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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일구씨 Jan 03. 2019

1화 시작은 사이비 사회과학도 때문이었다.

미드 브레이킹 베드와 스튜디오 일구씨

사이비 사회과학도

 여기 술 처먹고 아무 집에서나 널브러져 자는 인간이 있다. 고등학교 동창으로, 비주류 냄새 흠뻑 풍기는 사이비 사회과학 대학원생이다.


 언젠가 그와 술을 먹다가(만나봤자 술 밖에 안 마신다) 미드 <브레이킹 베드>를 꼭 보라고 추천해줬다. 이 드라마는 내가 사진 스튜디오를 여는 데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주인공이 너무 멋있었기 때문이었다.

브레이킹 베드의 한 장면

 <브레이킹 베드> 주인공과 사진 스튜디오 개업의 연관성이 뭐냐고 묻는이가 있을 법 하다. 말기암 상태의 고등학교 화학 교사가 인생의 회의를 느끼고 끝내주는 마약상이 되는 이 드라마. 미국의 부조리한 역할극 연출이라든가, 인간의 내면성 어쩌고 메타 크리틱 저쩌구 하는 친구 자식의 사변은 둘째 치고. 날 개업의 길로 이끈 것은 바로 주인공이 다루는 ‘화학’ 때문이었다.


 이과생들이야 웃겠지만 나처럼 평범한 문과생에게 기초 화학은 완전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마치 연기처럼, 원소기호, 분자구조 같은 볼 수도 알아먹을 수도 없는 텍스트의 화학은 내 머릿속에서 머물다 흘러나갔다.


 그러나 주인공은 달랐다. 이 연기 같은 화학공식을 적절한 도구를 활용해 끝내주게 완벽한(?) 마약을 만들고 그 업계 스타가 된다. 화학이 추상적이라고 말하는 문과 태생에게, 이름도 어려운 물질과 실험기구로 구체적인 완성물을 만드는 일은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약품 제조공간


   사진에도 비슷한 분야가 있었다. 고전 인화, 얼터너티브 사진 등으로 불리는 19세기 사진의 초창기 기술이 이 <브레이킹 베드>와 공통분모를 이루고 있다. 화학 가루로 약품을 만들어 미술용 종이에 도포(약을 겉에 바르는 것)를 하고 필름에 자외선 노출을 한 뒤 세척하는 작업들. 화학 공식이라는 추상에서 사진이라는 구체로 완성되는 <브레이킹 베드> 속 모습과 같은 과정이다.

약품 도포 과정

 고전 사진 스튜디오를 열겠다는 계획에 내 주변 사진전공자들의 분위기는 100에 90은 싸했다. 그러나 서른 즈음 사진에 흥미를 잃어버린 전공자에게 다시 찾아온 매력은 좀처럼 놓기 쉽지 않았다. 조금씩 장비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덜컥 작업실을 구해버렸다. 험난 하디 험난한 스튜디오 ‘일구씨’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1858년도에 개발된 검프린트 기법(Gum bichromate process). 첫 인화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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