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프로젝트가 주는 에너지, 팟캐스트 채널 개설
'일'이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성인이 되면 1인분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일을 한다. 즉, 일은 생계 수단이 된다. 하지만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일'이 무척이나 그리웠던 시간이 있다. 육아를 이유로 '엄마'로서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퇴사를 결심한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나에게 '일'이란 무엇이었던 걸까?
아마도, 엄마가 되기 전까지 나에게 일이란 나의 목표였고, 성취의 대상이었으며, 성장의 증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하던 '일'의 주제나 프로젝트가 재미있었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일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하지만, 대기업 명함이 주는 직장의 권위와 주변 사람들의 인정, 그리고 풍부한 리소스와 전문가 집단의 인력풀 등을 제외하면 '나' 스스로 만들어 낸 어떤 종류의 무슨 일이 있는지 한마디로 명쾌하게 답하기 쉽지 않다.
경제 심리학자이자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 Why we work>>의 저자인 배리 슈워츠는 일을 생업(job), 직업(career), 소명(calling)의 세 가지 의미로 설명한다. 아마 당시 나에게 일은 '커리어'의 의미였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경력단절을 겪으며 그 '성취감'이나 '자아성장'의 의미가 내 삶에서 사라져 버렸다고 느꼈기에,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물론 엄마로서, 주부로서의 가사 일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실제로 내 주변의 친구나 선후배 중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위를 따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이나 직장을 가졌던 적이 있지만 결혼 이후 가정에서의 삶에서 충분히 행복과 만족을 느끼며 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고,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일'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시 내-일을 시작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경험, 그 자체에 감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작정 '일'로 인식될 수 있는 아무 일이나 나에게 일이 되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 그동안 시도했던 몇 가지 일 - 가령,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나 그림책을 소개하는 일 등 대부분 짧은 낮시간 동안 대부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 은 나에게 '일'로 정의되기가 어려웠다. 나는 나와 사고 수준이 비슷한 '성인'과 대등한 관계로 대화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이슈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림책을 소개하고 스토리텔링을 들려주었을 때, 미소 짓고 열광하는 아이들의 반응은 물론 보람 있었다. 하지만, 일이 주는 성취감의 그것과는 매우 다른 느낌의 감정이었던 것 같다.
다시 내-일을 시작하며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 말고, 마음이 가는 주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탐색하며 사이드프로젝트를 시도해 보았다. 그중, 작년 말 구상을 시작한 팟캐스트 채널을 드디어 개설하게 되었다. 각자의 배경이나 맥락은 다르지만 '경력 보유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과 함께 였기에 작당모의가 가능했다. 첫 회를 세 번째 다시 녹음하면서 과연, 시작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고, 코로나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몇 달간 녹음을 중단하기도 했다. 처음 편집 프로그램을 배우느라 유튜브 튜토리얼을 수없이 찾아보며 따라 했고, 능력자 구성원 덕분에 인트로 뮤직과 썸네일 이미지 작업까지 준비할 수 있었다. 편집 파일이 완성되기까지 동료의 자발적인 편집 작업 지원이 없었다면 아마도 더 지연되었을지도 모른다.
경력단절 시기가 매우 힘들었던 내가 경력 보유 여성으로서 다시 내-일을 찾게 된 과정이나 그 간의 고군분투, 그리고 다시 워킹맘이 되어 겪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과거의 나와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또 누군가에게 가 닿아 레퍼런스가 되고 싶었다. 오늘의 그 누구의 경력단절 문제가 단지 나 개인의 선택에 의한 괴로움에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좀 더 다양한 여성 커리어 서사에 대해 더 많은 이들이 목소리 내어 스토리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여성 커리어 서사가 궁금한 이들, 여성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딸이 있는 아빠 이거나 일 하는 or 했던 아내를 둔 남편들이 '할 일 많은 여자들' 우리 채널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팟빵에서 듣기 : https://bit.ly/30wCocQ
(ios) 팟캐스트에서 듣기 : https://apple.co/31m0Exr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듣기 : https://bit.ly/30xxQmI
이렇게 내 문제에 대해 소소한 프로젝트를 통해 목소리 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이런 작은 결과물들이 나에게 다시 '일 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다주었다. 나를 가장 나답게 해주는 것. 더 오래, 더 많이, 만년 현역으로 일 하며 살고 싶다. 더 많은 여성이 더 오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일 하는 여성' 가장 나 다운 정체성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