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했던 기억을 떠나보내며
대학교 3학년, 교수님과의 면담에서 민물고기를 연구하고 싶다고 한 그날이었나, 아니면 어렸을 적 강에서 물고기와 함께 헤엄치던 그날이었나, 같은 반 친구와 싸우고 집에 돌아와 어항 속 물고기에게 하소연을 하던 그날이었나. 그 어느 순간부터 나는 ‘물고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물고기는 사람의 말로 대화를 하지도 못하고, 강아지처럼 쓰다듬지도 못하는 생명체이지만, 물속에서 나를 마주 보는 그 눈빛을 통해 나는 물고기의 감정을 읽고, 그들의 자유를 느꼈다. 강물을 타고 넘는 반짝이는 윤슬 아래에서 자유로이 노니는 생명체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나는 오롯이 그들과 같은 물속의 어느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민물고기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지금부터는 연구자가 아닌 물고기를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대학원 연구실에 출근하기 위해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길이었다. 집에서 역으로 가기 위해선 아파트 단지 안의 삼거리를 건너가야 했는데, 도로라기 보단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길목처럼 쓰이고 있었다. 그 삼거리에는 오래된 슈퍼집이 있었는데 우리 가족이 서울로 이사 올 때부터 있었던 곳이라 십 수년을 알고 지낸 집이었다. 평소처럼 슈퍼를 지나 역 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갑자기 번쩍하며 눈앞에 도로의 아스팔트가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닫기도 전 양다리에 묵직한 통증이 올라왔고 살려달라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역을 향해 걸어가던 나를 봉고차가 뒤에서 덮친 것이다. 내가 인식하기도 전에 엎어져 있던 내 두 다리 위로 봉고차의 바퀴가 올라왔고 나는 ‘아, 이제 죽겠구나’ 정신이 아득해졌다. 봉고차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슈퍼집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허둥거리며 다시 봉고에 올라타더니 후진으로 차를 뺐고, 사람들에 의해 차 밑에서 꺼내진 나의 눈앞엔.. 처참한 모습의 내 다리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보였다. 사고에 관한 내 기억은 거기까지이다. 구급차로 실려가면서 동생과 통화를 했고, 울며 전화를 받은 동생에게 단순 골절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곤 그 이후의 기억이 없다. 사고가 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지금 내가 기억하는 건 내 다리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사고로 오른쪽 허벅지 아래로 다리를 잃었다. 5번의 수술과 고통스러웠던 치료과정들이 있었지만 나는 살아남았고, 1년 동안의 재활기간을 거쳐 다시 대학원에 복학했다. 여전히 민물고기를 연구하고 있지만 더 이상 현장에 나갈 수 없어 유전학 연구 쪽으로 마음을 돌렸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민물고기를 채집하고 관찰하며 행복했던 나는 마치 사랑하던 연인을 떠나보낸 사람처럼 한동안 그리움에 시달렸다. 온 열정을 다해 물고기를 사랑했던 나는 꿈처럼 흐려져 가는 물속에서의 기억들을 글로 남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