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Dec 05. 2020

이방인, 괴물, 그리고 신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종교와 영화 수업의 네번째 영화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를 감상했다. 이 영화가 2018년 봄 무렵에 개봉했을 때 극장에 보러 갔었다. 영화제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를 해서 그런지, 당시에는 영화가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2학기에 종교와 영화 수업을 신청하면서 영화 목록에 있는 <셰이프 오브 워터>를 발견했다. 나는 의아했다. 이 영화에 종교적인 요소가 전혀 없었다고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업을 듣기 전에 먼저 영화를 다시 감상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화가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도 않아 신화적 요소나 종교와 관련된 메타포들이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생각하며 종교적 관점을 가지고 영화를 보자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신화의 요소와 구조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학기에 종교적으로 영화를 해석하는 관점을 배우면 앞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신화적 구도를 바탕으로 <셰이프 오브 워터>를 바라봤을 때, 괴생명체를 신적인 존재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엘라이자에게 괴생명체와의 사랑은 육체적 사랑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종교적 사랑으로 보이기도 한다. 엘라이자는 괴생명체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따라서 그녀에게 이 괴생명체는 특별한 힘을 가진 미지의 존재다. 사람들은 특별한 힘을 가진 미지의 존재를 신으로 받들곤 한다. 또한, 엘라이자는 ‘말을 못 한다는’ 이유로 고통을 당하는 괴생명체에게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끼고 그를 구하려고 한다. 즉 그녀는 괴생명체와의 관계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어 이 관계에 헌신하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고 신을 믿게 되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엘라이자가 괴생명체를 마주 보고 ‘you will never know’를 부르는 장면을 살펴보자. 그녀가 처음으로 소리를 내어 말을 하는 순간 조명이 꺼지고 마치 방 안에 혼자 앉아서 노래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 된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들리는 노랫말과 흑백 연출은 성스러운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신적인 존재로서 괴생명체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그 바로 다음 장면에서 그들은 영화 속 영화로 들어가는데,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서 이야기했듯 영화야말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있다는 점에서 종교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괴생명체에 대한 엘라이자의 사랑은 일종의 종교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영화에서 종교적 태도를 드러내는 또 다른 인물은 스트릭랜드다. 스트릭랜드의 종교와 엘라이자의 종교의 대결 구도는 현실 세계에서 가치가 대립하는 문제들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이 대립은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전통적 의미에서)‘남성성 vs 여성성’, ‘분노와 파괴 vs 사랑과 공감’, ‘수직적 vs 수평적’, ‘힘의 논리 vs 연대의 언어’, ‘절대주의 vs 상대주의’ 등이다.

이 영화는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통해 절대주의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상대주의적 가치관을 지지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가치는 무엇인가? 절대적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보는 과정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화의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