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거실의 옅은 오렌지빛 3000K 메인조명을 켜고, 진한 오렌지빛 2700K 스탠드 2개를 켠다.
낮은 음역대가 잘 울려퍼지는 오디오에 무드에 맞는 CD를 넣고 볼륨을 17에 맞춘다.
사이드테이블에 따뜻한 커피를 올려놓고
포근한 무릎담요를 걸쳐놓은 거실의 나즈막한 체크무늬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장면이다.
오후 6시정도에 바라보는 하늘도 좋아한다.
핑크색이 얼룩진 하늘색에서부터 짙은 네이비까지 다채로운 색들이 수채물감처럼 조심스럽게 펴져나가면서 황홀한 그림으로 완성된다.
그 하늘은 아무리 바라봐도 다채로운 색의 변화가 끊이질 않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주변이 깜깜해져 있곤 한다.
혼자서 운전하는 차의 공간도 좋아한다. 보사노바를 크게 틀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몸의 리듬을 즐겨본다.
완벽하게 통제된 오직 나만을 위한 안락함이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한 평짜리 공간에서 느껴지는 심리적 안정감을 사랑한다.
버스를 타는 것도 좋아한다.
한적한 밀도와 앉아서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가장 좋겠다. 차창밖의 공간을 눈으로 느낀다.
사람들의 행동과 표정을 본다. 건물의 생김을 살펴본다. 흔들리는 나뭇잎으로 바람을 바라본다.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햇살을 본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 길가에서 거리풍경을 스치듯이 눈에 담는 것을 좋아한다. 짧은 담소와 웃음 소리가 흘러가는 것도 좋다. 가끔씩 좋은 향기를 만나는 순간은 더 없이 행복하다. 바람결에 살살 날리는 내 머리카락의 무게감도 좋아한다.
길을 걸을 때 이어폰을 듣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길에서 이어폰으로 귀를 막으면, 공포가 느껴진다. 주변의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공포가 아닌 청각을 상실한 공포다.
나에게 길을 걷는 다는 것은
길을 보고, 길의 소리를 듣고, 길의 냄새를 맡고, 길의 바람을 느끼는
모든 감각에서 수집된 정보가 균형감있게 느껴지는 감각의 총합이다.
생각이 복잡하거나 답답할 때 무작정 걷게되는 건 이런 균형감을 서둘러 찾고 싶은 마음때문일꺼다.
몸과 마음의 불균형, 이상과 현실의 불균형, 목표와 능력의 불균형
이 수많은 불균형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그저 걷고 또 걸을 뿐.
내가 좋아하는 장면안에 나를 넣으면 많은 경우 상황이 좋아진다.
우울을 느낄 때 사용하기 좋은 방법이다. 강려크하게 동참을 권유한다.
당신이 가장 애정하는 장면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