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Jan 26. 2021

욥의 우화

영화 <시리어스 맨>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 구약성서, 욥기 38장 4절 -


코엔 형제의 <시리어스 맨>을 감상했다.


<시리어스 맨>은 구약 성서의 욥기를 모티프로 삼아 신정론(theodicy)의 문제를 다룬 영화다. 신정론이란 신이 존재하는데도 왜 세상은 정의롭지 않고 악이 존재하는지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욥이라는 인물은 신을 따르고 도덕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그에게 예기치 못한 불행이 닥쳐온다. 재해가 찾아와 욥의 가족들이 죽고 혼자 살아남은 그는 끔찍한 질병을 앓게 된다. 그는 도대체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는데, 친구들은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을거라며 각자 나름대로의 가설을 제기한다. 그러나 그 어느것도 욥은 수긍할 수 없는 이야기다. 욥은 질병으로 인해 피를 흘리며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고 억울함을 부르짖는다. 즉 신정론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나는 당신을 따르는데 왜 이런 고난이 내게 찾아오는가. 내가 이렇게 괴로운데 당신은 지켜만 보는 것인가. 이때 신이 그의 앞에 나타난다. 그러고는 상당히 독특한 화법으로 욥의 물음에 답한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이후 이어지는 말씀은 결국 내가 세상을 창조할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는 이야기다. 욥은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괴로워했으나, 애초에 인간은 창조주인 신의 뜻을 헤아릴 수 없으므로 모든 일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오만이라는 뜻이다.


<시리어스 맨>은 욥기의 플롯을 영화로 재현했다. 물리학 교수인 래리는 정확한 수학 방정식으로 세상의 작동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뇌물을 대가로 학생의 성적을 올려주지 않는 도덕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이유 없는 불행이 그에게 연속적으로 찾아온다. 그는 외친다.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야?" 래리는 유대교인이므로 그의 친구는 랍비를 찾아가서 조언을 구해보라고 말한다. 래리는 세명의 랍비를 만나는데 그들은 그럴듯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 래리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인과와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진지한 사람(시리어스 맨)이다. 그러나 랍비들은 "결국 우리는 알 수 없다." "착하게 살아라." "삶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꿔라." 등의 공허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래리가 의미를 찾으려고 할수록 그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리는 느낌이다.


코엔 형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우연에 기반한 일들에 의미와 인과관계를 부여하고자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냉소적 태도를 보였다. 그들의 영화는 허무주의의 색채를 띈다. 지난 학기 종교와 영화 수업에서 배운 바에 따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아이가 심각한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부모는 "왜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긴건가요?"라고 묻는다. 의사는 "우연히 이 아이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뿐입니다."라고 말할테지만, 성직자는 "그것은 신의 뜻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때로 우리에겐 의사보다는 성직자가, 과학보다는 종교가 필요하다. 래리도 자신에게 왜 이런 불행이 닥쳤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이것이 전부 우연이라면 삶은 너무나 허무하기 때문이다. 아니 뭔가 이유를 알아야 반성을 하든 고치든 할 것 아닌가. 그런 래리에게 코엔 형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단순하게 받아들여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안톤 시거의 동전던지기처럼 무의미한 사건들로 가득하므로. <시리어스 맨>과 욥기의 이야기는 다른 듯 하면서도 같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의 뜻이거나, 혹은 아무 의미도 없거나. 사실은 똑같은 얘기 아닌가.


덧붙이자면 마이클 샌델도 최근 저서 <공정이라는 착각>에서 욥의 이야기를 인용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능력주의 신화를 비판하는 내용인데, 샌델은 그 기원을 성서에 둔다. 유일신을 따르는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이 세상의 모든 일에 신의 뜻, 다시 말해 모종의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믿게끔 하였다는 주장이다. 욥기에서 욥이 자신이 당한 고난에 대해 친구들에게 하소연했을 때 친구들은 그를 위로해주기는 커녕 네가 뭔가 잘못한게 있으니까 신이 벌을 내린 거라고 다그친다. 욥도 자신이 뭔가를 잘못해서 이런 불행이 찾아온 거라고 생각하고 괴로워한다. (오히려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준 것은 신이었다) 이처럼 '인과관계를 찾아내려는 인간의 본능'이 현대 사회에서 능력주의 신화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능력조차 운에 의해 타고나는 것인데도 우리는 어떤 사람의 성과가 전부 그가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라고 여기곤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승자는 오만함을, 패자는 열등감과 모욕감을 느끼게 되어 사회적 갈등이 심해진다는 게 샌델의 논리다. 현대 사회에는 코엔 형제의 우연론적 냉소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 책도 꽤나 흥미로운 논제를 제기하므로 추천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정의 물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