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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연씨 Oct 11. 2019

나이 듦과 늙음의 이야기

우리나라 나이 29살 12월에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서른 살의 일 년을 그곳의 28살로 살았다. 

우리나라에 도착해서는 갑자기 서른 살이 되고, 곧 서른한 살을 맞이했다.


서른 즈음의 나는 그렇게 다니는 곳에 따라서 나이가 달라지고 이름이 달라지고 직업이 바뀌었다. 캐셔이기도 했다가 F&B직원이기도 했다가, 호화 크루즈 스튜어디스이기도 했다가 일용직 노동자이기도 했다. 여행객이기도 선생님이기도 그리고 순례자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일 년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물리적 시간의 간격 때문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이질감이 크기 때문이겠지. 지금의 나로서는 그런 여행을 해낼 자신이 없다.


며칠 전 친구와의 대화 중 나온 이야기 

"만약에 내가 영생할 수 있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면, 지금의 나와는 사뭇 다른 인간일 거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29살의 나와 지금의 나를 생각하게 된다. 며칠 꼴딱 밤을 새우며 신나는 것을 할 수 있는 육체를 가진 나와, 살살 달래가면서 조심히 사용해야 하는 육체를 가진 지금의 내가 다른 것은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하루하루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조금 달라졌다. 예전의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정서적, 재무적, 사회적 안정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매일매일에 만족해했다. 하지만 마흔이 넘으면서, 아마도 육체의 에너지가 부족해지면서 나이 든다는 것이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나이 듦의 다음 단계인 늙음을 본다. 간혹 어떤 공포마저 느껴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마도 멀지 않은 나의 모습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그런 모습이 아니기 위해 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간절함마저 생긴다.


나의 나이 듦이란 

그저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 이상이길 바란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길, 좀 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내가 되길,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육체를 가진 내가 되길,

내가 누구인지 알고 그 길을 소신껏 따라갈 수 있는 내가 되길,

마음속 불꽃의 크기가 줄어들지 언정, 꺼지지 않을 수 있도록

무력한 늙음으로 내가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도 가끔씩 내 육체의 한계를 잊고 마구마구 달릴 때가 있다. 그렇게 달리고 나면 여지없이 몸살이 나는데,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뭐 어쩌겠는가! 그냥 나는 오늘 나만의 스쿼트를 열심히 할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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