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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ttle deer Jul 11. 2023

음악 없는 말

2023-07-10

곡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무척 단순했다. '음악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는 물음을 골몰히 생각하게 되었던 까닭이다. 책을 뒤져 보아도,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도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다. 아마 애초부터 상관없는 물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답을 구하려는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문득, 작곡을 해 보면 어떻게든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60년이 흐른 지금 답을 발견했느냐 하고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다만 질문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문득 들기는 했다. 결국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말을 달리 한 그 물음에 대해 납득할 만한 답을 찾은 것 같기는 하지만, 우선은 그 '시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타당한 순서일 듯하다. p.97.


어제는 루돌프 부흐빈더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마지막 공연을 보러 갔었다. 30번, 31번, 32번. 앵콜곡은 슈베르트의 즉흥곡 D.899 No.4였다. 오늘 오후에 프란츠 카카오톡 채널에서 보낸 이 주의 추천 음악도 루돌프 부흐빈더 연주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이다. 딸기는 인스타그램에 '듣는 내내 동화 속'이라고 썼던데, 나는 집에서 혼자 들을 때와는 달리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집중을 못 했다는 소리는 아닌데, 그게 그러니까, 눈앞의 연주자보다는 들리지도 않는데 저런 음악을 만든 사람에 대해 내내 생각했던 것 같다. 


오후에 광화문에 미팅을 간 김에 - 나 이제 광화문 직장인이 되려는 참이다, 이번에는 정말 정착해 보자, 대표님에게 후계자가 되겠다고 선포했단 말이다 - 체크해 두었던 '벌새'라는 카페에 들렀다. 오래된 빌딩 지하에 있는 조그만 드립커피 전문점인데,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곳이라길래 궁금했다. 알고 보니 언니네 가게 옆 빌딩이기도 했고, 언니가 임보 중인 고양이들 소식도 궁금했고(그러나 월요일은 휴무라서 통화만 하고), 잠깐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고. 아무튼 오늘은 그렇게 시원한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특히 3악장!) 들으며 잠시 앉아 있다가 직장인들이 퇴근할 무렵 나와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의욕이 샘솟아서 저녁을 챙겨 먹고 노트북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할 일이 많다. 내일도, 남은 날들도. 이런 시간이 귀하다는 걸 이제는 잘 안다. 느리지만 내 속도대로 가야 한다는 것도. 


친구들과 있을 때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음악을 들으며 보냈다. 편하게 지내는 친구들끼리 격의 없이 보낸 순간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생각해 보니 놀라울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시간이기도 했다.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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