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1
1824년 초 슈베르트는 비망록에 자신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이해와 고통을 통해 존재한다"고 적었다. p.165.
국제도서전에 갔을 때 사둔 책의 비닐을 드디어 벗겨 어젯밤 자기 전에 책상에 고이 올려두었다. 마침 오늘 프란츠에서 열린 하우스 콘서트 프로그램의 반 이상이 슈베르트였기 때문. 날이 너무 더워 땀을 쫄쫄 흘리며 가는 동안 미리 곡을 들으며 책을 넘겨봤다. 한동안 집중적으로 슈만을 들었던 것처럼 슈베르트를 들었던 적이 있더랬다. 주로 라두 루푸의 연주였다. 언젠가 휴대폰으로 앨범을 틀어두고 잠들었다가 깼을 때, 'Piano Sonata in A Major D.959 II. Andantino'가 들렸고 너무 아름답고 슬퍼서 그대로 멎어버렸던 기억. 그 시퍼런 새벽이 다 가도록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더랬다. 오늘 프로그램에 Impromptu D.899 No.1, No.3과 함께 이 곡이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게다가 브람스의 인터메조도 슈만의 판타지와 헌정도! 대표님의 표현처럼 '미치도록 아름다운'이라는 공연 타이틀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 이상하게 자꾸만 듣게 되는 Impromptu D.935 No.2도 언젠가 연주를 들어보고 싶다.)
1816년 6월 17일, 19세의 슈베르트는 자랑스러워하며 일기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이날 처음으로 돈을 받고 작곡했다". 언급된 곳은 친구들의 주선으로 그에게 거금 100굴덴(빈 통화)을 지불한 교수를 위해 쓴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칸타타를 말하는데, 지금은 소실되었다. p.27.
오늘은 프란츠에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고 첫 공연이었다. 순간적으로 어지러울 만큼 좋았다. 음색도 울림도 연주자의 호흡도 분위기와 에너지와 집중도 다 좋았다. 말없이 고요하게 흘러가는 속에 있는 것이 (오랜만에) 좋았다. 이전에 정다슬 피아니스트가 업라이트 피아노로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연주를 들려주었을 때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났다. 그때 운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지. 오늘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뿐.
정다슬 피아니스트가 연주 중간중간 들려준 이야기들도 좋았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분처럼 메모할 엄두는 못 냈지만, 속으로 끄덕인 부분이 많았다. 처음 자연과 음악이 주는 위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난 어쩌면 그렇게 중심을 찾으려고 음악을 듣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구질구질한 삶, 반복적인 생활, 시시한 일상 속에서 어떻게든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아니, 나아가기는 커녕 버티고 서보기라도 하려고 할 때. 자꾸만 울고 싶은 기분이 드는 매 순간에. 말로 설명되지 않는 온갖 감정들 속에 있을 때. 그러니까, 지금.
당시 슈베르트의 기분은 "주소 : 로마, 카페 그레코 / 독일인 화가 레오폴트 쿠펠비저 귀하" 앞으로 보낸 1824년 3월 31일 자 편지에 인상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슈베르트 전기에서 중요한 자료로 여겨지는 편지이다.
한마디로, 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인간이라네. 건강은 더 이상 회복될 가망이 없고, 비관한 나머지 오히려 악화되기만 하는 한 인간을 상상해보게나. 빛나던 희망은 사라지고 사랑과 우정으로 가득했던 행복은 고뇌로 변해버린,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최소한의 자극)마저도 꺼져가는 한 인간을 상상해보게나. 비참하고 불행한 인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p.107-108.
슈베르트의 곡은 특히 반복이 많은데, 반복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면서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약간씩 어긋나기도 하고, '이게 맞나,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나고 보면 틀리지 않았구나 하게 된다거나 하는 점이 마치 인생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도 좋았다. 연주자의 그런 생각을 공유하는 몇 마디 말에서도 괜히 작은 위로를 받았다. Drei Klavierstücke D.946 No.1, No.2의 반복적인 왼손 부분이 시간처럼, C 메이저로 끝나는 곡들이 마치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도 흥미로웠고. 대표님이 청하셨다는 Widmung(너무나 찰떡!)으로 마무리한 것까지 훌륭했다.
슈베르트의 '후기 작품'을 바흐나 베토벤의 경우에 논의되는 것과 같은 강도와 의미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에게 '후기'라는 말은 그저 연대기적 의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후기 작품에는 오랜 실험을 통해 얻어진 원숙함의 결과와 완전히 새로운 수준에 도달한 자의식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그렇다고 베토벤에게서나 제기될 법한 확고한 변곡점을 찾아내려 한다면, 그 노력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늦어도 1824년 초부터는 슈베르트의 음악적 사고가 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으며, 지속적인 창작으로 이어졌다. 이를 통해 연대기적인 의미의 '후기 작품'이라는 개념은, 흔히들 생각하는 차분한 정리나 명확한 결산보다는 오히려 거대한 창작력을 발산하는 설렘이라는 특성을 띠게 됐다. p.143.
1828년 9월에 슈베르트는 피아노 음악을 대표하는 대작이 될 세 개의 소나타, c단조(D, 958), A 장조(D. 959), B♭장조(D. 960)를 작곡했다. p.148.
어떻게 죽기 직전 두어 달 사이에 이런 곡들을 이만큼이나 썼을까, 하고 감탄하며 정다슬 피아니스트가 작곡가 친구(나, 누군지 알 것 같은데! 하하)에게 물었더니 "곧 죽을 것을 알아서 아니었을까"라고 대답했다고.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엉뚱하게도 우주의 먼지 같은 나를 생각했다. 조그만 점에서 출발해 서울, 한국, 지구, 우주로 순식간에 커지는 영화 같은 시점으로. 어쩐지 홀가분했다. 전부 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는지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아마 기숙학교 시절 초반이었을 것이다. "은밀하게, 나는 내가 무언가를 이룰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베토벤 이후에 누가 해낼 수 있단 말인가?". p.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