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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와 Sep 17. 2019

어느 독립서점의 독백

단짠단짠 모모책방이야기 [ Intro ]

책방을 운영한지도 벌써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났다.

정신없이 책방을 계약하고, 셀프 인테리어로 날마다 공사를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 하고도 반년이 더 지났다니 놀랍고 놀랍다. 그동안 책방은 고맙게도 잘 버텨주었다. '버텼다'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일 것이다. 가끔은 책방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오늘 같이 날짜를 세어 보는 날이면 '그래 이만하면 잘 버텨왔다'라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안 할 도리가 없다.

책방 모습, 그리고 책방직원 모모와 삐루

지난 1년 사이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책방에 다녀간 사람들 중에는 그동안 알고 지내 온 지인, 책방을 통해 다시금 만나게 된 지인, 그리고 책방이 아니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이 있다. 그 인연들이 오늘의 나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아. 좋은 사람들. 나는 그런 좋은 사람들을 위해 책방을 유지하기로 했다. 내게 좋은 이웃이 되어준 그들에게 아주 작은 보답을 하고 싶은 맘으로. 그 이상의 역할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책방은 스스로 성장하는 듯하다.

여전히 유지와 관리를 위해 나의 노동력이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내가 특별히 알리지 않았는데 책방을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과연 이 책방의 존폐(?)를 결정할 권리가 내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가끔은 제 스스로 정체성을 확고히 해나가는 생명체 같기도 하다.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의 미래를 부모가 좌우할 수 없듯이, 책방은 스스로 목소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고, 약간은 뿌듯하기도 하다.

 

기록을 좀 해야겠다.

부끄러웠다. 나 같은 게 과연 책방 사장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이 공간이 과연 이 도시에 필요한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 앞에 한없이 작아져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았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한 손님이 내게 해 준 말.

"이 자리에 있어 주는 것 만으로 이 책방은 해야 할 모든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거예요"

그 말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 말 덕분에 조금은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책방을 운영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운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 더 잘해야 하는데, 더 좋은 책을 추천해야 하는데, 더 훌륭한 큐레이션을 보여야 하는데 하는 압박감이 예전에 내가 책방을 처음 하기로 했던 결심을 무색하게 했다.  그래서 그 마음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고, 너는 할 만큼 하고 있고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그렇게 글을 쓰며 마음을 다 잡아 보려 한다.


이것이 내가 [어느 독립서점의 독백]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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