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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스트 정현 Apr 23. 2024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스스로에게 원하는 건 하나였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었다.


  조금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


  구태의연한가.

  

  그렇네.


  칙칙하고 진지하다. 다소 오글거리기도 하고. 그러나 달리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그리고 들여다보면 그다지 모범적인 마음은 아니다. 그 안에는 뭇 타인에 대한 우월감과 무시가 만만찮게 들어가 있으므로. 비판과 지적, 불만이 쉴 새 없이 적신호를 날리며 인간을 보다 멀리, 혼자 살지는 못하면서 오만하기 짝이 없게 멀리 밀어내버리므로. 그런데 본인을 사랑할 줄 모르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사람은 이 사람대로 저 사람은 저 사람대로 오점을 발견하다 보면 마지막에 덩그러니 남는 것은 나를 싫어하는 나이다.


  나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나.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늘 먼저 발견되어 감사해야 할 것 투성이인 삶을 고꾸라뜨리는 나.

  무엇을 하든 자기 검열이 배보다 커지는 배꼽처럼 징그럽게 자라나서 도중하차에 전문이 되어버린 나.


  나는 내가 너무 싫어서 꽤 오랜 시간, 글을 쓰지 못했다.

  무슨 글을 쓰든, 영혼이 조금만 담기면 쓰는 도중 혐오가 올라오는 것이다.

  내가 내 글을 못 읽겠는데, 누구에게 읽히겠는가. 

  내 글에 담긴 내가 추해 미쳐버리겠는데, 어떻게 감히 이 따위를 어딘가에 내놓겠는가.

  온갖 낭비가 허용되는 온라인 세상이어도 말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술을 아무리 마시고 음식을 아무리 탐닉하여도 사라지지 않는 허기가 속에서부터 나를 집어삼켜서 이따금 시도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써보고, 지우고, 써보고, 버리고. 써야 성장을 할 텐데, 단어와 문장을 조물조물 만져봐야 신기루처럼 떠있는 반투명의 나침반이 실체를 얻을 텐데. 나는 쓰거나 병원을 가거나 택일을 해야만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겨우 몇 줄, 혹은 몇 장 쓰고 또 외면의 시간을 길게 가져야만 했다. 그 몇 줄이, 그 몇 장이 나를 한없이 굴복시켰으므로. 신물이 나도록 추한 자화상을 나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없었다, 그럴 배짱이.


  그러니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은 갈증만큼, 아름다운 사람을 향한 갈증 또한 강할 수밖에 없었다.


  문장 하나를 써도 평생을 간직하고 싶게끔 힘을 불어넣는, 눈부신 영혼의 소유자들.


  아주 가끔, 운 좋게 그런 영혼의 숨이 느껴지는 글을 만나면 부럽고 부럽고, 한없이 부러웠다. 부러운 만큼 그 글의 주인에 대해 샅샅이 뒤져보았다. 그 사람은 대체 어떤 유년기를 보냈는가. 무엇을 하고 살았으며, 어떤 사랑을 받았는가. 무엇이 나와 달라 이런 고귀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인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천상의 빛이 나오는 듯한 그들과 닮고 싶었다.


  닮고 싶은 만큼 나는 더 어두워졌다. 더 추악해졌다.


  나를 잃어만 갔다.


  얼마 전, 나는 청소를 하느라 집안을 분주히 오가다가 우뚝 멈춰 섰다. 나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었던가. 아님 이조차 나의 생각이 아니었 걸까. 여태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이 소망만큼은 나의 것이라고.


  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가끔 그런다. 망가진 나침반이 갑자기 정신이 들어 반짝, 길을 보여주는 것처럼.


  나는 인간쓰레기였잖아.

  패륜아였고.

  돌대가리였고 닭대가리였고

  세상 한심한 새끼였잖아.


  그래서 수리해야 할 것 투성이었잖아.

  늘 손봐줘야 할 것이 산더미인 덜 떨어진 기계.

 

  그럼 내가 아름다운 사람이길 바랐던 건 나인 거야.

  아님 아버지였던 거야.


  온전한 나의 공간에서, 나는 가슴이 시렸다.


  오늘의 글은 다시 보았을 때 추악하고 창피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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