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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Jun 07. 2024

브로드웨이에서 요즘 가장 핫한 연극, Mary Jane

미국생활 292일 차



얼결에 연극을 보러 다녀왔다. 누가 요즘 제일 핫한 공연을 추천해 줘서 러시 티켓 (공연 당일에 미판매 분 티켓을 싸게 파는 것) 알람을 설정해 뒀는데, 알람이 울리길래 눌러봤다가 구매가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는 일반 티켓 살 때도 신의 손을 가져야 하는데, 여기는 러시 티켓이라도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ㅎㅎ


이렇게 러시 티켓을 파는 앱도 있다


공연은 영화 노트북, 어바웃 타임 주인공 레이철 맥아담스가 출연했다. 안 그래도 요즘 지하철 역마다 그 배우 얼굴이 크게 박힌 이 연극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서 뭘까 싶었는데, 이렇게 가게 되었다. 티켓을 사고 나서야 내용을 찾아봤더니, (사실은 그전에는 뮤지컬인지 공연인지도 몰랐다.ㅎㅎ) 아픈 아들을 키우는 엄마 얘기였다. 가기 전부터 눈물범벅이 될 걸 예상했다.


진짜 이 포스터가 오만 역에 다 붙어 있다.


예상을 했으면 휴지를 챙겨갔어야 했다! 오늘따라 바빠서 정신없이 나가느라 생각도 못해서 몇 벌 안 되는 옷만 다 적셨다. 공연은 진짜 좋았다.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빨이 아니었다. 브로드웨이에서 제일 핫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 되나 싶었다. 스토리도 연기도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작가가 실제로 불치병에 걸린 아들 엄마고 아들을 11살에 보냈다더니, 내용이 진짜 자연스러웠다. 일상이 된 아이 간병, 강한 엄마, 그 와중에 어쩔 수 없이 치고 나오는 슬픔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기억에 남는 장면 몇 가지를 적어보면…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 아이 간병인의 조카가 집에 놀러 왔는데, 아이의 호흡이 갑자기 멈춘 상황. 간병인과 엄마가 아이를 보며 조카에게 911 신고를 부탁했지만, 조카는 너무 당황해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엄마가 전화를 바꿔 받고 신고를 한 다음 다시 아이 옆으로 뛰어 들어가는데, 그 조카가 미안해하자 ‘괜찮아, 아니야. 네가 왜 미안해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했다. 아이의 호흡 정지가 일상인 삶, 그 와중에도 다른 이를 배려할 수 있는 주인공이 참 강해 보이면서도 애처로웠다. 그렇게까지 강해야만 하다니.


2-30년 후에나 얘기예요 - 아이가 병원에 몇 주째 입원을 한 상황. 주인공이 의사와 면담을 하는데, 매일 찍는 엑스레이의 방사선이 아이에게 해롭지 않겠냐는 질문을 했다. 의사가 ‘엑스레이는 당장 아이 상태 확인에 필요한 거고, 방사선의 영향은 2-30년 뒤에나 미쳐요.’라고 했다. 그 순간 퓨즈가 나가듯 주인공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 엄마가 엑스레이가 지금 꼭 필요한 것도, 방사선이 당장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도 정말 모르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게 궁금한 엄마의 마음과, 의사의 말 (2-30년에 아이가 살아 있으리란 보장이 없는 것처럼 들리는 말)을 들었을 때 엄마의 마음이 상상이 간다.


2층 중간 쯤 자리지만, 브로드웨이 극장들은 크기가 작아서 잘 보였다.


레이철 맥아담스도 역을 진짜 잘 살렸다. 원래 연기도 워낙 잘하는 데다 엄마라서 더 몰입해서 잘하는 것 같았다. 나도 엄마라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고. 나는 잡생각이 많아서 공연을 볼 때조차 집중을 잘 못하는 스타일인데 엄청 몰입해서 봤다.


공연을 마치고 나오니, 사람들이 레이철 맥아담스의 퇴근을 기다리며 출입구에 서 있길래 나도 함께 기다려보았다. 경비원이 미리 나와서 ‘레이철을 모두 사인을 해줄 테니 절대 밀지 말고, 레이철의 시간을 너무 뺏지 말고 사인받거나 사진 찍으면 빠져 달라’라고 미리 부탁하는 걸 보고 ‘되게 친절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연예인 퇴근길을 다 기다려보다니 ㅎㅎ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두 아이의 엄마에게 이런 표현하는 건 웃기지만, 팔랑팔랑 나와서 활짝 웃으며 여기저기 사인을 해주고 다녔다. 어바웃 타임에서의 상큼한 여주인공, 그 모습 그대로였다.


사인을 받으면서 ‘아이가 있고 또 곧 하나 더 낳을 거라 그런지 더 집중해서 잘 봤다’라고 했더니, 사진까지 찍고 뒤로 빠지려는데 급히 ‘Good luck with your baby!’라고 외쳐줬다. 진짜 정신없는 상황이었는데 ㅎㅎ 연기도 잘하고 친절하고. 진짜 반했다.


작고 귀엽고 발랄하고 예뻤다!


브로드웨이 연극은 처음이었다. 영어를 잘 따라갈 자신도 없어서 애초에 생각도 안 해봤는데, 진짜 보길 잘했다. 이제까지 본 뉴욕 공연 중 제일 좋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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