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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Oct 17. 2020

#1화.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

[나는 광화문덕이다] 무교동 공원 속 포장마차 '황소 막창구이'

나는 광화문덕이다
#1화
“그대의 치밀하고 치사한 계략은 하늘의 이치를 알았고, 기묘한 꾀는 땅의 이치마저 꿰뚫었구려.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할 줄 알거든 이제 그만 좀 작작해라.” 사람에 속고 사람에 상처 받으며 사람 속에서 부대끼며 오늘 하루도 고군분투한다.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가며 느낀 소중한 마음을 이제 연재를 통해 기록하려 한다. 하늘은 삶을 귀한 덕으로 여긴다. 나는 광화문에 산다. ‘광화문덕’이다. [편집자주]

"오늘도 해장이 필요하시군요"


그렇다. 오늘도 난 만신창이 상태다. 전일 1차에서 끊어주겠다는 그분(?)만 믿고 있었는데.... 믿었던 그분이... "맥주로 입가심하자"며 2차를 선언한 것이다.


기억은 어느새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눈을 떠보니 집이다.


아픈 속을 부여잡고 겨우겨우 출근 준비를 마쳤다. 출근 길이 버거운 아침이 다시 내게 시작됐다. 핸드폰 통화내역을 살펴보니 오랜 친구들에게 여기저기 전화질(?)을 해댔다. 어제 마신 이들과 연결고리가 있는 이들이다.


수습해야 한다. 가장 먼저 내 오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제 술 마시고 멍멍이가 됐네... 너에게 못난 모습을 보였어. 미안하다"


그리고 잠시 후 친구의 답신이 왔다.


"술 마시면 다 그래 되는 거야. 나도 술 많이 마시면 그래. 건강 생각해서 조금만 마셔라"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한다. 문득 얼마 전의 일이 떠올랐다.


최근 알게 된 이다. 평상시 냉철하고 빠르게 업무를 마감하는 내 업무 스타일을 좋아한다. 급격히 친해졌고 술 한잔을 기울였다. 나를 좋게 봐준 그가 고마워 그날도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기억은 저 멀리 블랙홀 너머로 흡수돼버렸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장문의 문자가 와 있었다.

요약하면...

"너와의 술자리는 좀 불편했다. 네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비수처럼 날아든 문자에 자책하며 며칠을 보냈지만, 그럴수록 마음의 괴로움은 더해져만 갔다.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나를 좋게 봐줬던 이를 떠나보내는 것은 늘 마음 아픈 일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 약속이 있다. 두 달 전에 잡은 약속이라 마음의 아픔을 간직한 채 발걸음을 옮긴다.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무교동 서울예금보험공사 쪽으로 향하는 중이다. 예보 뒤편엔 야외에서 하늘을 벗 삼아 막창에 술 한잔 마실 수 있는 곳이 있어서다. 몇 번을 간 곳이지만, 가는 길이 매번 갈 때마다 새롭다.


동료들이 하나둘씩 모인다. 오늘은 어떤 인생의 배움을 얻을지 기대된다. 언제나 그렇듯 좋은 사람과의 술자리는 늘 즐겁고 설렌다. ‘직장인의 낙은 어쩌면 고단한 일을 마친 뒤 한풀이하듯 술 한잔 하며 푸념을 쏟아내는 것 아닐까’


6시에 칼 같은 퇴근하고 갔음에도, ‘어찌 이래 빨리 도착한 것인지...’. 이미 자리는 꽉 차 있다. 늘 투덜투덜 거리는 게 특기인 동료가 "굳이 기다려서 먹을 만한 곳이냐"며 핀잔을 준다. 다른 곳으로 가자고 앙탈을 부린다. 그에게 난 자애로운 눈빛으로 “그래도 한 번쯤은 경험해볼 만한 곳이야”라며 너스레를 떨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애교를 부려본다. 그리고 10여분 기다린 끝에 자리가 났다. 다행이다. 더 늦었다면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가야 했을지도...

일러스트 = 이주섭

이곳은 무교동에서 ‘공원 속 포장마차’로 유명하다. 포장마차라 불리는 이유는 마련된 드럼통 위에서 막창을 구워 먹어서다.


“막창 집에 왔으니 막창을 먹어야지”라며 호기롭게 막창 3인분에 소주를 시켰다. 이곳에서 난 늘 ‘진로이즈백’을 시킨다. 목 넘김도 좋고 안주와의 조합도 좋다고 생각이 들어서다.


일단 앉았으니 소주로 입을 헹군다. 마치 맛있는 고기를 먹기 전 입안을 소독하듯. 쓰지만 시원한 소주가 식도를 훑고 지나가고, 뻥 뚫린 하늘과 사방에서 부는 서늘한 바람은 하루 일과와 더위에 지친 내 몸을 어루만지듯 스쳐간다.


막창이 나오기 전이지만 이곳 분위기가 소주잔을 자꾸 기울이게 한다. 이래서 술은 포장마차라고 했던 것일까. 한 잔 두 잔 속에 어느덧 이날 술자리는 무르익어간다.


막창.... 막창이라...

소주 한 병이 사라지고 두 병째가 들어올 때쯤 막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막창을 굽는다. 석쇠 위에 놓인 투박한 고기가 서서히 익어간다. 행여 고기가 탈까 연신 집게로 뒤집어 댄다. 연기가 날아온다. 눈물이 날 정도로 눈이 맵지만 참아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노릇노릇하게 익은 한 점을 입에 넣는다. 따뜻한 기운이 혀로 번져나간다. 입안 가득 온기가 채워진다. 혀로 고기를 밀어 어금니로 가져간다. 하... 탱글탱글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고기를 찍어 먹는 장이 함께 나왔지만 구태여 찍어먹지 않는다. 그 자체로 충분하다. 내 나름의 고기 철학이다. 정말 맛있는 고기는 그대로 즐겨야 한다. 있는 그대로.


잠시 짚고 넘어가면, 막창은 소의 네 번째 위다. '홍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구이나 탕의 재료로 쓰인다고 한다.


막창은 소 한 마리당 생산량이 200~400g 정도에 불과하다. 극히 소량이다. 쫄깃한 식감이 참 인상적인 고단백 안주다.


물론 잘하는 집에서 먹으면 무엇이든 맛있겠으나, 잘못 먹으면 내장 부위 특유의 냄새가 있어 거부감이 생길 수 있는 안 주긴 하다.


사실 이날 유독 연기가 내게만 집중돼 눈물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피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너무 버거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게로 달려드는 연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연기가 무슨 죄가 있겠냐 싶어서다. 고기가 구울 때 연기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연기는 바람이 부는 대로 날아가는 것 또한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를 향해 짓궂은 구애를 하는 연기마저도 우리 자리에서는 웃음꽃을 피우는 하나의 소재가 됐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와 우리의 지금의 고민들, 앞으로 불확실한 미래 등에 대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문뜩 내 앞에 앉은 동료가 내게 묻는다.


“그런데 형! 왜 형은 절 그렇게 잘 챙겨줘요. 제가 살갑게 누군가를 대하는 스타일도 아닌데...”


고마운 질문이다

얼큰하게 취해가고 있지만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답한다. 또박또박. 약간 느끼하게!


“넌 말수는 적지만 네가 내게 말하는 소중한 말들이 다 내게 진심으로 느껴져. 그래서 난 너의 그런 진심 어린 마음이 좋은 거고.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는 게 이유가 있나? 그냥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잖아. 네겐 진정성이란 강력한 사람을 끄는 무언가가 있어 난 그 힘이 끌린 거고 ^^”


쓸진지(쓸데없이 진지함)란 별명을 단 나 답게 진지한 모드로 답을 하니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어색할 땐 술이지! 마시자"

일러스트 = 이주섭

술 한잔을 또 들이키고 깊은 호흡을 한다. 그리고 잠시 취기를 달래려 주위로 눈을 돌린다. 사람들의 표정은 저마다 각양각색, 연령대도 제각각이다. 연인들도 있고 동료들도 있다. 그들이 이곳에 와서 술 한잔 하는 것은 저마다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가 더 먼 미래를 함께하고자 꿈을 꿀 것이다. 동료로서, 연인으로서, 미래를 함께 바꿔나갈 주역으로서...


자리는 무르익어가고 우린 그렇게 웃고 떠들며 소주에 막창을 즐겼다....... (페이드 아웃)..........


나는 많은 이들을 만난다

두 부류다. 내가 찾는 이거나 나를 필요로 하는 이다. 우리가 만남을 이어가는 것은 업무적으로 엮여있어서 일수도 있고 인간적인 매력을 느껴서 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자리에서 짝사랑은 만남을 오래도록 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도, 그에게도 사람을 만나는 기준이란 것이 있다. 만나야 하는 혹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시간은 정해져 있어서다.


내 경우 내 주위에 나와 오래 함께 하는 분들은 공통된 점이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분들이다. 우리는 서로의 성장을 위해 자극하고 독려하고 위로해주기도 한다.


다만, 난... 속상하게도 술을 마시면 너무도 쉽게 사라져 버리는 내 기억 때문에 늘 슬프다. 기억을 잃지 않으려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시작하더라도.... 결국 술자리가 이어지면.... 매번은 아닐지라도 내 기억은 저 멀리 날아가버리는 때가 생긴다. 고쳐야 한다 늘 다짐하지만 사람이 어찌 쉽게 변할까...


그래서 최근에는 아예 내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이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집중하기’다.


연애할 때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상대의 매력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나와 엮이지 않았던 그 당시 그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 그것이 좋아 고백을 하고 그가 그것을 받아주게 되면 드디어 '너와 나'에서 '우리'로 발전한다.


하지만 이때부터 '나'는 '너'를 자신의 기준으로 마름질을 하기도 한다. '나'의 기준에 '너'를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나'가 사랑했던 '너'란 존재는 사라지고 '너'는 어느새 '또 다른 나'가 되어있다. 문제는... '나'의 장점만 닮았으면 좋겠지만... ‘너’란 존재를 비난하던 ‘나’의 모습, 다시 말해 '나'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도 투영돼 버린다.


물론 '나'의 기준이 부당하다며 완강하게 버티는 '너'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와 '너'의 관계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설렜던 마음들은 잠시 스쳐가고 '좋은 추억'보다 '안 좋은 기억'들이 그들의 하루하루 시간 속에 기록된다.


결국 '나'와 '너'는 '나'와 '또 다른 나'가 되어 '우리'가 아닌 '남'이 되곤 한다.


반대로 '나'와 '너'가 다름을 인정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관계를 이어나간다. 이들은 서로의 매력을 흠모하며 오랜 관계를 이어간다. '나'가 사랑했던 '너'가 변치 않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사실 요즘 난 남들이 보기에도 멋진 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바뀌어 보려 정신 바짝 차리려고 노력했다. 술자리에서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내가 나오지 않게 하려고 이를 안물고 버텼다. 그런데.... 술을 아예 끊지 않는 이상...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다...


그게 현실이다

평소 이성이 있을 때에는 적당히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장단에 춤이라도 추지만, 내 내면의 자아는 직설적으로 문제의식을 적나라하게 쏟아붓는 스타일이다.


사실 술자리가 좋은 건 늘 긴장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약간의 긴장을 이완시켜주는 역할을 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조금 서먹서먹했던 사람들에게 술 한잔 하기를 청하기도 하고, 오해로 인해 서로 불편한 사람들이 술 한잔을 기울이며 그러한 오해를 녹이기도 하지 않은가.


저녁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어쩌면 내 지금 상황이 오늘 가서 먹었던 막창과 이를 파는 가게과 같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창은 호불호가 갈리는 안주다. 징그럽다고 냄새난다고 역하다고 아예 먹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쫄깃하면서도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게 전해오는 그 식감을 잊지 못해 찾는 이가 있다.


‘공원 속 막창 포장마차’ 역시 실제 경험한 이들에게는 평이 엇갈릴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소주를 기울일 수 있는 자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끊임없이 날아오는 연기로 인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안겨준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을 곳일 수 있다.


나도 완벽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초반 어색해서 한잔, 말이 끊겨 뻘쭘해서 또 한잔, 침묵의 시간이 다시 찾아오면 그것이 싫어 또 한잔....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다 보면 어느새 난 내 주량을 넘어 마시기 일쑤다. 매번 속된 말로 ‘꽐라가 되지 말자’고 거듭 다짐하지만, 현실 속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아 늘 속상하고 괴롭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건, 나란 사람이 가진 많은 단점에도 기쁜 마음으로 나를 보러 와주는 고마운 이들이 있어서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와 어딘가에서 술 한 잔 마시고 있다. 나를 찾아주는 이에게 기꺼이 내 간의 수명을 함께 하며 내 생명의 시간을 나누는 것을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일러스트 = 이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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