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선 Nov 08. 2021

식물과 책 사이. 텍스트 가든에서.

독립책방 방문기

텍스트 가든에 가야지, 가야지 한 게 일년도 넘었는데 이미 그 공간은 갈 수가 없게 되었으므로(안타깝게 생각한다) 나는 도룡동에 새로 둥지를 튼 곳을 찾았다. 나영이 침대를 보러 둔산동 가구점에 갔다가 길치인 나는 도룡동 대충 가깝지?하고 지른 게 텍스트가든이었다. 마침 규성이가 애들은 자기가 본다고 해서 나를 데려다 주는데 네비게이션으로 주소를 복사해서 검색하니 골목으로 안내했다. 그 골목은 꽤 부자들만 살 것 같이 생긴 주택들이 즐비했다. 골목은 비좁았고 각각 자기 집 담벼락 앞에는 차가 이미 주차되어 있어서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가장 안쪽 빌라 주차장엔 차단기가 있어서 차를 넣지도 빼지도 못하고 곤란했다. 그제서야 주소 끝에 '대로변'이라고 써있는 게 보였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나가지? 후진해서 나가나?"

"여보. 할 수 있어. 해 봐."

내가 운전하는거 아니라고 쉬운 마음으로 가볍게 응원해줬더니 또 금방 차를 빼는 규성이였다. 다시 돌아 대로변에 내리고 그들은 한밭수목원으로 떠났다. 나는 덩그러니 남겨져 텍스트가든을 바라봤는데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이사온지 얼마 안 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무슨 일일까? 전에 공간을 알고 찾아온 사람들일까? 지나가다 들른 사람일까? 나처럼 이전 공간을 알고도 일년 넘게 가지 못하고 와 본 사람도 있을까?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키고 2인 테이블에 가방을 내렸다. 애들 짐하고 먹을 것을 같이 챙겨 나온 가방이 에코백과 아이스백이었는데, 둘 중 하나에 내 짐을 몰아넣고 들고 가야했다. 에코백 부피가 더 컸으므로 아이스백에 책과 볼펜 등을 챙겼는데 새삼 내 어깨에 있는 가방이 아이스백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져서 의자에 고이 올려놓았다. 나는 시선을 돌려 책이 있는 곳을 구경했다.

책방지기가 플랜테리어답게 거의 가드닝이나 식물 에세이였고 독립출판물도 조금 있었다. 안리타 책 몇 권은 더티립스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거기 사장님은 자기 친구가 텍스트가든을 운영한다고 했는데 그때 선물 받은 책이라며 안리타 작가의 책을 소개했었다. 거기에도 있고 여기에도 있는 책이 있었다. 거기 있는 책을 여기서 가져왔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은 거기서도 봤고 거기가 꽤 단골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처음 방문한 곳이라서 내적친분을 혼자 삼키기로 했다.

서가 왼쪽 끝에는 [피동보다 능동]의 사진 포스터가 있었다. 딱 보자마자 알아본 내가 신기했다. 맞배집 인스타로만 접했는데 어떻게 [피동보다 능동]인 걸 안거지? 그의 작품이 너무나도 확고해서 그랬던걸까. 잠깐 구경하고 앉았는데 내 자리에서도 자꾸 보여서 다시 가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텍스트 가든에서 구석 구석을 눈에 담고 구석 구석 사진을 찍었다. 창 밖을 보니 목원대학교 대덕문화센터 담장이 보였는데 [피동보다 능동] 포스터에 보이는 꽃이랑 담장의 식물이 비슷해보여서 기분이 이상했다. 밖의 식물은 바람에 덜렁덜렁 팔랑팔랑거리는데 [피동보다 능동] 포스터는 멈추어 있었다. 똑같지는 않을진데 똑같아 보였다. 시간에 붙잡힌 것도 그 자리에서 바람을 맞았을테니 둘 다 행복한거겠지.

텍스트가든 바로 앞에는 은행나무가 있었다. 은행나무는 키만 크고 옆으로는 가지가 없었다. 가지가 없으니 잎도 거의 없고 뾰족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통행이 불편해서 가지치기를 했을까? 그래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앙상한 은행나무였다. 텍스트가든 안의 아늑함과 저 밖 은행나무의 처량함은 그 차이가 더 극명해보였다. 좀 전에 생각했던 포스터 속 꽃나무와 담장에 걸린 식물하곤 다른 감정이었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식물의 마음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됐다.

중간에 휘낭시에를 주문했다. 맛있었다. 달콤해.

김초엽의 [방금 떠나온 세계]를 챙겼다. 결함과 부작용을 겪는 트랜스휴먼과 모그가 나오는 소설들을 읽었다. 세번째 팔이 필요해서 다는 로라와 시지각 이상이 있는 마리를 나는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내 욕심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참 간사하고 이기적이다. 결국 다 자신을 위한 건데 남을 위했다고 말한다. 아들러도 그랬는데 타인에게 기여하는 마음도 결국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마음이랬다. 그래도 나는 나를 위해 누굴 이해해보려 했나. 마음이 복잡해지는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따스하고 아련한 감정이 많았다면 이 소설은 sf임에도 현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차별과 혐오, 장애와 정상과 비정상성에 대해. 진짜 그런 시대에 산다면 정말로 일어날 것 같은 일이었다. 김초엽은 천재가 아닐까.


자기주장 강한 식물 하나가 내 앞에 있었다. 둘이 앉은 사람들이 어떻게해도 머리가 닿아서 옆으로 당겨 앉았다. 나는 내가 저 자리에 앉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꽃을 다 팔리려나 했는데 다 팔렸다는 인스타 글을 저녁 때 보고 걱정을 내려 놓았다.

텍스트가든 영수증이 꼭 game over 글씨체 같다. 게임 끝. 텍스트가든 방문기 끝.

매거진의 이전글 특별한 날엔 꿈처럼 눈이 내렸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