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467일 차
미네소타에서 놀러 온 친구 커플의 일일 MOMA 가이드를 했다. 번잡함을 피해 문 여는 시간에 만나서, 핵심 코스를 돌았다.
꼭 봐야 하는 유명 작품 (빈센트 반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모네의 수련 연작이 모여있는 방)과 시즌에 맞춘 작품 (앙리 마티즈의 록펠러 센터 크리스마스 스테인글라스),
그래도 현대 미술 전시니 가장 큰 현대 미술 작품 (이름 모름 ㅎㅎ)과
고객 맞춤 작품까지 (친구가 줄리아 로버츠 영화에서 봤다는 잭슨 폴락 작품).
내가 생각해도 잘 짠 코스였다. ㅎㅎ
처음 미술관을 같이 온 거라서 미술에 대한 관심과 사전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초반에는 약간 고민하며 우왕좌왕했는데, 다행히 나랑 비슷한 수준이라 (미술 잘 모름, 현대 미술은 취향이 아님) 금방 구성을 할 수 있었고 친구 커플은 잘 구경한 것 같다. 나는 보여주느라 딱히 구경을 제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친구들이 잘 봐서 좋았다. 간 김에 친구들이랑 커피도 한 잔 했고.
그런 나를 보며 인연과 관계란 뭘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 친구들은 6년 전 일주일 정도 인연이 닿았던 게 전부다. 그 이후로는 서로 인스타그램에서 소식을 보고 좋아요를 누른 게 전부고. 당연히 이해관계도 없다.
그런데 뉴욕에 온다고 집에 초대하고, 일정을 추천해 주고, 신경 써서 MOMA를 가이드해줬다. 크게 노력을 요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가 무한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이 정도는 해줘야지 싶었다.
그 근간은 아무리 따져봐도 소소하다. 일주일 간의 인연이지만 우리 친정집에 오가던 이들이라 더 가깝게 느끼기도 했고, 둘 다 성격이 좋기도 하고, 내가 미국에 온 후 아무렇지 않게 던진 ‘여행지 추천해 줄 곳 있어?’라는 질문에 엑셀표를 만들어 보내준 데에 대한 감동도 있었다.
내년에도 한국 방문 일정이 두 번이나 있어서 그때마다 얼굴을 보기로 했다. 그 친구들은 (비록 못 가긴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초대해 줬고 나중에라도 그랜드 캐년에 가려면 언제든 자기 친정집에서 머물라고 해줬다.
미네소타에 사는 커플과 경기도에 살던 내가 이렇게 연결이 되고 이어지다니. 진짜 사람 인연이란. 소소한 계기로 맺어지는 데 그게 또 은근히 강하게 이어져 나가기도 하고 흥미로운 일로도 연결되고 희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