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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스트 정현 Mar 10. 2024

한때는.

 재미있었던 적이 있다. 즐거웠다. 하루의 낙이라고 해도 될 만큼 꽤 고대하는 시간이어서 당장 기절할 정도로 피곤한 날까지 빠짐없이 컴퓨터를 켰다. 신경을 아예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비중을 두는 것도 아닌, 딱 내가 자극이 될 만큼만 그 나머지가 우려되었다.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찾았고, 알고 싶은 단어가 있으면 또 찾았고, 그렇게 아는 단어가 많든 적든, 쓸만한 문장이 나오든 말든, 속을 게워내야만 하던 날들이 있었다. 텅 빈 모니터가 두서없는 생각들로 채워지고, 몇 번의 클릭질로 상상마저 어려운 어느 먼 곳까지 순식간에 그 생각들이 날아서 누군가에게 가닿은 후, 이따금씩 따스한 말들이 마법처럼 툭, 하고 글의 끝에 달리면 나는 거기에 작은 위로를 받고 그제야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더는 즐겁지 않게 되었을 때, 조회수와 비방과 비판에 흔들려 내가 더는 나를 적어 내릴 수 없게 되었을 때, 검열에 검열에 검열만이 이어져 조작이 진실의 자리를 기어코 차지하게 되면서 나는 쓰기를 포기했다. 더불어 내가 나로 존재하기를 포기했다. 


 그대로 내가 영영 사라져 버렸으면 차라리 지금 이 순간이 덜 괴로우려나.


 하지만 나는 나의 포기마저 형편없이 추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발견한다. 완전히 지워낼 각오를 하지 못한 대가로, 비겁한 도망자처럼 은둔하기만을 택한 나는 더 흉측하게 커져버린 혹을 가슴에 품은 채 쇠락해가고 있으니까. 그 혹은 아주 몹쓸 것이어서, 아무리 밥을 많이 먹고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여도 도통 작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주 독한 응어리이니까. 


 한때는 그토록 선명하게 존재했던 내가, 지저분한 그림자로 호흡의 끄트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것이, 나는 역겨우면서 서글프다. 내가 저지른 포기는, 나를 죽이면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마이너스의 거래였기 때문이다. 이 보잘것없는 사실을 나는 무심히 지나버린 시간의 머리채를 잡고, 고백한다. 


 세월에 뜯겨 바랠 대로 바랜 누런 캔버스 위를 더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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