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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선 Dec 29. 2020

"좋은 것들에 녹아들고 싶어요."

나선이 쓰는 글

정혜윤 작가는 보라색 털모자를 쓰고 원피스에 코트를 입은 차림새로 우리 앞에 섰다. 전에도 저 모자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하고 검색해봤더니 다른 사진에서도 쓰고 있었다. 애정 하는 모자일까. 히피펌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제주도 작은 도서관에서 북 토크를 진행하며 받은 질문을 떠올렸다. "여기 왜 오셨어요?"라고 묻는 독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친구가 필요해서요." 그리고 그 말은 곧 "나는 작은 서점(공간)을 지지합니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작은 서점은 피난처나 다름없다, 나를 위해 진정으로 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어느 순간엔 "여기 서점 이름이 너무 예뻐요. 다다르다." 그러곤 가만히 둘러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부터가 '연대'라고 느꼈다.

읽는 이유는 '그렇게 살고 싶어서'라고 한다. "이 문장을 한 번 살아보리라.", "책을 살아낸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한동안 독서노트의 가장 위에 '독서가 내 삶을 바꿔줄 거라고 기대하지 말자'라는 규칙을 꼬박꼬박 적어 넣었다. 자꾸 책으로 인해 뭔가 바뀔 거라는 생각을 하면 강박적인 독서를 하게 되는데 그런 내가 너무 싫었다. 읽어도 부족한 것 같아 슬프기도 했다. 즐거운 독서면 됐지, 읽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그만하면 됐다는 생각. 그건 정말 개인적이고 작은 범위의 독서라는 걸 피부로 느꼈다. 책은 작가의 가장 좋은 것을 내게 주는 행위이고 나는 그렇게 살고 싶어서 읽고 필사도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책을 읽고 조금씩 변해도 좋을 것이었다. <깨끗한 존경>에서 정혜윤 작가는 '변화의 편에 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했다. 가만히 있는 것은 너무 편하니까 사람들은 가만히 있고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그럼에도 자신은 힘들여 변화의 편에 서고 싶다고. 내게 작은 변화는 독서에 대한 태도부터였다.

<마술 라디오>에서 만난 한 노인 이야기를 했다. 별명이 '라디오'라고 했다. "왜 그렇게 듣는 걸 좋아하세요?"하고 물었더니 "이게 마지막 듣는 말일지 모르니까요. 이 말을 듣고 천국에 가면 내가 이 말을 기억할까?"라는 대답을 했단다. 그 이후에 이어진 말은

 "이 말을 들으면 내 천국이 바뀔까?"  

나는 얼마나 많은 내 이야기를 하고 살아왔나.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얼마나 숭고할까.

"저는 메모하는 대신에 걸어요. 이게 왜 좋지? 생각해요"

이게 왜 좋지. 이 북 토크가 왜 좋을까. <아무튼 메모> 책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 이 북 토크가 왜 좋을까. 좋은 것들과 '용해'되는 삶을 살고 싶은 정혜윤이 좋은 건지, 그가 전하는 이야기가 좋은 건지.

"좋은 것들에 녹아들고 싶어요. 용해되고 싶어요."

필사하고 싶은 문장을 소중히 여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의미에서 엽서에 쓴 인상 깊은 구절들은 작가에게 큰 감동이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쓴 문장을 읽고는 "이 문장 너무 중요하죠."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구경하려고 마음먹으면 쉽고 치열하게 보려면 어려운 것이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다다르다에서 구매했다. 그리고 완독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소식을 듣고 신청한 것도 다다르다였고 그렇게 해서 작가를 만난 자리였다. 다다르다에 안 갔다면? 나는 이 책을 읽었을까? 샀을까?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까?

북 토크가 끝나고 나오면서 임솔아 시인의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샀다. 다다르다에서는 구매를 하면 영수증 서점 일기가 영수증에 함께 나온다. 이번 서점 일기의 내용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 [온라인에서 책을 사기 위해 독립서점에서 책을 구경하면 누가 좋은 걸까. 이것 또한 서점 주인의 몫인 걸까.]

서점에서 만나는 책은 운명처럼 주인을 기다리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튼 메모>를 읽고, 작가를 만나고, 기분 좋은 연결감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처럼.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이날의 감정처럼. 조금은 더 특별한 기분으로 손끝으로 쓰다듬은 책을 구입하길 바란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특별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이것부터가 내가 '변화의 편에 서는 일'이고 '이게 왜 좋지?'의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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