미리 알아보니 이곳은 체크인 전이나 체크아웃 후 시간에도 투숙객에게 모든 시설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심지어 실내 수영장도! 우리는 리조트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해서 11시도 되기 전에 체크인을 했다. ㅎㅎ


가는 길은 산길이라 멀미를 했는데, 내리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발렛, 포터, 체크인까지 서비스가 물 흐르듯 제공되는데, 서비스가 각이 잡혀 있으면서도 따뜻했다. 예를 들어 차에서 내리면서 직전에 옷에 물을 쏟은 아이 옷을 갈아입히느라 분주했는데, 기다리던 발렛 기사가 “우리 딸도 늘 옷을 버려요. 천천히 하세요.” 하며 말을 건넸다. 체크인을 할 때에는 우리 담당 직원도 아니고 옆의 직원이 선물이라며 딸내미한테 비버 인형을 건네고, 체크인을 기다리는 사이에 아이에게 “이름은 뭐라고 지을 거예요?” 하면서 말을 걸어 주었다.


체크인을 하고 바로 호텔 앞쪽으로 나갔는데, 그때부터는 아예 환상 속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차로 들어올 때는 뒤쪽으로 들어와서 잘 못 본 호텔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100년이 넘은 돌성과 나무 호텔이 펼쳐져 있고, 그 바로 앞에 고즈넉한 호숫가가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산과 산책로가 펼쳐져있고.


정말 쉴 새 없이 놀았다. 할 게 계속 있었다. 호수에서 보트를 탔다가, 튤립 정원에 갔다가, 호숫가 앞 흔들의자에 잠깐 앉았다가, 산책로를 걸었다가, 수영장을 갔다 오니 애프터눈 티&쿠키 시간이었다.


요런 뷰를 즐기며!


당 보충을 하고는 산 위 전망대에 올랐다가 바위로 가득한 미로 같은 길을 탐험했다가, 저녁을 먹으러 갔다. 150년 넘게 콘텐츠를 갈고닦은 곳이라 콘텐츠 자체도 많았고, 각 콘텐츠들이 굉장히 세심했다. 전망대를 가는 길에 나는 가드레일 나무기둥에 새겨진 호텔 로고를 보고 감동했고, 남편은 산책로 안 쪽을 향한 나뭇가지는 모두 가지치기가 된 걸 보고 산책로를 위해 산 전체를 조경한 것 같다고 감탄했다.  


이런 깨알같음 이라니!


저녁도 좋았다. 기본적으로 전채 - 메인 - 디저트 세 코스가 준비되고, 주류를 제외하고는 음료와 팁까지 모두 숙박비에 포함이었다. 그러다 보니 (적어도 결제하고 들어온 호텔 안에서는) 돈 생각 없이 계속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심지어 아이도 키즈 메뉴나 정식 코스 중에 선택할 수 있어서, 우리는 당연히 정식 코스를 선택해 함께 나눠 먹었다. ㅎㅎ 음식이 굉장히 맛있지는 않았지만 다 기본 평타 이상은 했고, 재료들이 좋았다.


전채로는 랍스터 비스크 (수프)와 마히마히 생선 타다키, 비프 카르파치오 (육회)를 시켰다. 예상외로 아이가 수프를 맛있게 먹어줘서 기뻤다. 여행지에서는 항상 햄버거, 타코, 감자튀김의 반복이었는데.


엄청난 양의 비프 타르타르


메인으로는 소고기 로스트와 돼지고기 프렌치랙, 해산물 까르보나라를, 디저트로는 딸기 크림 케이크, 초콜릿 케이크와 캐러멜 케이크를 먹었다. 엄청 잘 먹는 남편이 있어서 거의 다 먹었지만 양도 진짜 푸짐하고 좋았다.


디저트 배는 따로다!


배는 부르지만 캠프 파이어와 스모어 (마시멜로우를 꼬치에 꽂아 불에 녹인 것)는 포기할 수 없었다. 산책로를 다시 조금 걸어가 캠프 파이어 장소로 가니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 귀로 그걸 들으면서 아이랑 스모어를 계속 구워 먹었다.


스모어 배도 따로 ㅎㅎ


그렇게 먹으니 다음날 아침까지 배가 하나도 안 고팠지만, 그래도 아침 식사는 즐거웠다. 우선 아침이라 식당 전면 창 밖으로 산세가 훤히 보였다. 보통 호텔 조식 뷔페와 달리 웨이터가 많아서 서비스도 제대로 제공되었다. 요리를 뛰어나게 잘하는 식당은 아닌 것 같지만 워낙 재료들이 좋다 보니, 좀 더 기본적인 요리가 제공되는 아침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었다. 오믈렛 스테이션에 랍스터가 내용물 옵션으로 제공되는 건 진짜 처음 봤다. 신경 쓴 재료들이 많아서, 와플에 뿌리는 시럽도 뉴욕주 시럽, 버터와 크림치즈도 로컬, 빵에 곁들이는 잼도 호텔에서 만든 베리 잼이었다.


좋다!


밥 먹고는 다시 바쁘게 놀았다. 호숫가의 인공 모래사장에서 한참 놀았다. 모래 놀이도 하고 거대한 바위를 파내고 만든 벤치에서 호수 풍경도 구경하다가 둥둥 떠다니는 뗏목에서도 뒹굴거렸다. (한 여름에는 호수 수영도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놀게 많아서 그런지 이 쪽까지 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우리가 거의 전세를 냈다.


이런 자리를 여유롭게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컨텐츠가 많다.


미니 골프장에서 아이와 보트도 치고, 보트도 한번 더 타고, 잉어 먹이 주기도 한참 하다가, 또다시 수영장에 가서 2시간을 놀았다. 체크아웃을 하고도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4시에 다시 애프터눈 티까지 이용한 후에야 집으로 출발했다.


머리 휘날리며 미니 골프치는 딸내미 ㅎㅎ 사실 공 맞추기도 어렵다보니 이건 흥미를 금방 잃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수도 없이 많은 다른 콘텐츠들이 있다!


딸내미는 집에 안 가겠다고 몇 번을 말해서, 다음 날 예정된 플레이데이트로 살살 꼬셔야 했다. 그만큼 좋았다.  한국에서 비슷한 곳으로는 (자연 속의 고급 리조트라는 콘셉트를 고려하면) 아난티 정도가 떠오르는데, 콘텐츠의 양이나 질, 그리고 서비스에서 이곳이 비교가 안될 만큼 더 훌륭했다. 앞서 얘기한 대로 150년 넘게 쌓아 온 콘텐츠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우리 가족이 호텔에 이만한 돈을 지불한 건 처음이지만, 정말 돈이 아깝지 않았다. 역시 세상은 넓고 경험할 건 많다. 이런 경험이 또 없을까 여기 있을 때/ 아이 낳기 전에 열심히 찾아봐야겠다.


이따 수영장 가겠다고 수영복 가방을 매고는 잉어먹이부터 주자니 또 앞장 서는 딸내미. 잉어먹이도 무료라 혼자 몇 번을 리필해 왔고, 다른 아이들도 없어서 잉어들도 독차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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