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kami Dec 07. 2022

적응력

새로운 곳에 적응한다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일 수도 있으나 나에게는 항상 어려운 일로 느껴진다. 나는 적응력이 부족한 사람일까?


내 인생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일은 몇 번이나 있었을까. 어렸을 때부터 생각하면 꽤나 많았던 것 같다. 일곱 살 때에는 충청도에 살다가 경상도로 이사를 가면서 앞으로 살게 될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었다. 너무 어렸을 때라 어떻게 적응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한 가지 사건은 기억난다. 이사 후 얼마 안되었을 때, 아파트 단지 밖을 벗어났다가 길을 잃어 엉엉 울면서 집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던 집으로 돌아갔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사건을 제외하면 그 어린 나는 어쩌면 지금보다 새로운 환경에 꽤나 잘 적응했던 것 같다.


청소년기의 나는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 쭈뼛쭈뼛 말도 잘 못하고 두려워하곤 했었다. 머리가 커가면서부터 점점 더 심해졌던 것 같다. 잘 적응하고 살던 동네와 학교에서 떠나 중학교 3학년 때 또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 당시 새로운 학교에서의 한 학기는 나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다. 몇 달을 적응하지 못했고 학교가기가 싫었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세게 와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적응 문제로 가족들도 힘들게 했고 하루하루 괴로워하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어쩌면 그 때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오히려 나를 반기고 친해지고 싶어하는 분위기였는데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정든 친구들과의 이별, 이전과는 너무 다른 환경의 낯섦 때문이었지 않을까 싶다.


그 이후도 나의 적응의 역사는 쭉 이어진다. 고등학교는 어찌어찌 잘 적응해서 3년을 잘 보낸 것 같다. 그런데 재수학원에는 적응하지 못했다. 재수학원을 1달만에 뛰쳐나오면서 혼자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했다. 그때부터 혼자 무언가 해내는 것에 더 익숙해지고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고생끝에 대학교를 입학했는데, 갑자기 또 서울로 올라오는 바람에 모든게 낯설어졌다. 하지만 이 때에는 대학생이 되었다는 설렘과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로움 덕분에 오히려 적응이 쉬웠던 것 같다. 이 때부터 나에 대한 타인의 첫 인상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무표정에 적은 말수 때문에 나에게 선뜻 다가와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반복적으로 이런 얘기를 듣다보니 나도 무의식적으로 조금은 노력하게 되었다. 이 때 이후로는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말도 한 마디 더 해보려고 하고 표정도 풀고 있으려고 한다. (하지만 타고난 성향 때문인지 이런 노력에는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된다.)


군대에서의 적응 정말인지 너무나도 쉽지 않았다. 누군가 나의 행동과 말을 통제할 수 있다는 현실에 충격을 받은 탓이었을까. 나는 조금은 편한 환경에서 근무했음에도 처음 배치 후 일주일 동안은 어떻게 하면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괴로워하며 매일매일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군대에서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정말 기초적인 스킬들을 (강제로) 배울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내가 어떻게 눈치껏 행동해야하는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막내(또는 후배, 후임, 인턴, 신입사원) 타입을 좋아하는지 등을 배웠다. 눈치껏 빠르게, 선배가 부담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먼저 나서서 사소한 일과 귀찮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신입으로서 가져야 할(아니 가지면 선배들이 좋아하는) 태도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머리로는 익혔지만 난 아직도 그런 문화 자체가 싫어서 그런지, 몸에 베어서 나오는 행동으로 하는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하는 편이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할 수 있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 내가 원하는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교 3학년 때 첫 번째 인턴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첫 날 그만 뒀다. 자세한 얘기는 부끄러워서 안적을거다. 두 번째 인턴 활동은 한 달만에 그만 뒀다. 여기는 뭔가 분위기도 이상하고 허드렛 일을 시키는게 싫어서 나왔다. 두 번의 인턴 실패 경험으로 인해서 나는 자신감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 세상에 내가 적응할 수 있는 회사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세 번째 인턴을 하게 됐다. 이 회사는 나름 큰 회사였는데, 이번에는 일 자체가 싫었다. 일 외적으로도 내가 적응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게 뻔해서 합격을 했음에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들어간 회사가 전 회사이다. 이전의 모든 경험을 종합해보았을 때 나는 회사에는 적응할 수 없는 사람인가보다 싶었는데, 이 회사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동기가 많았고 재미있었다. 팀 사람들의 성격이 좋았고 너무나도 잘 대해주었다. 일은 별로 맘에 들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좋아서 계속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팀을 한 번 옮겼는데, 마찬가지로 천천히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일은 조금 어려웠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고 인정받는 것도 좋았다. 내가 겪었던 모든 새로운 환경 중에서 가장 잘 적응한 곳이 아닌가 싶다.


새로 옮긴 회사에서 일주일 간의 생활을 해보니 갑자기 나의 적응의 역사에 대해서 쓰고 싶어져 글이 길어졌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 적응을 잘하고, 어떤 환경에서 적응을 잘 못했을까? 분석할 수 있는 삶의 데이터가 많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나는 '통제감'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내가 말하는 통제감이란 나의 행동이나 말을 잘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인지 아닌지에 대한 감각을 말한다. 예를들면 이런 것이다.


1. 누군가에 의해, 또는 어떤 룰에 의해서 나의 행동이 제한될 때 나는 적응을 잘 못한다.

2. 주변의 사람들과 대화가 잘 통하고, 부담없이 나의 의견과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 때 나는 적응을 잘한다.


적고보니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군인이나 경찰이 되었으면 스트레스로 병원에 입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조건과 일이더라도 같이 일하는 사람과 대화가 불편하다면 절대 오래 일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어떤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될 때 이런 점을 미리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내가 적응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인지 미리 100% 알고 갈 수가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누가 얘기해준다고 해도 사실 직접 부딪혀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매번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던져넣을 때 마다 미지의 영역으로 모험을 하는 기분이다.


앞으로도 평생 새로운 환경에 놓일 때마다 긴장하고 눈치보며 적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쉽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새로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나에게 잘 맞는 환경과 사람들이 분명히 어딘가에 있고, 운이 따라주어서 그런 곳에 속하게 된다면 나는 또 곧잘 적응할 것이다. 나는 적응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응하고 적응하지 못하고는 나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결론내렸다. 계속해서 나와 잘 맞는 인연과 장소로 인생이 흘러가기를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첫 번째 퇴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