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Dec 04. 2020

신화의 탄생

영화 <맨 프럼 어스>

They believe you because they have to.


종교와 영화 수업의 세번째 영화로 리처드 쉔크만의 <맨 프럼 어스>를 감상했다. 우선 영화 자체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차라리 마지막 반전이 없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존이 동료들이 던진 추측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었다면 훌륭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관객에게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주기 위해 반전을 넣은 듯한데, 그 때문에 오히려 싱거운 영화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나는 마지막 반전이 없다고 생각하고, 즉 존이 진짜 불사의 존재인지 혹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가정하고 글을 쓰려고 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신을 찾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말이 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종교적 존재라는 뜻이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적 이성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과학이 발전할수록 종교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고 나중에는 모든 사람이 오로지 합리적 이성을 따르리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과학이 계속 발전하더라도 종교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종교가 사라지더라도 그 자리를 새로운 종교가 대체하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사고과정에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온 개인적 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는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인데, <맨 프럼 어스>는 종교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잘 보여주었기에 위 문제와 관련해서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완전하고 절대적인 존재에게 끌리는 성향이 있다, 또한 인간은 (과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러 면에서 유한한 존재이므로 불가능한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한다. <맨 프럼 어스>는 인간의 그런 성향을 잘 보여준다. 존의 동료들은 존의 이야기가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 하고, 어느 시점에 가서는 “사실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존이 우리를 믿게 할 수도 있다며 믿음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증명해보라는 동료에게 존은 “I don’t want to prove it”라고 말하는데, 이는 신화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발언이다. 믿고자 하는 자에게 그 이야기가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존의 이야기를 믿을 것인지는 동료들의 마음에 달려있다.



인간이 종교적 존재로서 가지고 있는 성향은 신화를 직접 써 내려가는 데까지 이른다. 동료들은 존의 이야기를 불신하여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그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하는 욕구를 드러냈고, 존은 이 질문들을 활용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사실상 존의 이야기는 동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존이 말한 것처럼 그들은 “불가사의를 즐기고 해석을 붙여가며”, “서로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신화를 창조했다.


이처럼 <맨 프럼 어스>는 신화과 창조되는 과정과 사람들이 신화를 믿게 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인간의 종교성에 관하여 이 영화는 내 생각과 맥락을 같이했다. 한편으로는 과학과 이성의 힘이 이러한 인간의 성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요한 것은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