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모로코, 페루
세계여행 중 기억에 남는 상인들이 있어 그들과 얽힌 몇 가지 에피소드를 써 본다.
1. 고산족 아이들의 강매
베트남 사파에 도착한 첫날, 해가 지고 저녁 식사할 식당을 찾으러 밖에 나왔다. 6-7살쯤으로 보이는 꼬마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더니 뭔지도 모르는 작은 물건들을 다짜고짜 내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런 적극적인 공세는 처음 겪는지라 당혹스러웠다. 주머니에서 다시 그 정체모를 물건들을 꺼내 돌려주려고 하니 절대 받지 않겠다고 두 손을 휘휘 젓는다. “그럼 그냥 버린다?” 하면서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는 시늉을 해 보아도 오히려 딴청을 피우며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 어린아이들 앞에서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결국 10,000동에 팔목끈과 방석 모양의 열쇠고리를 사야 했다. 유치원생 나이에 불과한데도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물건을 파는 노하우를 쌓은 아이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2. 가이드를 가장한 커미셔너와 가게 주인의 합동작전
모로코 페즈는 세계에서 가장 미로 같은 도시로 유명하다. 지리를 몸으로 익혀온 현지인이 아니고서는 지도도 타고난 방향감각도 무용지물이다. 페즈는 또한 Tanary라는 전통적인 옷 염색 작업장이 유명하다. 염색장을 찾으려면 길을 잘 아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수다. 난 압둘이라는 가이드를 고용했다. 압둘은 한 건물로 날 안내했다. 그 건물 3층에서 염색장을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막상 보니 내가 사진으로 봤던 큰 염색장에 비해 규모가 지나치게 작았다.
실망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길에 압둘은 그 건물 2층에 있던 한 상점으로 날 데려갔다. 상점 주인은 어머니 선물을 드려야 하지 않냐며 다짜고짜 가죽제품을 꺼내서 보여주기 시작했다. 별로 내키지 않아 사진이나 하나 찍겠다고 하자 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사진 찍는데 얼마냐고 따지듯 물으니 다시 상냥하게 사진 찍어도 된다고 태도를 바꾼다. 내가 오늘 첫 손님인데 모로코에서는 첫 손님을 놓치면 하루 종일 장사를 망친다는 미신이 있다고 하며, 내 앞에 다양한 물건을 늘어놓는다. 끌리는 물건이 없어 고맙다고 인사하며 가게를 나오려는데 불우한 가족들과 현지인들을 위해 기부금이라도 달란다. 소액이라도 주려고 하니 500 디람이라는 큰 액수를 불렀다. 도둑 심보다. 학생이라 돈이 없다고 그냥 나가겠다고 하니 내가 가게 사진도 찍었고 나 때문에 전기세도 들었다며 500 디람은 아무것도 아닌데 왜 주저하냐며 비아냥댔다.
그런 상인들을 대하는 건 지겨울 정도로 훈련이 된 바다. 일부러 화난 척 언성을 높이고 한껏 과장된 손짓 발짓을 보여준 뒤 1층으로 내려와 가이드 압둘을 만났다. 그도 역시 한통 속이었다. 뒤따라온 가게 주인은 다시 친한 척하면서 작은 공예품이라도 사달라고 조른다. 그냥 무시하고 나오자 뒤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로 홱 돌아 그를 노려보며 나도 한 마디 해줬다. 압둘은 그 뒤에도 다른 상점으로 날 안내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 100 디람이라는 돈을 수고비 명목으로 쥐어주고 곱게 보냈다. 내가 가려고 했던 염색 작업장 대신 엉뚱한 곳에 가서 질 나쁜 상인에게 기를 빼앗기고, 돈과 시간만 버렸다. 결국 내가 찾던 염색 작업장은 동네 아이들에게 동전 몇 개를 쥐어주자 간단히 찾을 수 있었다.
3. 장사에 관심 없는 상인
페루 마추픽추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아구아스 깔리엔떼,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많은 여행객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런 유명한 관광지일수록 여행객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고 그만큼 영악한 상술이 판을 친다. 이런 편견을 깨듯, 이 곳 상인들은 전혀 드세지도 않았고 순진하며 소극적인 듯 보였다. 기념품 주변을 얼쩡대도, 상점 안에서 어떤 물건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어도 먼저 다가오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가격을 몇 번이고 물어봐야 겨우 대답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마음 편히 쇼핑할 수 있으니 여행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념품 가격이 저렴한 것은 아니었다. 많이 깎은 것 같은데도 엉성하게 짜인 동전지갑을 개당 가격 4달러, 컵받침은 개당 5달러는 주었으니 말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알아서 지갑을 여니 굳이 열심히 팔지 않아도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소극적이었던 것인지 아직까지도 궁금하다.
4. 나를 돈벌이 수단이 아닌 하나의 사람으로서 존중해주었던 아주머니
다시 베트남 사파, Hoang Lan 호텔 앞 시장 골목에서 한 고산족 아주머니를 마주쳤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고산족 특유의 검은색 복장을 차려입었고, 은은한 미소가 포근해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 안내를 받아 깟깟 빌리지를 구경하기 위해 계속되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참 내려가면서도 조용히 앞장서서 뒷짐 지고 걷거나, 아주 가끔씩 짧은 영어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하는 정도였다. 깟깟폭포에 도착한 뒤, 아주머니는 더 내려가서 다른 마을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난 다시 호텔 방향으로 올라가겠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미소를 잃지 않고 내 뒤를 조용히 따라왔다. 속으로는 분명 어떤 대가를 원할 거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수고비로 5만 동 이상은 주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오르막길 중간, 아주머니는 한 낡은 초가집 앞에서 잠시만 기다려줄 수 있겠냐고 묻더니, 직접 만든 몇 가지 공예품을 부산스럽지 않게 가지고 나왔다. 천천히 끈 팔찌를 꺼내 선물이라며 내 팔목에 매어주었다. 선물 받는 사람이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내게 정중하게 기념품을 하나 사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수고비를 과하게 요구할지도 모른다며 경계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사드리겠다고 대답하고 대나무에 끈을 달아 튕기듯 소리를 내는 전통악기를 가리키며 가격을 물어봤다. 아주머니는 가격을 쉽게 말하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다 5만 동이라고 답했다. 아주머니는 손수 만든 핸드폰 케이스도 덤으로 주었다. 내가 고맙다며 두 손을 잡으니, 미소를 잃지 않았던 아주머니는 마치 아들이 손을 잡아주는 것처럼 활짝 웃었다.
영업은 사람의 마음을 얻어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상품을 팔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파는 일이라고도 한다. 어떤 상인이 내 마음을 움직이고 진심으로 그 사람을 위해 물건을 사게끔 만들었을까? 나에겐 마지막 에피소드의 베트남 아주머니가 그랬다. 억척스럽고 무례한 상인들에 치여 굳은살이 박힌 마음까지 보듬어주는 미소와 여유로움, 행동과 말투에서 드러나는 배려와 따뜻함, 그리고 물건을 사줄 수 있겠냐는 정중함까지. 다시 나에게 질문하고 싶다. 나는 내 상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파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