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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선 Jan 13. 2021

믿음의 시집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 안희연

안희연 시인 시집은 처음 읽었다. 다만 만난 적은 있었는데 그때가 한 이년쯤 전이었을 거다. 카페 창비에서 <시가 도착했습니다>라는 행사를 한 적이 있다. 발신인인 내가 수신인인 남편에게 시를 선물했었다. 그때 나는 박 준 시인의 시 <문병>을 낭독했었다. 그러면 인용된 시인 당사자가 답시를 준비하는 함께 패널로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준 시인은 당시 다른 일이 있어서 친한 동료 시인인 안희연 시인이 대신 왔다고 하면서 답시를 낭독해주었고 그가 준비한 텀블러와 엽서를 내게 건넸다. 그녀는 친화력이 꽤 있어 보였다. 어렵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도 어쩐지 시인은 고고할 것 같은 편견에 약간 휩싸여 있었는데 깨져버렸다.

나는 그 후로 꽤 오래 그 일을 잊고 있다가 지난주에 월평 도서관에서 책 대출을 하려고 시집 코너에 가서 어라? 이 이름 어디서 봤더라, 하고 안희연 시인의 시집을 꺼냈다. 제목도 하필 낭만적이어서는 이 시집을 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내 블로그에 검색해보니 안희연이라는 이름이 그때 본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래서 기록은 중요한 거지. 어쩌면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 이름인지조차 모르고 읽었을 수 있는 것이니. 내 머릿속엔 그녀의 이미지가 그려졌고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 시집을 '믿고 싶은 믿음'으로 해석하고 싶다. 시어에 '믿음'이나 '내가 말하는 대로 믿어라'는 내용이 간혹 등장했는데 나는 그 시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조금이 아니라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믿음'으로만 생각하기엔 너무 강렬하게 믿는 시가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화자 안에서의 믿음이었고 확장되는 느낌보다는 머무르는 것처럼 보였다. 믿는 것들만 등장하는 시는 믿지 못하는 것을 아예 전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손을 달라고 했더니 손인 척 발을 내민다. 살랑 살랑 꼬리를 흔들며 나를 골똘히 들여다보는 너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새카만 영혼이구나. 오늘은 개에게까지 나를 들킨 것 같다.

오늘은 바람도 나를 함부로 읽었지. 머리칼이 흩날릴 때 밤송이처럼 후드득 떨어진 내가 있고.

그것은 감춰 둔. 겉만 뾰족한 알맹이. 나를 줍기 위해 다가가면 저만치 굴러가 버린다.

없다고 믿으면 그만일 조각들이야. 새들이 자유롭다고 말하는 건 인간의 높이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무스는 초식동물이지만 몸무게가 300킬로그램이나 나간대. 온순한 눈망울과 날카로운 이빨을 동시에 가진.

집으로 돌아와 곡차를 끓인다. 물의 색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며 나를 둘러싼 세상의 온도를 살핀다. 내가 나여서 우러날 수밖에 없는 시간이 있다고.

빛을 거느린 사람들이 창 밖으로 지나간다. 비밀이야 다시 품으면 될 일. 끓일수록 진해지는 것을 나라고 믿으면 될 일이다.

손을 달라고 했더니 손인 척 발을 내민다. 살랑 살랑 꼬리를 흔들며 나를 골똘히 들여다보는 너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새카만 영혼이구나. 오늘은 개에게까지 나를 들킨 것 같다.

오늘은 바람도 나를 함부로 읽었지. 머리칼이 흩날릴 때 밤송이처럼 후드득 떨어진 내가 있고.

그것은 감춰 둔. 겉만 뾰족한 알맹이. 나를 줍기 위해 다가가면 저만치 굴러가 버린다.

없다고 믿으면 그만일 조각들이야. 새들이 자유롭다고 말하는 건 인간의 높이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무스는 초식동물이지만 몸무게가 300킬로그램이나 나간대. 온순한 눈망울과 날카로운 이빨을 동시에 가진.

집으로 돌아와 곡차를 끓인다. 물의 색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며 나를 둘러싼 세상의 온도를 살핀다. 내가 나여서 우러날 수밖에 없는 시간이 있다고.

빛을 거느린 사람들이 창 밖으로 지나간다. 비밀이야 다시 품으면 될 일. 끓일수록 진해지는 것을 나라고 믿으면 될 일이다.


시 <터닝>에서는 '없다고 믿으면 그만일 조각들이야', '비밀이야 다시 품으면 될 일. 끓일수록 진해지는 것을 나라고 믿으면 될 일'이라는 시구가 등장한다. 화자인 스스로를 자꾸만 다독이는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믿으면 되는 일이야, 하면서 안도한다. 바람과 개에게 나를 들킨 것 같은 낭패감에 괜한 무스로 화제를 돌려 존재와 해석을 따로 두고 보는 것 같다. 이 시의 감정은 낭패감과, 결여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슬프고 기쁘고 화가 나는 감정이 아닌, 발가벗겨진 것 같은 이 시가 너무 좋았다.

지금부터는 모든 사랑하는 것을 모과라 부르기로 한다
모든 모과는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가지고 있고

계단 끝에는 암실이 있다. 암실 문은 잠겨 있지 않지만
좀처럼 열리는 법이 없다

계십니까
대답 대신 누군가 돌아 눕는 소리가 들린다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세계
10년을 기른 고양이 얼굴이 불현듯 생각나지 않는 날처럼

손바닥 안의 모과는
꼬리를 자르며 모과 밖으로 도망친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독백을 한다
마음을 쏟는 만큼 모과는 익어가지만

분주했던 마음이 방향을 잃고 주저앉은 뒤에야
모과의 검은 발이 볼일 때가 있다

가까워지려는 의지만으로도 모과는 반드시 썩는다
당신이 모과 너머를 보기 시작할 때 모과는 이미 모과가 아니다


<망중한>이라는 시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모과라 부르기로 한다'라고 1행을 시작한다. 모과가 계단을 내려가 암실로 향하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나는 독백하고 내가 사랑하는 모과는 더 익어간다. 더 가까워지지 못한 채로 모과는 썩고 더 이상 모과가 아니게 된다. 나는 사랑하는 것 = 모과라는 비유가 좋았다. 모과가 살아있는 것이었다가 과일이었다가 다시 살아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결국엔 모과는 모과가 아니게 된다. 이 모과의 익는 정도는 내가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나'는 가까워지려 할수록 모과가 썩는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당신이 그 너머를 보면, 혹은 암실의 문을 연다면 모과는 모과가 아니게 되는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거나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당신'은 모과였던 '나'의 마음을 볼 수 없다. 이는 꼭 부모 자식 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쪽의 일방적인 사랑. 이 시는 이런 결말이라야 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듯이 단호하게 '모과는 모과가 아니다'로 끝이 난다.

이 시집은 현대문학의 핀 시집 시리즈인데 가장 뒤엔 산문이 실린다. 단어의 세계를 두리번거리는 일, 시인의 자격을 이야기하면서 너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말을 덧붙인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의 문을 열라는 표현이 너무 좋다. 시간을 빚지고 마음을 빚지고 그렇게 빚진 것들이 반드시 문장이 되리라는 믿음. 믿음의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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