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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Oct 25. 2021

운인가 실력인가

책 <공정이라는 착각>

마이클 샌델은 어젠다 메이킹을 참 잘한다. 그 시대에 화두가 될만한 어젠다를 발굴해서 스토리로 잘 풀어낸다. 신작이 출간될 때마다 토론 주제로 활용되고 매번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공정하다는 착각>은 최근 몇년간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공정 이슈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권에서도 공정이라는 키워드가 핫하다.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이 젊은 나이에 당대표가 된 사건만 봐도 그렇다. 이준석은 2~30대 그중에서도 특히 남성들이 공정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정확히 꿰뚫어보고 이를 어젠다로 삼아서 지지를 얻었다. 일각에서는 이준석이 반페미니즘 정서를 기반으로 떴다고 하는데, 물론 그런 정서에 편승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이준석 사상의 본질이 반페미니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준석의 본질은 그냥 시장주의다. 즉 결과적 평등을 배격하고 철저하게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쿼터제 등 결과를 인위적으로 보정하는 정책들에 반대한다. 그리고 사람을 채용할 때 나이 인맥 출신 같은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선발하겠다는 것을 내세운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능력주의가 부상하고 있는 시점에 출간된 샌델의 책은 능력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최근 들어서는 정치적으로 어느 쪽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명제가 "누구나 자신이 태어난 환경에 구속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언뜻 듣기에도 매우 합리적이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존재하지 않아 평생 자신이 태어난 신분에 구속되어 살아야 했다. 그에 비해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현대 사회는 진보한 것으로 보인다. 샌델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신분제 사회에서 현대의 능력주의 사회로 변천하면서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다.


신분제 사회에서 평민으로 태어난 사람은 귀족들을 보면서 '내가 비록 운이 안좋아서 평민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지만, 저들도 그저 운이 좋아서 귀족으로 태어난 것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한편 현대 사회로 넘어와서도 불평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그런데 패자에게는 이제 변명의 여지가 사라져 버렸다. 능력주의를 숭배하는 사회일수록 패자들의 삶의 여건이 좋지 않게 된 모든 책임은 오로지 본인에게 돌아간다. '니가 열심히 살았어야지'라는 자업자득의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반대로 경쟁의 승자들은 자신이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결과이므로 마땅히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기게 되고, 이는 쉽게 오만함과 패자들에 대한 멸시로 이어진다. 경쟁의 패자에게는 무거운 책임감과 열패감이, 승자에게는 남을 무시하는 오만함이 부여된다.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었다는 것이 샌델의 분석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핵심적인 경쟁 요소인 '능력'은 '재능'과 '노력'이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재능'은 사실 타고나는 것이다. 머리가 타고나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우연히 머리가 좋게 태어나는 것과 우연히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는 것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결국 인생은 어느 정도는 운빨이다. 샌델은 능력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삶의 많은 영역이 운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승자들이 겸손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적어도 '운의 중요성'에 관한 부분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과거에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들에게 압도적인 보상을 제공한다. 그런데 사실 머리도 타고나는 것 아닌가?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면서 사람의 내면을 봐야 한다고들 하는데, 사실 성격이나 인격도 타고나는거 아닌가? 애초에 '노력'과 '타고남'의 구분이 불분명한 영역은 수없이 많다. 사회가 그 중 특정 영역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성과를 인정하고 있다면, 다른 영역이 아닌 바로 그 영역에 좋은 재능을 타고나는 것 자체가 '운'인 것이다. 내가 좋은 대학교에 진학한 것이 내가 열심히 하고 잘해서만이 아니라고 되뇌이곤 한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내가 노력했을 때 그만큼 성과가 나올 수 있는 머리를 타고난 것이 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 '능력'에는 '재능'뿐만 아니라 '노력'도 분명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성공했을 때는 '노력'을 강조하고 실패했을 때는 '재능'에 눈을 돌린다. 원하던 것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 "이건 내가 타고나지 못했기 때문이야. 세상은 불공정해"라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내가 좋은 대학교에 진학한 것이 순전히 내가 열심히 해서가 아니듯, 반대로 내 노력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나는 분명 남들보다 많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의 차이를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결과를 보정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능력주의 사회에 병폐가 있다고 해도 이를 대체할 만한 시스템이 존재하는지도 문제다. 사람들은 결국 능력을 원한다. 가급적이면 삼성이 능력 위주로 채용을 해서 뛰어난 사원들이 가장 뛰어난 스마트폰을 제작해주길 바란다. 인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일을 잘하는 똑똑한 정치인이 당선되어 나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가져다주길 바란다. 현실이 이러하다면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공허한 외침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능력만이 아니라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적극적으로 결과를 보정하려고 할 때, 결국에는 학연지연 줄서기 등을 기반으로 한 좋은게 좋은거지 시스템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있다.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마냥 능력주의를 비판하기만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도 능력주의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여러모로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이지만 그래서 흥미롭다. 전세계에서도 손에 꼽힐만큼 교육열이 높고 자기계발에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입시나 채용과정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정성이라는 이슈에 민감할 것이다. 이 책이 '공정함'에 관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공정이라는 착각> 마이클 샌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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