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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Jan 27. 2021

마법에 걸려들었다

Tiamo Italia

매년 최소 한 번은 가야 직성이 풀리는 나라 이탈리아. 주변 지인들은 묻는다 "이탈리아의 뭐가 그리 좋아?"라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그냥 다 좋으니까요!


애초부터 이탈리아가 우리 부부의 최애 여행지는 아니었다. 풋풋하게 젊었던 시절엔 낭만 하면 떠오르는 파리를 흠모했고,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반짝이는 옥빛 바다 펼쳐진 코트다쥐르로 끌렸다.


인터넷도 내비게이션도 발명되기 전, 사전 숙소 예약도 없이, 지도에 의지해 목적지를 찾아 떠났던 아날로그 시절의 여행. 지도도 제대로 못 보냐, 운전보다 더 어려운 게 지도 보는 거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여행을 떠난다는 설렘이 더 컸던 그 시절. 가끔 "그때는 그랬지" 추억 속 청사진들을 소환시켜보면 정겹고 훈훈하다.




이탈리아와의 인연의 시작은 이십 대 후반 수년간 여름마다 차를 끌고 내려간 니스로 향하는 길목에 잠시 들렀던 밀라노, 제노바 등과 맺어졌다. 처음 찾았던 밀라노는 현지인들의 여름휴가 기간이었던 시기로, 도시 전체가 영화 속 좀비가 덮친 마냥 인적이 드문 생경함이었고, 제노바는 잠시 스치면서도 정신 사납고, 험궂은 곳이라는 선입견에 갇혔다. 당시부터 관광객 몸살을 앓는 베니스는 그저 안쓰러웠다. 고로 이탈리아는 쉬이 우리의 관심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풋풋했던 20대 여행지에서


2005년 연말, 사전 준비도 없이 급조된 휴가지 "로마".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무엇을 보고 왔으랴? 크리스마스이브 로마에 도착해 서둘러 찾아간 바티칸 박물관. 정오가 되기 전이니 설마 했건만! 이미 바티칸 성벽을 한 바퀴 돌만큼 꼬리를 문 대기 인원. 그 덕에 포기가 쉬웠다. 무식하니 '그까짓 천정화 때문에 굳이 저 대기줄에?' 마음도 쉽게 접혔다.


크리스마스 연휴 휴무인 명소도 있었고,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스페인 계단은 얼룩진 계단 곳곳에 앉아 있는 인파 탓인지 무엇이 매력적인지 의아했으며, 저 밋밋한 그라운드가 벤허의 무대라니 실망스러움도 거들었다. 무엇보다 가는 곳마다 말 그대로 널브러져 있는 돌덩이들. 이들의 이야기들을 풀어주는 안내자 없이는 감흥을 받기에 역부족인 곳 '로마'.

학창 시절 이름 외우기 어려워 국사에 매진하고, 세계사는 관심 밖이었던 나, 여행을 온다고 느닷없이 이탈리아 역사 예습을 할 엄두도 나지 않았으니 무엇을 봐도 잠시 감탄은 존재했어도, 깊은 감동은 나와 거리가 먼 것이었다. 거기에 모든 낯선 이들이 소매치기로 보이는 극도의 긴장감에 여유 또한 한 발 주춤했다.


당시는 에스프레소의 쌉싸름 구수한 맛도, 와인의 신비한 풍미도, 알덴테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탈리아 문외한이었으니 제대로 즐길 채비가 되어 있지 못한 자, 그 문화를 받아들이기에는 역부족일 밖에.




정확한 계기,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로마 방문 후 수년이 지난 후에나 다시 찾게 된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소도시 방문이 전환점이 된 게 아닌가 싶다. 소도시를 접하고 난 후부터 우리 부부는 더 이상 구제가 어려울 만큼 그 나라의 매력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관심이 생기니 그 나라의 맛과 멋도 덩달아 즐길 줄 알게 되었고, 그 나라 사람들은 대다수가 소매치기, 사기꾼이라는 선입견과 공포감에서도 해방될 수 있었다. 순박한 시골 인심은 동서양 불문하고 어디나 동일한 모양이다. 그 후부터 매년 우리는 떠난다, 즐길 줄 아는 인생들의 무대 이탈리아로.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우릴 두고 하는 말 같다. 해마다 단 한 번이라도 다녀오지 않으면 몸이 뒤틀리고, 원조 파스타의 맛과 인생이 담긴 진정한 에스프레소가 그리워 애간장이 타기 시작한다. 다녀온 곳은 또 가면 반갑고, 새로운 곳은 다른 설렘으로 다가온다.


번복되는 일상에 지칠 무렵, 시끌 법석 인파 속 활력을 얻고, 기원전후 유적지의 울림과 자연이 안겨주는 힐링과 함께 화끈한 일탈을 꿈꾼다. 무엇보다 만나는 사람들의 웃음이 유쾌한 곳, 맛과 멋을 즐기는 인생을 추구하는 이들의 땅 "이탈리아".


대체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니?
너의 마법에 말려 들었나 봐!

기다려다오,
코로나 이겨내고
다시 그 땅을 밟는 그 날까지!

Tiamo Italy
2018년 연말 안개 자욱했던 Sirmione
2014.4월 체스의 기원이라는 중세 도시 마로스티카
2015. 4월 봄이라기엔 겨울이 친근했던 Sacro Monte di Oropa
2014.부활절, 조또 예습도 않고 유명세만 듣고 찾은 스크로베니 경당
2019.2월 아쿠아알타 체험 후 베네치아의 아침
2019.5월의 폭설 후 브라이에스 호수
2020. 7월, 코로나 시기 텅빈 베드로 광장
2018.4월, 2년만에 다시 찾은 이탈리아 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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