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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Aug 03. 2021

뭐 이런 고양이가 다 있어?

육묘일기: D+7~8

D+7


아이가 집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 됐다. 그 사이에 아이는 체감상 두 배는 더 큰 것 같았고, 점프력도 좋아져 캣타워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기 시작했다. 그만큼 호기심도 더욱 왕성해져 기웃거리는 곳이 많아졌다. (점프력과 호기심이 커졌다는 것은 집사인 나의 정신이 더욱 혼미해질 것을 예고하기도 한다.)




누가 봐도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




고양이들은 대체로 극세사 재질을 좋아한다. 나의 본가에 있는 묘르신도 푹푹 찌는 한여름의 대낮에도 극세사 담요에서 뒹굴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젤리에게도 극세사의 맛(?)을 보여주고 싶어 작은 사이즈의 극세사 담요를 샀다. 혹시나 먼지가 있을까 싶어 세탁기에 한 번 돌리고 아이가 주로 드러눕는 곳에 담요를 깔아봤다.


역시나. 극세사 담요는 곧 젤리의 애착 담요가 되었다.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던 꾹꾹이도 마성의 담요 위에선 눈이 반쯤 풀린 채로 골골대며 연신 꾹꾹이를 해댔다. 마치 일찍 떨어져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어미의 젖을 찾듯 아이는 그 작은 입으로 쫍쫍대며 꾹꾹이를 했다. 그 모습을 보니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했다. 어미가 교통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너 아직 눈도 뜨지 못했던 갓난쟁이 시절 구조가 된 젤리는 어미의 젖을 몇 번이나 물어봤을까.




젤리의 애착담요
종종 애착담요를 물고와 엄마 옆에 자리를 깔기도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게.



어느새 눈을 감고 곤히 잠든 젤리의 이마에 입맞춤하며 다짐했다. 내게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 아이는 꼭 지켜내리라. 태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어미를 잃고, 갑자기 형제들과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된 젤리에겐 나와 내 반려인이 온 우주일 것이다. 우리의 말이 통하지 않아도 널 꼭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해줄게. 앞으로 엄마 아빠랑 오래오래 건강하게 즐겁게 살자, 젤리.


젤리와 오래오래 살기 위해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건강하게 먹어야겠다. 이 아이보다 내가 오래 살아야 한다. 식탁 위에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홍삼을 뜯어 입에 털어 넣었다. 갑자기 사명감에 가득 찬 젤리 엄마.





D+8


아이의 성장에 가속도가 붙었고, 그만큼 과격한 장난과 입질의 횟수도 비례했다. 점점 깨무는 힘이 세지고, 움직이는 모든 물체에 반응했다. 그러니까 일상생활을 하느라 움직이는 우리의 손과 발은 항상 타깃이었다. 특히 종일 집에 같이 있는 내가 사냥당하는(?) 횟수가 잦았고, 이 조그마한 맹수를 피하고자 내 손엔 항상 아이가 좋아하는 인형이 쥐어져있었다. 아이가 달려들면 곧바로 그 인형을 던져 시선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까불지 마. 무서우니까...




아이가 물거나 할퀴고 간 자리엔 상처가 끊이질 않았다. 칼에 긁힌 것 같이 피가 맺힌 상처와 아물어가는 딱지가 팔과 다리에 사이좋게 자리했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의 이사님이 아기 고양이를 어디서 데려와 키우신 적이 있었는데, 고양이가 하도 깨물고 할퀴어 여름에도 반팔을 못 입고 다니겠다고 하셨던 것이 떠올랐다. 동시에 묘르신의 꽤 야생적이었던 젊은 시절도 뇌리를 스쳐 갔다. 지금의 묘르신은 웬만한 움직이는 것은 시답잖다고 생각하는지 별거 아닌 일에 몸을 움직이지 않으시는데, 이게 18년 차에 벌어지는 일이니, 그럼 젤리가 잠잠해지기 위해선 앞으로 17년이 남은 건가...?


입질도 심해졌지만, 애교도 늘었다. 아이는 내가 서재에서 일할 때 꼭 책상에 올라와 잠을 청하는데, 뒤척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평소엔 그럼 뒤척이던 것을 마저 하며 자리를 바로 잡고 잠드는데, 오늘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본인의 코를 내 입술에 갖다 댔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 본인의 얼굴을 내게 들이밀고 내 입술을 핥았다. 이 행위는 무엇인가. 인간 커뮤니케이션 기준으론 뽀뽀다 뽀뽀. 빼박 뽀뽀. 뽀뽀 말곤 그 무엇으로도 해석 안 됨. 암튼 그럼. 뽀뽀를 마친 이 아이는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내 팔에 기대 잠이 들었다.






아니 뭐 이런 고양이가 다 있어?



아……. 할 말을 잃었다. 순간 심장도 멎었을 것이다. 요근래 이렇게 설레본 적이 있던가. (남편 눈감아)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을 숨긴 이 조그맣고 따뜻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맹수에게 아주 대차게 치였다. 심장에 해로워. 나도 너한테 뽀뽀 세례를 마구 퍼부어주고 싶은데, 곤히 자는 너를 깨울 수는 없으니 맘속으로 꾹 참아야겠지. 어느새 요동치는 나의 심장. 젤리가 너무 귀여워서 온 지구를 부수고 싶었다. 그래, 내 손과 발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그깟 손발 따위! 네게 다 내어줄게!




* 젤리 유튜브 채널: 스윗리틀젤리(Sweet Little Jelly)

* 젤리의 더 많은 이야기는 아래의 영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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