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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섭 Feb 16. 2019

톱을 든 철학자

이론과 실천의 균형을 찾아

봄이면 반석천이 벚꽃으로 뒤덮인다. 거저 받은 자연의 아름다움이지만 톱을 든 아마추어 철학자의 기여도 조금 있다. 외부세계로 나가기보다는 쾨니히스베르크에 머물렀던 칸트처럼 나 반석천을 아낀다. 토요일마다 등산화를 신고 두꺼운 장갑에 톱을 들고나간다. 벚나무의 키 낮은 가지와 고사한 가지를 잘라 내고 독버섯처럼 번지는 아카시아를 쳐준다. 여름에도 우거진 칡덩굴을 걷어내지만 뱀이나 벌의 공격이 없는 겨울은 일하기에 최적이다. 뿐만 아니라 추운 온도는 흐르는 땀을 식혀주며 두꺼운 겨울 옷이 아카시아 가시를 막아준다.     


톱날에 쓰러지는 아카시아가 산책객을 덮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 작업을 잠시 멈추면, 대부분 말없이 지나가지만 간혹 약초를 캐려 나무를 베오해하는 도 있고, 구청 일을 개인이 왜 하는지 따지는 도 있다. 국가에 바라기보다 국가를 위한 봉사라고 강변하지만, 까칠한 그 친구는 공공재산 훼손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올해에는 반석천 조성사업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마을 가꾸기' 구청 사업으로 격상해 노란색 완장이라도 받아야 할까?


아카시아나 칡덩굴은 생명력이 강하여 다른 나 성장을 막는다. 특히 오월에  반석천을 노란색으로 덮는 금계국을 밀어낸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녹화사업으로 도입했다는 아카시아가 나쁜 역할만 하지 않는다. 꿀벌들이 모여들도록 아카시아는 오월에 상쾌한 향을 내뿜으며, 여름에는 왕성한 성장 속도로 온난화의 주범 이산화탄소를 제거한다. 사실 아카시아는 산림녹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 온난화 방지용으로  심어야 한다. 더구나 아카시아 뿌리는 하천 제방를 파고들어 홍수시 토사의 유출을 막는다.


나는 아카시아를 제거하다가 굵은 벚나무에서 주변에 올라온 아기 벚나무를 보았고 프랑스 해체 철학자 들뢰즈를 생각했다. 들뢰즈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이다. 모더니즘 철학이 이성을 강조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에 대한 반발로 비이성을 강조한다.  들뢰즈는 비이성의 대표적인 개념으로 리좀을 도입하는데 이는 나무뿌리 구조를 나타낸다.


이성 철학을 이끌어가는 자료구조는 수목형이다. 수목형 구조에서는 밑동에서 줄기가 나고, 줄기에서 가지가 나고, 가지에서 잎이 자라난다. 생물의 분류, 법률의 체계, 국가의 조직은 모두 수목형이다. 현대 문명을 파고들면 들수록 이 수목형 구조를 피하기 어렵다. 수목 특징은 밑동을 베어 버리며 나무가 쿵하고 완전히 넘어지는 위계 체계가 있다.


수목형에 비해 뿌리형은 무엇이 다를까? 뿌리 구조에는 줄기 구조와 다르게 엄밀한 위계가 없다.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거제도에는 대개 대나무 집 옆에 자라는데  뿌리는 빈틈없이 얽혀 있다. 어린 나도 다시 전쟁이 나면 대나무 밭 밑에 동굴을 팔 궁리를 늘 하곤 했다. 리좀의 뿌리 구조를 다른 말로 그물망 구조라고도 한다. 그물망 구조는 수목형 구조에 비해 접속성이 좋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다. 전력망이나 통신망은 대표적인 그물망 구조인데 새로운 소비자가 생길 때마다 쉽게 연결이 된다.


그런데 그물망 구조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장하듯이 비이성적인 구조일까? 이는 틀린 말이다. 그물망 구조는 규칙이 없는 듯 보이지만 곳곳에 통신량을 조절하는 지능적인 놈들이 포진하고 있다. 도로망의 톨 게이터나 통신망의 라우터가 그 역할을 한다. 나무뿌리에서는 토양을 뚫고 올라온 아기 줄기영양분 조정 역할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리좀을 이성의 퇴화 개념이 아니라 이성의 진화 개념으로 봐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도 이성을 배척하는 철학이 아니라 이성을 고양하는 철학으로 봐야 되지 않을까?  


스피노자는 렌즈를 깎아 생활비를 벌면서 철학을 했지만 나는 엔지니어링을 하면서 철학을 한다. 니체는 망치를 들고 철학을 했지만 나는 톱을 들고 철학을 한다. 과학자가 누리는 행운이다. 기업 연구소에 다니면 팔 제품을 개발할 수도, 지식을 보태는 논문을 쓸 수도 있다. 나는 둘을 모두 해 보았다. 지난 금요일에는 UAE에 수출한 시스템의 개선 방안을 협의하였다.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식 천재라고 우기듯이 나우리 시스템이 최고라는 편견에 빠져 있을 수가 있지만 이 제품에는 새롭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실제 녹아있다. 국내 적용은 끝났으니 해외 적용 실적이 우수성의 증명이다. 내 일처럼 도와주는 주는 동료들이 고맙다.


오는 길에 고속터미널 센트렐시티의 반디앤루이스에 들렀다. '크로의 철학사냥' 저술하기 위해 익히고 배운 나의  수준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세까지는 철학 과학자 정가에 의해서도 행하여졌으나, 현대에는 강단 철학자만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만큼 현대철학이 어렵다는 이야기고 비전공자는 더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독단에 빠지지 않으려면 다른 철학자의 생각과 비교를 해 봐야 한다. '철학과 굴뚝 청소부'라는 책을 집어 들고 나왔다. 집에 와서 읽어보니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과정설득력 있게 설명되어 있다. 저자인 이진경은 인터넷 검색에서 운동권 출신 사회학과 교수로 나온다.


서점을 나오면서 과학기술 코너에도 들렀다. 2017년에 발행된 나의 '크로의 과학사냥'이 서가에서 퇴출되었을 거라 짐작했지만 아직도 진열되어 있었다. 고마워하며 나라도 사야 할지 갈등하다가 마지막 홍보를 위해 남겨 두고 왔다.

  


는 일주일에 한건 정도의 글을 페북에 올리고 대부분의 시간에 페친 글을 읽는다. 친구가 늘어 응답하기도 전에 새 글이 올라온다. 감당이 안 되는 날에는 포스팅이 많은 친구가 밉다. 안 보면 되는데 괜히 밉다. 퇴직을 하고 여유가 생기면 더 많은 글을 올릴까? 아마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실천하지 않으면서 잔소리하는 시어머니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망치로 기존 질서를 부쉈다면 나는 톱으로 웃자라는 나의 자만심을 베어내고 있다. 아카시아의 가시가 허술한 생각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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