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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얀 Oct 07. 2021

난 '슈퍼우먼'이고 싶지 않다.

[육아툰] 엄마의 사랑 곱하기 99화



또 터졌다. 


아침에 꼬맹이를 깨우면 더 자고 싶다고 도로 누워버리고 춥다고 자기 몸을 이불로 꽁꽁 싸맨다. 겨우 잠을 깨워 식탁으로 끌고 가면 짜증과 신경질을 부린다. 그동안 남편은 뭘 했을까? 꼬맹이를 힘들게 깨우고 있는걸 뻔히 알면서도 핸드폰을 보고 침대에 누워 있다. 아침 인사 따위도 없다.


"남편. 안녕? 남편도 아침에 꼬맹이 같이 깨워주면 좋지 않아?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은 보이고 아내는 안 보여?"라고 한마디 했다. 아침밥을 준비하려고 부엌에 가니 설거지거리가 그대로이다. 게다가 남편이 저녁에 먹은 야식거리가 더해져 있다. 저녁에 식기세척기만큼은 돌리고 자겠다고 말한 남편의 약속이 또 지켜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하아~' 깊은 한숨이 나왔다. 남편은 곧 출근할 것이고, 남편보다 출퇴근이 자유로운 나에게 이 일이 전가된다.


꼬맹이 가방에 들어갈 수저세트와 물병을 설거지하며 진짜 이대로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 손은 늘 팅팅 부어 있고, 물집까지 잡힌 상태다. 하지만 남편은 너무나 여유롭다. 일주일에 한 번 버리는 쓰레기와 분리수거조차 제때 지키지 못하는 남편이다. 사실 아침에 꼬맹이 깨우며 유치원 보내는 일도 같이 하기로 했던 부분이지만 언젠가부터 나홀로 담당이 되어 버렸다. 또 내가 남편에게 뭐라고 하면 회사 일이 많아서 피곤해서 뒷 목이 아파서 몸이 무거워서 못 일어났다고 핑계를 대며 마무리 지으려고 할 것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앞으로 약속을 잘 지키겠다고 말하면 끝이다.


남편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내가 그 일에서 전적으로 손을 떼야만 한다. 같이 도와주면 안 되고 남편이 혼자 하게끔 해야 아침의 전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꼬맹이가 유치원 가는 시간이 늦어지고 그토록 타고 싶은 스쿨버스를 놓쳐 큰소리로 울어대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한다. 꼬맹이가 배고파해도 아침을 준비하면 안 되고 미리 날씨를 체크하여 입고 갈 옷을 꺼내놓아도 안 된다.


"내 일 + 집안일 + 육아"

이게 여자의 몫인가?


요즘 기혼 부부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같이 하는 거라고 말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집안일과 육아를 더 잘하므로 여자가 맡아야 한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현실은 따로 놀고 있다. 여전히 가사노동에 대한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 비맞벌이 가정에서 주로 집안일을 하는 사람은 78.5% 아내이다. 맞벌이 가정에서도 73.3% 아내가 대부분의 집안일을 맡고 있다. 주변에 물어봐도 남편의 육아 참여는 현저히 낮다. 


난 내 일을 포기하기 싫고 아주 멋지게 해내고 싶다. 남편이 말하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면 여자는 내 일을 하지 말라는 소리인가? 양가 부모님께 한 번도 손을 벌리지 않고 혼자 양육을 담당하며 새벽에 육아 에세이 그림을 그려 책을 출간하고, 학교 강의를 하면서 '최우수 교원 상장'까지 받아낸 나다. 여자가 '슈퍼우먼'소리를 듣는 건 슬프게도 공동책임을 가진 남편들이 하지 못하는 일까지 해야만 하는 불평등한 시대상을 반증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재산을 갖지 못하고, 배움과 글쓰기의 기회를 갖지 못하던 시대에 살았던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여성에게 애초부터 글을 쓸 여지를 주고, 출간의 자유를 보장했으면 인류의 자산은 더 가치가 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절반의 입을 다물게 함으로써 상상력과 지혜를 쌓을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여성들에게 온전히 자신의 일,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사회 전반에서 큰 성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희생해야 하는 불평등한 구조가 개선되려면 사회 체제 탓하기 이전에 가정에서 육아와 가사 책임을 공평하게 나누어 지키는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가정에서부터 여성이 불평등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야 사회의 불평등이 조금씩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잔소리'라는 말도 남편이 먼저 나서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말일지도 모른다. 잔소리를 듣기 이전에 집안일을 나누어 담당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아내의 투덜거림은 쏙 들어갈 것이다.


난 '슈퍼우먼'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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