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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선 Dec 29. 2020

"슬프지만 아름다운 세계를 쓰고 싶었어요."

나선이 쓰는 글

"슬프지만 아름다운 세계를 쓰고 싶었어요."
오늘 정혜윤 작가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으며 오늘의 북 토크 내용을 아우르는 말이었다.

대흥동 독립서점 '다다르다'에서 <아무튼 메모>의 정혜윤 작가 북 토크를 한다고 들었다. 수강신청 급으로 치열했던 북 토크 신청을 했고 선착순 안에 들었다. 얼마 전 쓴 책 리뷰를 다시 읽고 책도 잘 챙겼다. 평소 주말보다 일찍 일어나 애들 아침을 차려주고 남편을 깨웠다. 집을 나서기 전 분주했고 집을 나선 발걸음도 분주했다. 열 시 반 나는 다다르다에 도착했다. 1층에서 사전 미션인 필사 엽서를 쓰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일찍 간 덕에 가장 앞자리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작가님과 가까운 자리.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기뻤다.

정혜윤 작가는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책을 쓴다는 건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걸 주는 것, 나에게 좋은 걸 하나도 남기지 않는 거예요."

"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구나. 이 책 안 읽었으면 이런 생각 한 번도 안 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게 진정한 독서예요."

"정치를 문학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

"비극의 최종 단계는 '인간의 몸이 훼손되고 비참하게 죽는 게 아무렇지 않은 것'이에요."

"진정한 힐링은 내가 겪은 슬픈 걸 나누는 것이에요. 요즘엔 많이 퇴색된 단어인 '연대'죠. '그렇지만 너는 힘들지 마.'라고 말하는 거죠."

세월호 유족과 씨랜드 유족의 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도중 눈물이 났다. 울고 싶을 때 적절히 울었다. 다른 사람도 다 울고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많은 텍스트 보다도 음성으로 듣는 말의 힘이 더 강했다.

강연을 듣고 공허한 마음으로 나와 바로 뒤의 창작센터로 갔다. 계획했던 동선이었다. 북 토크를 보고 전시를 하나 보고 집에 가기.

"슬프지만 아름다운 게 좋아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저는 미학적 급진주의자거든요."

정혜윤 작가의 말이 맴돌았다. <옷장 속 예술 사회학>이라는 전시에서 찢기고 사이사이가 위태롭게 연결된 휑한 옷이 있었다. 그건 마치 텅 빈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인간 전시가 아닐까. 옷은 비유일 뿐. 슬프지만 아름다웠다.

구두는 화려하게 만들어지지만 유행이 지나면 버려진다. 그리고 끊임없이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며 구두 도동자들이 또 구두를 만들고 그 구두는 신겨지다 또 버려진다. 갑자기 구두가 버려지는 것은 사람이 버려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버리며 산다. 우리는 평생 소비자로 산다. 생산자일 수도 없이 이미 만들어진 포화 상태의 무언가를 사며, 쓰고, 곧 버린다.

전날 '패션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짧은 영상을 봤는데 너무 높고 불편한 구두를 신고 발목을 혹사하면서도 런웨이 하는 모델들의 영상이었다. 위태롭게 걷다가 넘어지는 모델도 있었고 그렇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걸어야 했다. 패션 디자이너들의 패션이라는 이름의 '갑질'에도 아무렇지 않아야 했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다시 전시장에 있음을 자각했다. 2층 전시에서 구두 노동자의 고된 노동과 씁쓸한 뒷모습에 대해 표현한 전시물을 보고 생각이 났다. 우리는 조금 더 슬프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이들과 연대하고 대변해야 한다.

정혜윤 작가가 자꾸 떠나지 않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나는 오늘 걸으며 테이크아웃 잔을 든 사람을 봤다.

"테이크아웃 잔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겐 테이크아웃 잔을 든 사람이 적으로 보일 수 있는 거예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상가로 내려갔다. 좀 전에 본 옷들과는 달리 깨끗하고 트렌드가 잘 반영된 예쁜 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내년에도 저 옷이 마네킹에 입혀져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었다. 나는 눈길을 주지 않고 걸었다. 반짝 조명을 받은 깔끔함과 아름다움에 질려버렸다.

집에 오는 길 특별했지만 결국 잊어버리고 똑같이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에 약간 쓸쓸해졌다. 그럼에도 특별했던 기억은 어디선가 다시 튀어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날을 완전히 잊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왜 행복을 전시하며 살아갈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늘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나는 언제쯤 주어가 '나'가 아닌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무튼 메모>에서 정혜윤 작가는 그랬다. '무엇을 쓸지는 몰라도 쓴 대로 살 수 있다'고. 내가 써야 할 방향을 숙제로 얻은 기분이 들었고 전시장에서 본 옷들처럼 너덜거리는 기분이었다. 좀 더 없는 듯이 살고 싶어 졌고 좀 더 울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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