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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Dec 17. 2018

Made in Portland (1)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곳

'언젠가는 가봐야지'했던 포틀랜드를 9월에 다녀왔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여행의 결심의 계기는 물욕 없는 세계에서 읽은 문장 때문이었다.


우리는 뭘 하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요.
이곳은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곳이에요.
- 물욕 없는 세계 57p -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곳이라니 대체 어떤 곳일까. 다녀온 친구의 말에 의하면 포틀랜드 사람들이 Made in portland에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로컬 문화가 매력적이라고 했는데 말로만 들어서는 감이 오지 않았다. 그들이 말하는 '로컬'과 독립 비즈니스를 하는데 최적의 환경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직접 느끼고 경험해보고 싶었다.


0320_ 점점 '로컬'이 더욱 주목받는 시대가 올 것 같다. 내가 포틀랜드에 가고 싶은 이유는 ‘뭘 하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독립적인 DNA를 가진 그 도시에서 로컬 비즈니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보고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포틀랜드에 가고 싶은 이유를 기억하기 위해 적어둔 메모


신기하게도 포틀랜드는 다녀오니 더욱 궁금해지는 곳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작은 소도시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곳은 분명 다른 뭔가가 있었다. 이 곳을 여행하면서 어느 나라에 왔더라?라고 착각을 할 만큼 단순히 미국의 한 소도시가 아니라 포틀랜드라는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우며 사랑스러운 도시. 사람들도 정말 사랑스러웠던 곳.


포틀랜드에서 보고 느낀 것을 적어보자니,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

일단 쓸 수 있을 때까지 써보는 걸로.


1. 아날로그의 정석, 에이스 호텔

2. 만드는 행위가 일상인 곳

3. 로컬 마켓, 로컬 브랜드, '로컬'이 매력적인 곳

4. 아트 뮤지엄보다 편집샵

5. 일본과 포틀랜드는 무슨 관계일까

6. 미식의 도시, 포틀랜드

7. 에어비앤비를 탐험하고 싶은 곳

8. 산과 바다, 자연과 가까운 도시

9. 포틀랜드의 책방 이야기



1. 아날로그의 정석, 에이스 호텔

포틀랜드의 첫날은 그 유명한 Ace Hotel에 머물렀다. 작지만 멋스러운 로비에는 커다란 테이블을 둘러싼 아늑한 소파가 있는데, 두루 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하나의 장면이 된다. 스텀프 타운 커피(Stumptown coffee)를 마시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체크인을 하면 금색 열쇠를 건네주는데, 방 번호가 새겨진 키링이 달려있다. 나의 방은 411호였다. 에이스 호텔은 방마다 컨셉이 다르다고 들었기에, 어떤 방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했다. 동그란 문고리에 열쇠를 꽂아 달칵 여는 그 느낌도 참 오랜만이었다. 방은 오래된 영자 신문지와 일러스트,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특별한 건 없었지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재즈가 좋았고, 침대는 넓고 폭신해서 누워서 뒹굴거리기에 좋았다. 하루밖에 묵지 못했지만 이 곳에서 '좀 더 여유롭게 이틀은 지내볼걸'란 생각이 들었다. 로비에서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나만의 시간도 더 누릴걸. 호텔 옆의 클라이드 커먼(CLYDE COMMON) 바에서 밤늦게까지 술도 마셔보고. 낯선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눠볼걸.

호텔 근처에 Lardo 라는 햄버거 가게가 있는데, 먹고남은 음식을 싸왔다. 또 먹고 싶은 꿀맛...
한국에서 에이스 호텔이 들어오면 잘 될까?

함께 여행 온 이는 내게 물었고, 나는 잠시의 고민도 없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곳의 아날로그는 낭만적이지만 불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포틀랜드와 잘 어우러졌기 때문에 매력적이었다. 특히 에이스 호텔은 포틀랜드의 지역적 특수성 덕분에 유니크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에이스 호텔 하면 떠오르는 로비의 'H O T E L' 간판도 옛 간판을 이용해 만든 것인데, 직접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포틀랜더의 특성이 있었기에 이런 빈티지한 도시적인 느낌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로비에서 스텀프 타운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로컬 브랜드와 콜라보하여 제작한 호텔의 제품도, 로컬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이곳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 것 같다.



2. 만드는 행위가 일상인 곳

포틀랜드는 비가 많이 오는 도시다. 10월부터 5월까지는 거의 비가 오기 때문에 밖에 나가기보다 방콕 하며 자신의 작업에 몰입하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6월~7월은 이곳을 여행하기에 아주 좋은 계절인데, 포틀랜드를 독특하게 유지하라(Keep Portland Weird)는 도시 슬로건에 어울리게끔 다양하고 이상한 컨셉의 축제들이 열린다.


어쩌면 인풋과 아웃풋을 적절하게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작업에 몰입하여 무언가를 만들고, 축제 기간 동안엔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매일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받고. 그리고 다시 만들고. 그런 환경 때문인지 포틀랜더는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행위'에 익숙하고, 주변에도 개인의 창작 활동을 지원해주는 장소와 어떤 DIY든 가능한 재료를 파는 철물점 혹은 리사이클 가게가 많다.



크리에이터를 위한 작업실

ADX Makerspace

ADX는 여러 잡지에서도 소개되었는데, 멤버십/커뮤니티로 운영되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공간이다. 개인 작업 공간이 주어지고 처음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클래스와 멘토링도 있다. 크게는 4개의 프로그램(Wood/Metal/Print/Jewlry)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한 개 혹은 여러 클래스를 선택하여 들을 수 있다.

할아버지부터 젊은 청년까지 자기의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ADX에 한 번 가보고 싶다면 월요일 6시, 토요일 2시에 맞춰서 가면 된다. 별도 신청 없이도 무료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이 곳 멤버들이 작업하는 모습과 작업실을 보면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시간이 맞는다면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곳 현지 사람들도 구경하러 많이 오더라. 아들과 함께 온 아빠도 마음에 들었는지 투어가 끝난 후 프로그램에 바로 가입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커뮤니티에 가입하려면 세 달에 375달러(약 41만원)인데 엄청 비싸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만약 이곳에 머문다면 한 번 해볼만 했을 것 같다.


로비에는 ADX 멤버들이 만든 작품을 전시/판매하기도 한다.


하마 캐릭터로 유명한 동네 철물점

Hippo Hardware

가게 이름처럼, 하마가 이 곳의 주인공이다. 가게 곳곳에 귀여운 하마 캐릭터 혹은 인형이 숨어있어서 찾으면서 구경하는 재미가 크다. 온갖 귀여운 것, 신기한 전등, 문고리, 가구 등의 골동품이 모여있는 곳이지만 생각보다 가격은 저렴하지 않다. 아쉬움에 이 곳에서 티셔츠를 하나 샀는데, 나중에 입어보니 마치 이곳의 직원 ST...

곧곧에 숨어있는 하마를 찾아보시라~



온갖 DIY 인테리어 중고 재료를 구할 수 있는

The rebuilding center

매일 8 톤의 건축 자재가 REBUILDING CENTER를 통해 이동한다고 할 만큼 규모가 큰 이 곳은 건축 자재와 집을 인테리어 할 때 쓸 수 있는 재료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실제 가격보다 40~90% 저렴한 것이 이 곳의 장점이다. 무엇보다 이 곳엔 재밌는 가이드가 있었다. 1. 보물을 발견하고(Find your treasure) 2. Hold Tag를 붙여서 찜해둘 것(Place yellow hold tag on item). 곳곳에 노란 Hold Tag가 붙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태그를 붙인 시간으로부터 두 시간 동안 찜해두는 방식이다.


이곳은 단순히 자재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었다. 지속 가능한 포틀랜드를 위해, 건물의 주요 부품 중 최대 85%를 회수하는 친환경적인 철거 서비스(DeConstruction Services)를 제공하기도 하고, 목공예부터 DIY 배관 수리까지, 중고 건축 자재를 안전하고 창의적으로 작업하는 방법에 대한 다양하고 저렴한 수업을 제공한다.


ADX와 마찬가지로 장학금 제도도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배움에 접근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아버지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재료를 고르는 모습이었다. 이런 기억들이 쌓여서 아이들도 뭔가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 익숙해지겠구나 싶었다.




작업 스튜디오와 편집샵을 함께 운영하는 공간

그 외에도 작업실에서 만든 것을 편집샵에서 함께 판매하는 가게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빈티지 가구점 The Good Mod과 제품 잡화점 Beam &Anchor의 공간과 제품들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데 글이 점점 길어지고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서 해야겠다.


우리는 만드는 행위에 좀 더 익숙해지고, 가까워져야 한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것은 참 멋지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과연 나의 일상에서 만드는 행위는 얼마나 차지하고 있을까. 일회성이 아닌 꾸준히 만들어내는 삶. 무엇보다 '꾸준히'라는 단어가 가장 어렵다. 그렇다 보니 꾸준히 자신의 것을 어렵게 만들어내는 누군가를 쉽게 부러워하곤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가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창작의 의미는 넓다. 내가 먹는 것부터 스스로 만드는 것. 내가 사는 공간을 나다운 곳으로 만드는 것. 나이를 먹을수록 살아가는 것은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니 독립적인 존재로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만드는 행위가 일상의 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 살아갈 활력을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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