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인가?
'일=삶', 일이 곧 삶이었던 그 시절 나는 워커홀릭이었고 엄마가 되면서 '일vs.삶', 일과 삶은 내게 제로섬 게임이었다. 어느 한곳에 더 집중하고 잘하고 싶어 욕심을 낼 수록 다른 한쪽이 늘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하나를 놓아버리면 내 삶에 주어진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을꺼라는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일을 놓고 전업주부가 되어 경력단절의 시간 5년을 지냈다.
다시 내-일을 찾게 되면서 나는 요즘 '워라인(Work Life Integration)', 일과 삶의 통합을 실현중인 오늘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일의 목적을 성공으로 정하기 보다, 과정에서 느끼는 성장을 삶의 동력 삼아 열정을 불태운다. 적극적인 태도의 삶이 또한 조직에 긍정적 역동과 성장을 가져오기에 저절로 선순환 구조가 생긴다.
과거, 대기업에서 글로벌마케팅 브랜드전략 업무를 할때 나의 롤모델은 당시 나의 오랜 상사였다. 해당 업무 영역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아 외부에서 스카웃 되어 모셔온, 사내 최초 여자 부사장이시던 그녀가 내 커리어의 이상향이었던 것 같다. 직접 업무 전문성을 가까이서 배울 수 있었고 업무 역량을 더 키울 수 있도록 기존 조직에는 없던 새롭고 획기적인 교육 기회도 많이 만들어 주셨던걸로 기억된다. 감사한 마음으로 교육의 특혜를 받은 나름 엘리트 사원이 된 우쭐함도 있었고 덕분에 아직 주니어 시절, 꽤 어릴때부터 제법 책임감 있는 프로젝트를 접하거나 맡을 기회를 갖게 되기도 하였다. 롤모델의 커리어를 잘 배워 익히면 나도 그처럼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육아 복병에 결국 백기를 들며 '엄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을 내려놓게 되면서 깨달았다. 개인의 상황과 가치관, 우선순위에 따라 나의 일과 삶에 대한 기준과 속도는 다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VUCA(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시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답같은 롤모델은 아니라는 걸!
다시 내-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을 세상에 소개하였다.
공교롭게도 펀딩 개시일이 내 휴가 시작일(8/19)과 겹쳤다. 처음 프로젝트 검토 의뢰를 요청한 건 8/14일(금), 연휴 전날이었다. 오후 3시 즈음 텀블벅 커뮤니티 팀 매니저의 프로젝트 리뷰 결과에 대해 몇 가지 소소한 추가 요청 사항에 대한 이메일이 도착했다. 내용을 보완하여 재심사를 요청하였고 연휴가 끝난 바로 다음 날 8/18 오후 5시 전, 공개검토 승인 메일을 받았다. 당일 밤에 확인하여, 고민하다 19일 오전 8시, '펀딩시작' 버튼을 눌러 등록이 완료 되었다. 출판펀딩은 대체로 한달 정도 기간 설정을 조언 받았지만, 일정을 고려하여 20일로 정했다. 드.디.어 펀딩 시작이닷~! <롤모델보다 레퍼런스> 출판 펀딩. 앞으로 3주간 제일 많이, 자주 들락거릴 페이지가 되겠지?! '에디터 추천' 프로젝트로 펀딩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지만 무척 설렜다. 텀블벅 펀딩이 처음이라 알고리즘을 잘 알고 준비한것도 아닌데 무척 감사하고 또 기대되었다.
펀딩 첫 날 신규추천 프로젝트로 내내 메인 페이지 하단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펀딩 시작 12시간 남짓이 지난 시간, 벌써 펀딩 목표금액 100%를 달성했다! 와우~!!! 너무 신났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숫자의 변화가 주는 짜릿함이 온 몸으로 감지되었다.
이런 기분...정말 오랜만이다!
<롤모델보다 레퍼런스> 책을 준비한 지난 1년 반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나에게 '일'이란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혹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결과물, 혹은 솔루션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었다. 각자의 전문성에 기반한 역할과 책임을 바탕으로 정해진 기간 내에 최고의 효율로 성과를 나타내는 게 목적이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이런 일 감각으로 나름 촘촘한 기획서를 준비했다. 이제는 저자가 된, 학생들과의 첫 미팅에서 공들여 준비한 기획서를 공유하고, 일정표에 따른 실행을 기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예상과 기대와는 달리 진행은 잘 나아가질 않았고, 심지어 나는 그 원인조차 잘 파악하기 어려웠다. 밀레니얼 세대와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고충을 토로하는 친구나 선후배의 이야기를 종종 듣긴 했지만 90년대 후반에 태어난 Z세대 대학생과 일 하는 방법을 나는 전혀 몰랐다. 고등학자 프로젝트를 리드한 경험이 있는 진저티 동료분께 조언을 구하니, '정체성'과 '동기부여'를 통한 자발적 몰입을 이끌어 내야한다고 했다.
'아니, 각자 서로가 성인인데, 내가 동기부여까지 고민하며 프로젝트 진행을 해야하나?'
한동안 막막하고 자신 없었다. 이런 고비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여러번 있었다. 그때마다 서현선 대표가 내가 가장 많이 들려준 멘트가 있다.
"혜영님,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프로젝트를 빨리 마무리 하는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에요. 친구들 한 명 한명(1:1)과 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리고 혜영님의 고민과 어려움도 솔직하게 함께 이야기 나눠보세요."
기존에 프로페셔널하게 일 하는 방식이라 믿었던 방법들이 전혀 통하지 않았고, 나는 다른 전략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몇 번의 주요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 첫번째는 중간 발표회였다. 우리끼리 이지만, 진저티플 다른 프로젝트팀원을 초대하고, 조금은 긴장되는 준비가 필요한 중간 발표 자리를 계획했다. 모두 한 명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한 후였다. 각자 한명의 인터뷰를 만났지만, 함께 나누니 6명 이상의 인터뷰 경험을 나눌 수 있었다. 자신의 인터뷰이 이외, 함께 이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는 동료의 인터뷰어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질문과 호기심을 보였다. 프로젝트를 함께 한다는 느낌이 한층 풍성해 졌다.
두번째로 질문 워크샵을 기획했다.
나는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What to do에 대한 결론을 성급하게 얻고 이를 빨리 실행해서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삶을 변화시키는 질문의 기술>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행동의 변화는, 정답같은 솔루션 즉 to do 제시가 아닌 '질문'으로 시작되는 사고의 전환/확장이라는 걸.
올해 3월 말, 마지막 열 두번째 인터뷰를 마쳤다. 약 6개월동안 12명의 인터뷰를 진행한 셈이다. 단순히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인터뷰 수행이 아니었다. 20대 저자 개인이 가슴 깊이 고민한 주제에 대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그들의 커리어와 삶의 여정에 레퍼런스가 되어 줄 자신만의 여정을 그려가는 멋진 인터뷰어 열 두분을 만났다. 이제 정리와 인쇄, 그리고 출판. 정해진 메뉴얼한 프로세스만 밟아 따라가면 책이 뚝딱 나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역시 오산이었다.
'전문성'에 대한 내 편견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깨지는 시간을 지났고, 결국 그 과정은 나의 성장이 되었다. 나의 번민과 고민을 드러내니, 원고 정리에 멈칫하던 저자 학생이 속도를 내어 퀄리티 있는 원고를 뚝딱 마무리 하여 보내 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깊이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해 대화하는 시간이 결실이 되었다. 간트차트에 계획하기도, 표시하기도 쉽지 않은 시간들이지만 지나고 나니 꼭 필요한 과정이었음을 진심으로 공감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며 나도 내 자신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하고싶은 일에 대해 고민이 많아요."
"진짜 해볼 수 있을까요?"
"그 일을 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요?"
20대 저자들의 고민은 곧 내 고민이기도 했다. 저자들과 함께 만난 인터뷰이들의 솔직한 대답이, 그리고 저자들의 깨달음이 내게도 레퍼런스가 되었다.
나와 같은 '경단녀'로서 누구도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진저티만의 정체성을 잘 만들어 7년차 업력을 유지하고 있는 서현선 대표는 다시 내-일을 시작하던 내게 아마 롤모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 나는 명쾌하게 알 수 있다. 대기업, 계층적 피라미드 조직 구조에서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전문성과 효율성, 성과 지향적인 치열한 경쟁 문화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나이다. 효율보다 가치를, 성과보다 의미나 성장을 추구하며 늘 새로운 아이디어와 소소한 실천으로 가능한 방법들을 끊임없이 고민해 결과를 만들어 온 현선님은 분명히 내게 많은 인사이트와 아이디어를 주는 레퍼런스가 되어 준다. 엄마가 되어서도 자유롭게 마음껏 일할 수 있는, 나를 위한 조직을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다음 세대, 밀레니얼/Z세대도 일하고 싶어하는 좋은 일터가 된 '진저티프로젝트'처럼 내가 만들고 싶은 미래를 상상하고, 내 인생 주제가 된 '여성과 일' 관련 이슈를 더 많이 고민하고, 이 주제를 함께 나눌 이들과 더 많이 연결되는 조직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몸은 휴가지, 강원도에 있었지만 나의 정신세계는 바짝 긴장하고 살짝 흥분된 일 감각으로 무장되었다. 카톡 앱을 열고, 단톡방 창을 하나하나 선택해 들어갔다. 단톡방 그룹의 성격을 고려하여 나의 지난 일년간의 피.땀.눈물의 결과물인 <롤모델보다 레퍼런스> 책 펀딩 소식을 정성스레 알렸다. 한줄한줄 고심한 소개글도 추가했다.
지인들의 펀딩 인증샷이 추가되었다. 무한 감사의 마음으로 내내 벅찼다.
펀딩 시작, 12시간 남짓 후에 벌써 목표액 100%가 달성 되었다. 앞으로 19일 더 펀딩 예정이다. 내 마음 속 목표액을 달성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본다.
경력단절에서 다시 내-일을 찾아 처음으로 책을 만들며 프로젝트 매니저에서 기획자로, 그리고 편집자로 거듭난 나처럼, 20대 초반 고민 많고 불안한 대학생에서 이제는 어엿한 저자가 된 6명의 친구들처럼, 우리 성장 과정에 공감하고 우리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데 참고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레퍼런스'를 만나 나눈 대화를, 독자들과도 나누고 싶다.
책 구매는 아래를 참고해주세요^^
https://www.tumblbug.com/reference : 텀블벅 펀딩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