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차이를 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남는다는 것
내가 몸담았던 곳은 차량을 공유하는 플랫폼 서비스 회사였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넘는 시간 동안, 회사의 성격도 공기의 흐름도 숨 가쁘게 변해왔다. 초창기 전통적인 렌터카 업무가 주를 이룰 땐 현장의 땀 냄새가 짙었다면, 플랫폼의 시대가 도래하자 기술과 데이터의 향기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회사의 변화와 함께 중심축이 대전에서 서울로 완전히 이동하면서 직원들의 연령대는 급격히 낮아졌고, 사무실은 개발, 데이터 전문가, 마케팅 등 직군의 젊은 피들로 채워졌다. 브랜딩과 제휴 업무를 맡았던 나는, 어느새 '오래 다닌 연혁' 하나만으로 관리자 명함을 달고 그 낯선 젊음과 마주해야 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업무보다 힘들었던 건 '나와는 너무 다른 그들'과 섞이는 일이었다. 작은 예를 들어서 내가 주관하는 주간 회의 시간임에도 몇몇 직원들은 회의 시간의 집중 대신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40대 후반, 소위 '라떼' 세대인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이건 어른에 대한 불손함이 아닌가? 한마디 따끔하게 지적해야 하나?' 의 고민과 동시에 '혹시 내가 이 소중한 자리에 그들에게 가치 있는 시간을 주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라는 고민을 했던것 같다. 나는 다행히 전자가 아닌 후자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로 했었다. 섣부른 지적보다는, 내가 먼저 그들의 방식에 적응하고 참아내는 쪽을 택했던 같다.
그렇게 육아휴직을 하고 논산으로 내려온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던 며칠 전. 서울에서 근무하던 젊은 직원 두 명이 나를 보러 논산까지 내려왔다. 그들의 개인적인 축하를 알리려 내려옴이 목적이긴 한데 왕복 시간만 따져도 꽤나 고단한 여정일 텐데, 그 먼 길을 방문해 줌에 고마웠던 것 같다. 반가움과 동시에 묘한 감정이 일었다. 회의 시간에 핸드폰 보던 그들이, 퇴사도 아닌 고작 휴직을 한 나를 위해 이 낯선 시골까지 찾아오다니. 우리는 식사를 하며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 급변하는 업계에 대한 걱정들을 안주 삼아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그들은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직설적인 '요즘 애들'이었지만, 그날만큼은 세대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친구'들이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서, 우리가 그들을 '요즘 애들'이라는 편견의 색안경을 끼고 봐서 그렇지, 사실 그들 또한 소통하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 '어른 친구'를 찾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도 나의 빈자리를 기억해 주고, 서울에서 먼 이국적인 시골 논산까지 기꺼이 시간을 허락해 준 직원들. 그들의 방문 덕분에 나의 육아휴직은 고립이 아닌, 또 다른 연결임을 확인한다.